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페어차일드의 실리콘밸리 신화

[세계 산업계 동향] 세계 신산업 창조 현장 (137)

지난 195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남단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 8명의 사업가 모여 남들이 미쳤다고 하는 일을 시작했다. 회사 이름은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 초창기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세계 최초, 최고의 컴퓨터 칩 회사로 부상했다. 거의 60년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 페어차일드 전설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페이차일드 효과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기업 대상의 비영리 조사기구인 엔데버인사이트(Endeavor Insight)는 지난해 페이차일드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추적했다. 그리고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을 새로 확인했다. 그리고 27일 창업 전문지 테크크런치(TechCrunch)에 수록했다.

페어차일드가 창출한 가치… 1조 달러

엔데버인사이트의 레트 모리스(Rhett Morris) 조사부장은 “페어차일드가 창출한 가치를 지금의 미 달러화로 환산할 경우 1조 달러에 달한다”고 말했다. 28일 환율이 1027원인 점을 감안하면, 1027조원에 달하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 신화의 시초가 된 페어차일드에 대한 연구가 최근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여덟 명의 페어차일드 공동창업자들,  ⓒ 위키피디아

실리콘 밸리 신화의 시초가 된 페어차일드에 대한 연구가 최근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여덟 명의 페어차일드 공동창업자들, ⓒ 위키피디아

그러나 창업 당시 페어차일드 설립자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게 되면 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모리스 부장은 말했다. 지금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은 세계적인 첨단기술 단지지만 그때는 정반대였다.

벤처투자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인근 스탠포드 대학 연구실 역시 컴퓨터 칩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민자들 역시 매우 적었다. 값싼 노동력을 구하기 매우 어려운 지역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 지역이 세계 첨단 기술의 허브가 될 수 있을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코닝글라스의 사진광학 전문가 제이 라스트(Jay Last), 컴퓨터 회로 전문가이면서 후에 인텔을 창업한 밥 노이스(Bob Noyce), 그리고 다우케미컬의 야금학자인 셀던 로버츠(Sheldon Roberts) 이 세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MIT 출신의 이 세 사람은 다른 분야 전문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웨스틴 일렉트릭의 엔지니어인 유진 클라이너(Eugene Kleiner)와 반도체 개발자인 줄리어스 블랭크(Julius Blank)는 뉴욕 출신이었다.

화학자 진 호니(Jean Hoerni)와 무어의 법칙으로 유명한 고든 무어(Gordon Moore)는 당시 칼테크(Caltech)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업에 합류한 빅터 크린치(Victor Grinich)는 스탠포트 출신의 연구원이었다.

이들 여덟 명의 창업자들은 각기 다른 도시에 거주하면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어떤 도시에서는 투자자금을 유치하고, 또 다른 도시에서는 고객을 유치했다. 각기 맡은 일들을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사업이 호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여덟 명의 창업자들, 직원 창업 독려해

창업 후 3년이 지난 1960년 연간 수익이 2000만 달러에 달했다. 1960년대 중반 들어서는 신제품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 집적 회로를 팔아 연평균 9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성공과 비교하면 작은 성공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큰 성공은 페어차일드를 통해 향후 세계를 움직일 정도의 중요하고도 전문적인 기업들을 다수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페어차일드는 성장과 함께 사업을 다각화하기 시작됐다. 그리고 사업다각화를 위해 직원 창업을 적극 독려했다. 얼마 안 있어 페이차일드 사업과 관련된 벤처 기업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 기업들이 성공을 거두면서 페어차일드 직원들 사이에는 창업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당시 페어차일드에서 근무했던 A 씨는 혼자 거울을 보면서 “너는 어떠니?(How about you?)”, “무슨 일을 할 거야?(What are you going to do?)”란 말을 반복했다고 회고했다. 많은 직원들이 벤처 창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분위기였다.

여덟 명의 창업자들은 이런 분위기를 더 격려했다. 유진 클라이너는 한 직원이 석영글라스 소재를 생산하는 기업을 창업하는 것을 직접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 벤처기업에서 나온 소재들을 페어차일드 공정과정에 투입했다.

당시 밥 노이스는 페이타일드에 근무하면서 인근 지역에서 전자장비를 생산하고 있는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pplied Materials)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젊은 창업자들을 조언하고 있었다.

제이 라스트는 세 명의 페어차일드 공동창업자와 함께 특수 전자장비 업체인 ‘아멜코(Amelco)’를 창업한다. 그리고 이들 세 명 중 두 명인 밥 노이스와 고든 무어는 수년 후 페어차일드를 떠나 인텔(Intel)을 창업한다.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었다”

여덟 명의 공동 창업자들은 창업회사들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벤처 캐피털이 해야 할 일을 직접 수행할 정도였다. 1961년에는 샌프란시코만 지역의 첫 번째 벤처캐피털을 설립하는데 가담했고, 이 회사를 통해 직원들의 창업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창업 13년째가 된 1970년 페어차일드를 통해 창업한 기업 수가 30개에 달했다. 그리고 이들 스타트업에 고용된 인원만 1만2000명을 넘었다.

최근 여덟 명의 창업자 중 일곱 명이 모여 페어차일드가 있던 지역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고든 무어 씨는 “그 당시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닭이 알을 낫듯이 얼마 후에 보면 2~3개의 벤처 기업이 탄생하고 있었다”는 것.

무어 씨에 따르면 1970년까지 페어차일드의 이런 모습을 세상이 잘 알지 못했다.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1년부터다. 돈 호플러(Don Hoefler)란 이름의 한 언론인이 컴퓨터 칩 사업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92개 스타트업의 가치는 2조1000억 달러

기사의 골자는 이 컴퓨터 칩이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에 있는 기업들을 통해 대거 생산되고 있으며, 칩 대다수가 실리콘을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호플러 기자는 컴퓨터 칩을 생산하고 있는 이들 기업들이 페어차일드를 주축으로 하는 다수의 벤처기업들이라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페어차일드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호플러의 기사가 나간 이후 수년 지나서다.

그리고 그 때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자주 오토바이를 타고 밥 노이스의 집을 방문하고 있었다. 노이스 부인에 따르면 잡스는 한 밤중에 (노이스 집에) 전화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후 잡스가 창업한 애플의 첫 번째 투자자 역시 페어차일드 직원이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직‧간접적으로 페어차일드를 거친 창업사 들의 수가 92개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 기업들의 가치는 2조1000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캐나다. 인도, 스페인의 연간 GDP보다 많은 금액이다.

세계 소프트웨어산업의 중심지 ‘실리콘 밸리’는 세계 각국이 부러워하는 첨단 산업단지다. 많은 나라들이 ‘실리콘 밸리’를 모델로 산업단지를 만들고 있다. 최근 드러나고 있는 페어차일드 초창기 역사가 실리콘 밸리 신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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