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파지가 항생제에 대응하는 새로운 희망?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86)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해 독감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치료법을 연구한다는 기사가 최근 발표된 바 있다.

이에 박테리오파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막상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인간에게 위협도 안되고 도움도 안 되는, 상관없는 존재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테리오파지가 매년 전 세계적으로 300~500만 명이 중증 독감을 앓고, 30~60만 명이 목숨을 앗아가는 독감에 대한 치료제로 개발된다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도 가능해질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러스를 숙주에 따라 동물성, 식물성, 세균성으로 나눈다면 파지는 세균성 바이러스다. 박테리오파지라는 이름도 bacteria(세균)+phagein(그리스어로 먹다)에서 따온 것으로 글자 그대로 ‘식균(食菌)’하는 바이러스를 의미한다.

박테리오파지 © 게티이미지

바이러스는 19세기 막판에 발견된다. 처음 발견된 식물 바이러스는 담배 모자이크바이러스(TMV), 동물 바이러스는 구제역바이러스였다. 세균 바이러스인 파지는 한참 뒤인 20세기에 발견됐다.

최초 발견자는 영국 미생물학자 퉈트(Frederick Twort, 1877~1950)로 추정된다. 1915년에 ‘세균을 녹이는 투명한 물질’을 발견했지만 효소라 생각하고 추가 연구는 하지 않았다. 그 무렵 프랑스계 캐나다인인 미생물학자 데렐(Felix d’Herelle,1873~1949)이 세균만 공격하는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했다.

당시에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일하던 데렐은 군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세균성 이질을 연구하던 중 특이한 현상을 발견한다. 데렐은 환자의 설사를 미세한 필터로 걸러내 무균 상태로 만들어 이질균 배양액으로 썼다. 이질균은 잘 자라더니 곧 집락(colony)에 구멍이 숭숭 뚫리며 죽기 시작한다.

이를 이상히 여긴 데렐은 균이 죽은 구멍 속 액체를 채취해 다른 이질균 배양접시에 떨어뜨렸다. 더 많은 구멍이 생기면서 이질균이 죽어나갔다. 무균 필터를 통과할 정도로 작으면서 스스로 증식하는 것, 이것은 바이러스일 수밖에 없었다. 데렐은 자신이 발견한 이 존재를 ‘박테리오파지’라고 불렀다.

이질에 걸린 환자 © 위키백과

1919년 데렐은 닭똥에서 파지를 분리해 닭 티푸스 돌림병 치료에 성공했다. 같은 해에 파리의 아동 병원에서 이질에 걸린 어린이들에게 인간 최초로 파지 치료법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전에 자신이 먼저 파지를 먹어보고 주사를 맞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파지의 효과는 놀라웠다. 단 한 번 파지 복용으로 며칠 만에 이질에서 회복되었다. 이는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우연히 발견하기 10년 전이었다.

항생제도 없던 시절에 데렐은 인도와 이집트에서 콜레라와 선페스트 환자에게 파지를 시도해 수천 명의 목숨을 구했다. 데렐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그를 모델로 ‘애로스미스(Arrowsmith)’라는 소설도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파지의 효능을 확신한 데렐은 흔한 감염증에 대한 맞춤형 파지 약품을 만든다. 이를테면 대장균용(Bacté-coli-phage), 코감기용(Bacté-rhino-phage), 장질환용(Bacté-intesti-phage), 종기용(Bacté-pyo-phage), 포도상구균용(Bacté-staphy-phage) 이다. 이들은 상품으로 판매되었다.

데렐. © 위키백과

하지만 과학계에서는 여전히 파지 치료법에 반신반의했다. 노벨상을 받은 저명한 세균학자 보르데((Jules Borde)는 데렐을 엉터리라며 비난했다. 파지 치료법의 효과도 의심스럽다는 논란이 있었다.

이에 결국 1940년대가 되어서야 파지가 인정받았다. 전자현미경이 등장하면서 세균을 공격하는 파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렵 파지에 대한 강력한 맞수, 항생제가 등장했다. 1941년에 페니실린이, 1944년에는 스트렙토마이신이 현장에 등장하자 의사들은 항생제에 환호했다. 제약회사들도 파지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항생제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이렇게 파지 열풍은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다.

왜 파지가 그토록 쉽게 항생제에게 무너졌을까? 의사들이 보기에 살아있는 바이러스보다는 하찮은 곰팡이가 만들어내는 물질이 환자들에게 더 안전했을까? 아니면 데렐이 정규교육도 받지 못한 재야의 미생물학자라서 못 미더웠던 것일까?

하지만 파지의 역사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었다. 데렐은 1920년대에 소련을 여행하면서 소련 과학자들로부터 파지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탈바꿈하면서 동시에 전쟁을 준비해야 했던 소련의 입장에서는 파지가 중요한 의약품이 될 비전이 보였을 것이다.

그 결과 1923년 데렐의 도움으로 조지아 트빌리시에 파지 생산 연구소가 세워졌다. 이 연구소는 절정기에는 해마다 수 톤의 파지를 생산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소련군은 장병들에게 파지를 보급했다.

전쟁이 끝나고 같은 연합국이었지만 미국과 소련은 철의 장막을 두르고 냉전을 시작했다. 서방에서는 각종 항생제들이 개발되어 감염병 치료에 활용했지만 소련과 동구권의 사정은 달랐다. 여전히 그들에겐 파지가 중요한 항균물질이었다. 조지아와 폴란드에서는 파지에 대한 연구와 생산이 이어졌고 대규모 임상 실험에도 성공했다.

동구권의 파지 성과가 서방에 알려진 것은 냉전이 해체되고 구 소련과 동구권의 많은 기밀들이 공개된 후였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2008년, 보스턴대학과 MIT가 협력해 살균력을 100배 키운 슈퍼 파지를 만들어냈다.

내성균의 출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항생제 문제에 파지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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