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서다

[과학명저 읽기] 과학명저 읽기 32

데이바 소벨의 <경도 이야기>는 1995년 출간되어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번역이 되어 나온 책이다. 이 책은 해외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 영국에서는 TV 시리즈로까지 만들어졌고 1997년에는 ‘영국 올해의 책(British Book of the Year)’에 선정되기도 했다.

저자인 데이바 소벨은 이 책으로 일약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2000년에는 갈릴레오의 딸 마리아 첼레스테가 남긴 편지를 기초로 <갈릴레오의 딸>을 써서 다시 한번 그 입지를 굳혔다. 이후 소벨은 <행성이야기>(2005), <코페르니쿠스의 연구실>(2011) 등을 펴내며 꾸준히 작품을 내고 있다. 이런 대중과학서의 성공으로 그는 미국 지질학회의 펠로우로 뽑혔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소행성(30935 데이바소벨)을 얻는 명예를 누리기도 했다.

과학명저 읽기의 후보로 소벨의 <경도 이야기>를 올려놓고 한동안 고민을 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 것은 분명하지만 ‘명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몇 십 년이 흐른 뒤에도 가치가 있는 책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남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당대에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면 거기에는 그 시대 그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무언가가 들어 있을 것이기에 책 자체로서가 아니더라도 역사적인 가치는 남을 것이라 믿는다.

소벨의 <경도 이야기>는 해상에서 정밀하게 경도를 측정할 수 있는 해상 시계를 발명한 18세기 영국의 존 해리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대의 가장 중요한 과학적 문제를 푼 외로운 천재에 관한 진실’이라는 책의 부제는 이 책의 방향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우선 이 책은 ‘외로운 천재’에 관한 이야기로, 짐작하다시피 독학형 천재, 주변의 질시와 경쟁자의 부당한 방해, 그런 외적인 장해물을 극복하는 천재의 의지 등 ‘대장금’ 류의 사극에서 보이는 익숙한 플롯을 따라가고 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목수에 불과했던 존 해리슨이 영국 의회에서 2만 파운드의 상금을 내걸었던 해상에서 정확하게 경도를 찾는 방법을 찾아냈으나 기득권을 갖고 있던 경쟁자들의 질시로 인해 부당한 대접을 받고,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한다는 것이다.

둘째, 부제의 ‘진실(true story)’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이 책은 논픽션임을 강조하고 있다. 소벨은 실제로 1993년 하버드 대학에서 열렸던 경도에 관한 과학사 심포지엄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을 구상하게 되었고 그 심포지엄에서 나온 과학사 학술 발표들이 이 책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을 만큼 실제 역사적 사건과 역사적 인물을 믿을만한 사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그려내고 있다.

이렇게 과학사에서 이루어진 연구들을 자양분으로 하여 자라났다는 점에서 소벨의 이 책은 과학사를 연구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반갑고 고마운 작품이다. 좁은 학계에서 그 중 일부에 불과한 사람들만이 읽고 잊혀질 얘기들이 소벨과 같은 사람들의 손을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질 수 있으니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소벨의 <경도 이야기>는 과학사학자들 사이에 우려를 자아내게 만들기도 한다. 과학사학자들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과학 연구의 이미지를 이 책 한권이 단숨에 ‘도로아미타불’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해리슨의 경쟁자로 그려지는 왕립 천문학자 네빌 매스켈린에 대한 서술이 그런 대표적인 경우이다. 소벨이 “어떤 영웅을 찬양하는 이야기에는 야유해야 할 악당도 필요한 법”이며 “공정하게 말한다면 매스켈린은 악당이라기보다는 반영웅”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소벨은 해리슨의 영웅담을 완성시키기 위해 매스켈린을 악당 혹은 반영웅으로 그려냈다. 그리하여 매스켈린이 해리슨의 경도 시계(크로노미터)에 계속하여 ‘시비’를 거는 이유는 자신이 정교화 시킨 월거 이용법을 경도 측정의 정석으로 만들려는 ‘사리사욕’에 의한 것으로 설명되며 월거 이용법의 실용성보다는 불편함이 더욱 부각되었다.

이러다 보니 존 해리슨이 만든 크로노미터가 정교하고 정밀하지만 비싸고 복제가 힘들어 상용화되기 힘들었다는 점은 사소하게 다루어지고, 월거 이용법과 크로노미터가 경도 측정에서 상보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도 가볍게 언급되었다.

무엇보다 이런 소벨의 서술은 과학사학자들이 보이려고 했던 과학의 이미지, 즉 과학이라는 활동, 그리고 거기서 나온 연구 성과들이 매우 집단적이고 협력적인 작업의 산물이라는 점을 간과하게 만들고 있다. 소벨의 매력적인 글은 오늘날 우리가 쓰는 경도 측정법이 해리슨이라는 외로운 천재의 독자적인 산물이 아니라 그와 매스켈린, 그리고 해리슨의 시계를 값싸고 쉽게 복제 가능하도록 만든 다른 시계공들, 그리고 매스켈린 전후로 월거 이용법을 발전시킨 천문학자들의 공동의 노고를 통해 만들어지게 된 성과라는 점을 잊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소벨의 <경도 이야기>가 거둔 성공은 과학 연구가 실제로는 집단적이고 협력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대중은 여전히 과학 연구와 관련해서 천재, 개인적 작업, 불굴의 집념 등등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소벨은 픽션과 논픽션을 잘 버무려 그런 대중의 취향을 잘 맞춘 셈이다.

물론 대중의 취향은 하나가 아니며, 악당과 천재가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가 평단과 대중 모두의 찬사를 받는 경우도 더러 있다. 누군가 좀 더 균형 잡힌 <경도 이야기>를 다시 쓴다면, 그 책은 학계와 대중의 입맛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까?





소개 도서: 데이바 소벨 저, 김진준 옮김, <경도이야기: 인류 최초로 바다의 시공간을 밝혀낸 도전의 역사>,
             웅진지식하우스, 2012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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