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을 ‘친숙’으로…“역발상 통해 과학 알릴 것”

[인터뷰] 안민혁 ‘2020 페임랩코리아’ 최우수상 수상자

2005년 동두천의 한 초등학생은 일생일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소심하고 말도 잘 못하던 그가 어머니의 강력한 요청으로 반장 선거에 출마하게 된 것. 당황스러운 심정과는 달리 반장으로 선출된 아이는 이후 줄곧 반장, 학생회장을 역임하며 학창 시절 내내 ‘인싸’의 길을 걷게 된다. 지난 8일 진행된 ‘2020 페임랩코리아’ 본선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안민혁 씨 얘기다.

현재 단국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안 씨는 소위 말하는 ‘평범한 학부생’이다. 이렇다 할 ‘스펙’도, 전공 학위도 아직 없었기에 뜻밖의 성과가 얼떨떨하기만 하다.

“본선 진출만 해도 감격스러운 일인데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돼 놀랐습니다. 사실 대회 참가자들 중 쟁쟁한 분들이 많아 조금 주눅 들어 있었거든요.”

실제 본선에 진출한 이들 상당수는 자신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인재들이었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태아의 기형 여부를 파악하는 새로운 기술을 설명하고, 과학 소통이 본업인 국립중앙과학관 해설사가 면역체계를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는 와중에도 안 씨의 발표는 두각을 나타냈다.

“과장된 몸짓과 발표, 부끄럽지 않은 노력의 결과”

그의 발표가 주목받은 이유는 한 편의 모노 드라마 같은 구성 덕분이다. 마치 연극을 하듯 선명한 몸짓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과학적인 내용을 흥미롭게 전달하는 모습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 여기엔 매일 거울과 마주하며 외치고, 부르고, 놀라고, 설명하는 등 숨은 노력이 있었다.

2020 페임랩코리아 본선에서 발표를 하고 있는 안민혁 씨의 모습. 마치 연극을 하듯 선명한 몸짓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과학적인 내용을 흥미롭게 전달하는 모습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엔 매일 거울과 마주하며 외치고, 부르고, 놀라고, 설명하는 등 숨은 노력이 있었다. ⓒ 사이언스올 캡처

“사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처음엔 너무 부끄러웠어요. 오버액션이 영상으로 기록돼 훗날 흑역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었죠. 하지만 이내 ‘그래, 할 거면 제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페임랩을 준비하고 예선, 본선을 치르는 경험 자체가 꽤나 재미있었다고. 예선 당시 들었던 ‘콩트 쪽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는 심사위원의 피드백 등이 자신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일부러 연극 같은 분위기를 내고자 했습니다. ‘괴짜 과학자’처럼 보이기 위해 의상을 준비하고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며 분위기를 이끌었죠.”

“과학은 사실 평범한 것”… 뻔하지만 소중한 결론

전염병, 인공지능 등 최근 ‘핫’한 아이템이 아닌, 프루스트 현상(특정 냄새에 자극받아 과거의 일을 기억해내는 현상)이라는 주제를 택한 것도 흥미롭다.

“2주가 넘도록 발표 주제를 고민하면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어요. 그런 와중에 평소 좋아하던 음악을 듣다가 영감을 얻게 됐죠.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라는 가사를 듣는 순간 프루스트 현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면서 모든 고민이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유레카’를 외쳤던 아르키메데스의 심정을 느꼈다고 할까요.”

해당 주제가 의미 깊은 것은, 복잡한 전공지식이나 최신 연구 성과에 대한 설명 없이도 일반인이 흥미로워할 수 있는 주제였기 때문. 이는 평소 과학문화에 대한 그의 철학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이 본선 대회 발표의 마지막 장면. 고글을 쓰고 하얀 실험복을 갖춰 입었던 그는 돌연 모든 것을 벗어던지며 “과학은 전문가만의 특별한 영역이 아닌, 일상 모든 것과 연관돼 있는 것”이라 선언했다. ‘참신했던 초·중반에 비해 다소 진부한 마무리’라는 피드백에도 불구, 굳이 ‘뻔한’ 결론을 넣은 것 자체가 ‘과학은 쉽고 친숙하며 일반적이어야 한다’는 지론을 온몸으로 표현한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쉽다’는 것은 과학에 있어 큰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건 저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말인데요. 비교적 작고 왜소한 체형, 이에 더해 그럴듯한 학위나 간판이 없는 ‘평범함’이 오히려 대중과의 거리감을 해소시켜줄 수 있다는 것이죠. ‘저런 사람도 과학을 하는데’라는 이미지가 과학을 친숙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안민혁 씨는 “평범함이야말로 큰 장점이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며 쇼맨십 넘치는 포즈를 취했다. 쟁쟁한 본선 진출자들 사이에서도 유독 돋보인 그의 발표는 이런 자신감이 바탕이 됐다. ⓒ 김청한 / Sciencetimes

“나만의 인생 목표, 과학행사 만들기”

결국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게 된 안 씨에겐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과학교육 전공자로서 대학생 교육기부단 ‘방과후 교실 강사’ 활동을 하는 등 ‘과학’과 ‘교육’의 결합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학창 시절 내내 반장, 학생회장 등을 역임한 덕분인지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너무 좋아요. 제 인생의 롤모델로 삼고 싶은 선생님을 만난 곳도 학교라는 공간이죠. 여기에 어릴 적 다양한 독서와 행사를 통해 흥미를 갖게 된 ‘과학’이 자연스럽게 결합돼 과학교육을 전공으로 삼게 된 것 같습니다.”

궁극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과녁은 과학행사를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 보는 것. 특히 가장 좋아한다는 ‘동두천 청소년별자리 과학축제’와 같은 행사를 다른 지역에서 개최하는 것이 안 씨가 가진 ‘인생 목표’다.

“지난 2018년 관련 진행요원으로 일하면서 메인 이벤트를 담당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어렸을 적 동두천 청소년별자리 과학축제를 통해 과학에의 꿈을 키웠듯이, 저도 다른 이에게 과학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요.”

현재는 졸업 준비와 함께 이를 위한 천문지도사 자격증 취득에 매진하고 있다고.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뭔가를 기획하는 일 자체가 너무 재미있다”는 그가 만들어갈 미래가, 몹시 기대되고 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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