기획·칼럼

한국인의 삶을 담는 아파트 평면의 진화

[아파트 속 과학] (13) 아파트의 주동 형태와 베이별 장단점

“사람은 건물을 만들고, 건물은 다시 사람을 만든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정치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윈스턴 처칠이 남긴 말이다. 처칠의 말처럼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주거공간을 창조하는 동시에 우리네 인생살이는 삶의 터전인 주거공간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주거는 사람이 생활을 영위하는 장소이면서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활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따라서 주거공간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생활을 잘 담아내야 하며, 삶의 질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한층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판상형 vs 타워형, 뭐가 더 좋을까?

한국인 절반 이상이 사는 아파트는 한국인의 삶과 생활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주거공간이다. 그런데 어떤 아파트는 공간이 잘 빠져서 생활하기 편리하다며 인기를 모으는 반면, 어떤 아파트는 쓸모없는 죽은 공간이 많아 생활하기 불편하다며 외면받기도 한다. 이처럼 아파트의 공간이 잘 빠졌다 또는 불편하다고 사람들이 얘기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아파트의 평면구조다.

아파트의 평면구조는 기본적으로 건물 전체의 형태에 영향을 받는다. 아파트 단지에서 동일 코어를 사용하는 독립된 각 건물을 주동(住棟)이라 부르는데, 아파트의 주동 형태는 크게 판상형과 탑상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판상형은 아파트 한 동의 모든 세대가 한쪽을 바라보면서 일렬로 평행하게 배치되는 주동형태다. 우리나라 아파트에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돼 왔기 때문에 한국 아파트 설계 모델의 표준이라 불린다.

판상형의 장점은 모든 세대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남향으로 배치할 수 있고, 전면과 후면 창문을 열면 맞바람이 불어 통풍이 잘 된다. 건축비와 관리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발코니 등 서비스 면적을 많이 받을 수 있으며, 거주자의 동선이 단순해 편리하다.

단점으로는 성냥갑 아파트라 불리는 답답하고 단조로운 외관을 꼽을 수 있다. 일렬로 서있기 때문에 앞 동이 가리면 뒷동은 조망권 확보가 어렵고, 동 사이의 거리가 가까우면 저층 세대에서는 햇빛을 제대로 받을 수 없으며 사생활이 침해될 우려가 커진다.

판상형인 아파트(왼쪽)는 채광과 환기가 우수하고, 타워형인 아파트(오른쪽)는 외관과 조망이 우수하다. ⓒ 삼성물산(좌)/한화건설(우)

우리나라 대다수 아파트는 판상형 구조로 지어졌는데 2002년 서울 도곡동에 타워팰리스가 타워형(또는 탑상형)으로 건립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63빌딩보다도 높은 국내 최고층인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의 등장은 아파트 평면구조에 대한 선호도를 일순 바꿔버렸다. 타워형이 세련된 주거공간을 상징하면서 큰 인기를 끈 반면, 판상형은 구식 아파트라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타워형은 건물을 수평 투영했을 때 짧은 변과 긴 변의 길이의 비가 1 대 2 이하이고, 긴 변과 높이의 비는 1 대 2 이상인 주동 형태를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건물의 두께에 비해 폭은 좁은데 높게 서 있는 타워 형태로 이해하면 된다.

타워형의 장점은 무엇보다 한껏 멋을 낼 수 있는 세련된 외관이다. 한강이나 바닷가, 공원 옆에 타워형 아파트가 초고층으로 건축돼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각 동을 엇갈리게 배치해 우수한 조망을 최대한 살릴 수 있으며, 사생활 보호가 용이하다. 또 높이 지어도 판상형처럼 일조권을 침해하지 않기 때문에 용적률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단점으로 모든 세대의 정남향 배치가 어렵고, 전·후면 발코니 설치가 불가능하므로 맞바람 통풍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있다. 건축비와 인테리어비, 관리비도 판상형보다 비싸다.

타워형 아파트의 인기에 밀렸던 판상형 아파트는 2010년이 넘어서면서 반전을 꾀하기 시작했다. 실속을 중시하는 수요자들이 늘어나면서 촌스러워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았던 판상형이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건물의 멋진 외관과 조망보다 채광, 통풍, 환기 등 주거 쾌적성과 저렴한 관리비 등이 부각된 결과였다.

판상형과 타워형은 장단점이 분명하지만 최근 대세는 판상형이다. 국토교통부와 매일경제가 공동으로 선정한 2019년 살기 좋은 아파트를 보면 77%가 판상형으로, 23%에 불과한 타워형을 압도하고 있다.(배현희 외 ‘최근 공동주택의 주동 형태 및 단위세대 평면 유형에 관한 연구’ 참고)

최근 건설되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판상형과 타워형을 섞기도 하고, 판상형과 타워형의 장점을 결합한 혼합 구조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예를 들어 Y자 형태로 건물 외관은 타워형이지만 각 날개에 해당하는 단위세대는 판상형으로 건축할 수 있다. 과거처럼 성냥갑 아파트를 일렬로 배치하면 획일적 경관으로 인해 건축심의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다양한 주동 형태가 계속 시도될 전망이다.

2베이에서 3베이와 4베이로 진화

아파트 평면구조를 결정짓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베이다. 베이(Bay)란 전면 발코니를 기준으로 벽과 벽 사이의 한 구획을 말한다. 전면 발코니에 안방과 거실이 배치된 ‘2베이’부터 안방과 거실, 방이 배치된 ‘3베이’, 안방과 거실, 방, 방이 배치된 ‘4베이’가 있고, 평면을 ㄱ자로 꺾으면 안방과 거실(양면 발코니), 방, 방인 ‘5베이’도 가능하다.

1990년대 아파트에 주로 사용되던 2베이는 전면에 안방과 거실이 배치된다. 전면부터 후면까지 깊은 형태로 방들이 모두 떨어져서 배치돼 프라이버시가 보장되고, 주방과 식당 공간을 여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후면에 배치되는 방이 2개나 되는데 일조와 채광이 좋지 않다. 우리나라 아파트 입주민들은 최소 거실과 안방, 아이 방은 햇빛이 잘 들기를 원하기 때문에 2베이는 최근 사라지는 추세다.

1990년대 일반적인 2베이 구조의 마포 삼성아파트(왼쪽)와 2000년대 인기를 모은 3베이 구조의 반포 래미안퍼스티지(가운데), 2010년대 유행하고 있는 4베이 구조인 송도 더샵그린워크(오른쪽). ⓒ 네이버부동산

2000년대 아파트는 3베이가 가장 많은데 전면에 안방과 거실, 방이 배치되고 후면에 방과 주방, 공용화장실이 배치되는 형태가 된다. 일단 방 하나하나의 면적은 4베이보다 넓고, 서로 떨어져 있어 독립성이 보장되며, 양방향 조망도 가능하다. 건물 전체로 봤을 때 개별 세대의 평면 배치가 용이하고 토지 효율성이 높아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낮아진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방 하나가 북쪽에 위치해 채광이 좋지 않고 주방과 드레스룸 등 공간은 4베이에 비해 좁다는 단점이 있다. 현관과 거실이 붙어있어 사생활 침해 우려도 있다.

2010년대 유행하고 있는 4베이인 아파트는 전면에 안방과 거실, 방, 방이 배치되고 후면에는 주방과 드레스룸, 공용화장실 등 생활 보조 공간이 배치되는 형태가 된다. 전면 폭은 2베이와 비교해서 1.5배 이상 넓어지지만 세로 폭은 줄어들어 전체적으로 납작한 모양이다.

4베이 아파트는 남향으로 거실과 방을 배치하면 집 전체가 밝아져 채광이 우수하고 난방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통풍 또한 우수하다. 베이 수가 늘어나면서 발코니 길이 또한 증가해서 확장할 수 있는 발코니 서비스 면적도 가장 넓다.

단점으로 방 3개가 모두 폭이 좁아지면서 길쭉해지는 경향이 있다. 집 전체가 가로는 길고 세로는 좁아서 거실에서 방으로 이동하기 위한 복도처럼 죽은 공간이 발생해 공간 활용도가 떨어진다. 건물 전체에 단위세대를 효과적으로 배치하기도 어렵다.

개인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질 수 있지만, 국내 연구를 살펴보면 66~99㎡ 면적일 때 2베이보다는 3베이의 만족도가 훨씬 높았으며(방정훈 외 ‘전면 2실형과 전면 3실형 아파트의 평면 특성 및 만족도 비교’  참고), 3베이가 4베이보다 만족도가 약간 더 높게 나왔다(추선경 외 ‘전면 3실형과 전면 4실형 아파트의 평면 특성 및 거주 후 평가 연구’ 참고).

가변형 등 소비자 선택 공간이 증가 중

아파트의 평면구조는 사는 사람과 생활 방식의 변화를 반영하며 끊임없이 진화한다. 최근 아파트 세대 평면의 도드라진 특징은 ‘평형별 하향화 현상’이다. 평형이 큰 단위세대 특성이 평형이 작은 단위세대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소형평형 아파트라 하더라도 화장실 2개는 필수이고, 3베이나 4베이로 설계되며, 드레스룸과 팬트리 등 수납공간이 계속 넓어지는 추세를 보인다.

저출산으로 인한 가족 수의 감소와 웰빙문화 확산으로 인한 취미와 레저활동이 증가는 건설사들이 주목하는 삶의 변화다. 방이 굳이 많을 필요가 없어지면서 과감한 가변형을 제공하는 아파트 평면구조가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방과 방 사이의 가변형 벽을 없애 하나의 넓은 방으로 사용하는 ‘방 중심 확장형’과 방과 거실을 합치는 ‘거실 중심 확장형’ 등이 가능하다. 거주자의 필요에 따라 공간을 융통적으로 사용하는 가변형은 주거문화의 수명을 연장하고 환경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알파룸을 서재로 꾸민 모습과 취미 레저공간으로 꾸민 모습. ⓒ 롯데건설

2000년대 초반 등장한 알파룸의 경우 테이블 하나 정도 놓을 수 있는 좁은 공간에서 온전한 방 크기에 육박하는 규모로 진화하고 있다. 알파룸은 평면 재배치를 통해 무의미한 자투리 공간들을 합쳐 살려낸 공간으로, 하나의 방 이상으로 삶의 가치에 플러스알파를 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알파룸이 넓어지면서 단순 수납공간 역할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에 따라 아이 방은 물론 간이 서재, 가족실, 공부방, 취미실, 수납공간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알파룸 한곳에 머물지 않고 베타 룸까지 2개소를 제공하는 경우도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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