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구조론이 30년간 지연된 이유

미 해군, 해저관측 결과 외부 공개 막아

현대 해군에게 있어 수온과 해류, 조류 변화 등에 대한 과학적 정보는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첨단 무기를 사용하는 해군일수록 수중 환경에 대한 정확한 예측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군 관계자의 판단이다. 그런 만큼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해군의 군사기밀은 민간 공개가 엄격히 규제돼 왔다.

그러나 최근 과학자들에 의해 그동안 미 해군에서 어떤 연구를 수행해왔으며, 어떤 내용을 군사기밀로 공개금지하고 있었는지 그 내용이 밝혀지고 있다.

미 해군이 지각과 관련된 연구 결과를 군사기밀화하면서 '판구조론'을 정립하는데까지 30년에 가까운 기간을 낭비했다는 미 지구물리학회 보고서가 발표됐다.

미 해군이 지각과 관련된 연구 결과를 군사기밀화하면서 ‘판구조론’을 정립하는데까지 30년에 가까운 기간을 낭비했다는 미 지구물리학회 보고서가 발표됐다. 사진은 판구조론에 의한 지각운동을 표시해놓은 지도 ⓒ Wikipedia

“2차 세계대전 중 관측결과 군사기밀로 지정”

14일 ‘라이브 사이언스’에 따르면 하버드 대학의 과학사학자인 나오미 오레스크(Naomi Oreskes) 교수는 워싱턴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 지구물리학회(AGU) 미팅에서 “그동안 미 해군은 지각구조를 꾸준히 연구해 왔다”고 말했다.

오레스크 교수는 “그러나 미 해군은 연구 결과를 군사기밀화해 외부 공개를 금해오면서 지구를 이해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좌절시켜왔으며, ‘판구조론’을 확립하는 데까지 30년을 지연시켜왔다”고 비판했다.

‘판구조론(plate tectonics)’은 지구 표면이 여러 개의 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판들이 움직이면서 화산활동, 지진과 같은 지각운동이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이는 1915년 독일의 지구물리학자 알프레트 베게너(Alfred Wegener)가 주장한 대륙이동설(continental drift)을 발전시킨 것으로, 현재에도 지구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론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오레스크 교수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 해군은 지난 1930년대 초부터 해군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지각구조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왔다. 그럼에도 연구 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것은 그 안에 많은 양의 해저 관련 데이터가 포함돼 있기 때문.

이 자료들은 모두 군사작전을 위해 활용돼왔으며, 미 해군 측에서는 이런 이유로 관련 데이터를 군사기밀화해 일반에 공개하는 것을 철저히 차단시켜왔다.

1938년 미국의 민간 과학계에서도 지각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확립하고 있었다. 지각의 강도 변화에 따라 지각이 움직이면서 화산과 지진을 유발하고 있으며, 지각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할 경우 이런 재난을 대비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과학자들의 노력은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전면 중단된다. 이런 상황에서 판구조론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미 해군에 합류하게 된다.

“지구과학이 일방적 조치로 인해 30년 동안 동면”

전쟁 기간 동안 미 해군의 도움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이 연구 결과들은 모두 군사기밀로 지정돼 외부 공개가 불가능해졌다.

오레스크 교수는 “특히 심해 측정과 관련된 중요한 데이터들이 일체 공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지구물리학자들은 미 해군의 이런 조치를 ‘해군의 철의 장막(Navy’s Iron Curtain)’이라며 조롱했다.

오레스크 교수는 “과학계에서는 위대한 발견이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며 “미 해군의 일방적인 군사기밀 조치는 이런 위대한 발견을 막았으며, 3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과학자들이 허송세월하게 만들었다”고 분개했다.

과학자들의 연구가 결실을 본 것은 1960년대 들어서다. 당시 프린스턴 대학의 지구과학 교수였던 헨리 헤스(Henry Hess)가 알프레트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을 이어받아 판구조론을 확립했다.

헤스 교수가 판구조론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은 군 관측망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 해군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구 소련과 경쟁적으로 설치했던 지구 전체에 대한 관측시설을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헤스 교수가 한 일은 1938년까지 지구물리학자들이 해온 일과 연속선상에 있었다. 1939년 발발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해군에 흡수됐던 지각 연구가 미 해군의 외면으로 동면해 있다가 헤스 교수를 통해 거의 30년이 지난 후에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워싱톤 지구물리학회에 참가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지구를 이해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미 해군의 군사기밀 조치로 인해 많은 세월을 허비했다는데 대해 크게 분노하고 있는 중이다.

지구물리학자들이 거론 중인 판구조론은 움직이는 대륙을 판으로 정의하고, 판이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을 지각과 지구 핵 사이의 부분인 맨틀(mantle) 속 대류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지구 표면에는 북아메리카판·남아메리카판·유라시아판·태평양판·아프리카판·인도-호주판·남극판 등 7개의 커다란 판과 함께 중간크기의 카리브판·나스카판·필리핀판·아라비아판·코코스판·스코티아판, 그리고 이외의 작은 여러 개의 판이 있다.

판구조론에 의하면 깊은 해구는 지각이 깊게 가라앉는 곳이다. 이렇게 가라앉는 지각이 지구 내부로 깊이 들어가면 지진을 일으키게 되고, 더 내려가면 그 압력으로 용암이 지표로 솟아오르며 화산을 만든다.

판구조론은 21세기 들어서도 화산과 지진 등의 재난을 설명하는데 가장 많이 적용되고 있는 이론이다. 그러나 판구조론이 정립되기 까지 미 해군과의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 과학사에 기록될 새로운 사실이 지금 워싱톤의 미 지구물리학회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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