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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플라스틱 시대 연 거대분자 이론

[노벨상 오디세이] 노벨상 오디세이 (128)

상아 당구공을 대신할 물질을 찾던 미국의 존 하이어트는 1869년에 우연한 계기로 니트로셀룰로오스와 장뇌를 섞으면 매우 단단하면서도 매끄러운 물질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 새로운 발명품에 ‘셀룰로이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바로 천연수지로 만든 최초의 플라스틱이다.

미국의 화학자 베이클랜드는 1909년 포름알데히드와 페놀수지를 이용해 페놀수지의 합성에 성공했다. 그는 이 새로운 플라스틱을 ‘베이클라이트’라고 명명했다. 단단하고 절연성이 있으며 부식되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닌 베이클라이트로 인해 본격적인 플라스틱 시대가 열렸다.

플라스틱이 단숨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까닭은 값이 싼 데다 내구성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플라스틱은 다양한 모양과 두께와 길이로 가공하기도 무척이나 쉬웠다. 하지만 당시엔 플라스틱이 어떤 이유로 그처럼 뛰어난 특성을 가지게 되는 건지는 아무도 몰랐다.

고분자에 대한 현대적 개념을 도입한 업적을 인정받아 1953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헤르만 슈타우딩거. ⓒ Fr. Schmelhaus(ETH Zürich)

그 이유를 밝혀낸 과학자가 바로 독일의 화학자 헤르만 슈타우딩거다. 그는 1922년에 플라스틱이 동일한 분자가 수 만개 이상 이어진 거대분자로 이루어진 물질임을 밝혔다. 이처럼 낱개가 아니라 마치 구슬을 실에 꿰어 하나로 연결한 것 같은 고분자 물질은 층층이 쌓을 수도 있고 돌돌 감을 수도 있으니 가공이나 성형이 쉬워질 수밖에 없다.

1881년 3월 23일 라인 강변의 보름스에서 태어난 슈타우딩거는 할레대학, 뮌헨대학, 다름슈타트대학에서 공부한 후 1903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스트라스부르대학의 틸레 교수 밑에서 조수로 일하던 중 케텐을 발견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케텐은 반응성이 매우 크고 불안정한 유기화합물로서 공업적으로 아세트산과의 반응에 의해 아세트산 무수물의 제조 등에 이용된다. 또한 실험적으로도 아세틸화제나 프로피오락톤의 원료로서 중요하게 사용된다.

동료조차 믿지 않았던 거대분자론

1912년에 취리히공업대학의 초청을 받은 슈타우딩거는 천연고무의 구성 물질인 이소프렌과 섬유소인 셀룰로오스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 같은 연구 과정에서 그는 1920년대 초에 거대분자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발표했다. 셀룰로오스는 자연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생체 고분자이며, 천연고무는 천연 고분자의 대표적인 물질이다.

하지만 당시의 어떤 학자들도 그가 주장한 거대분자론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심지어 동료이자 192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하인리히 빌란트조차도 “친구여, 고무를 좀 더 잘 정제해 보시게. 그러면 작은 분자 화합물임을 알게 될 거야.”라고 빈정거릴 정도였다.

사실 당시만 해도 슈타우딩거의 주장은 주기율 정신에 부분적으로 반대되는 이론이었다. 유기화학 실험 도중 좀처럼 녹지 않거나 불용성의 수지 같은 물질이 종종 얻어지곤 했는데, 그 같은 고분자 물질은 화학반응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응집으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슈타우딩거의 거대분자론을 인정하려면 화합물 개념을 포함한 개념들과 정의들을 수정해야 했다.

그런데 그의 거대분자론을 활용해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는 데 성공하는 사례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1933년 독일 한스 페치만이 만든 폴리에틸렌(PE)과 1934년 미국의 월리스 캐러더스가 만든 나일론이다. 폴리에틸렌은 현재 각종 포장 용기로 가장 널리 쓰이는 플라스틱 중 하나이며, 나일론은 최초의 완전한 합성섬유이다.

주장 굽히지 않고 연구 발표 이어가

이처럼 거대분자 이론이 기술적으로 증명되자 약 10년간 이어졌던 논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슈타우딩거는 고분자에 대한 현대적 개념을 도입한 업적을 인정받아 1953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거대분자론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월리스 캐러더스 등이 그 방식으로 새로운 물질을 발명하게 된 배경에는 사실 슈타우딩거의 끊임없는 연구 발표가 큰 역할을 했다. 자신의 견해가 옳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던 슈타우딩거는 1920년 이후로 고분자 화합물에 관해 약 500편의 논문을 썼다. 그 논문들 중 셀룰로오스에 관한 것이 약 120개, 고무 및 이소프렌에 관한 것이 약 50개였다.

현대를 플라스틱 시대라고 지칭할 만큼 플라스틱은 인류 전반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켰다. 슈타우딩거는 기술적이거나 산업적 발전에 직접 관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선구적 연구가 없었다면 이러한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고분자에 관한 그의 연구는 단백질 등 유기체의 거대분자 구조에 관한 분자생물학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했다. 생물 물질의 기본 구성 요소인 효소나 DNA, RNA 등도 분자들이 화학 결합으로 길게 연결된 중합체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분자 물질의 용액 점성도와 그 물질의 분자량과의 관계를 알려주는 ‘슈타우딩거의 식’을 발견하기도 한 헤르만 슈타우딩거는 1965년 9월 8일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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