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은 제대로 된 융합을 위한 철학

그의 삶은 통섭, 최재천 교수

2012.02.02 00:00 편집자 객원기자

많은 계단을 올라가 도착한 이대 종합과학관 최재천 교수의 연구실. 조교로 보이는 여성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교수님께서 약속은 알고 계신데요. 그런데 갑작스런 손님이 찾아와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하시네요.” 기자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자 이렇게 덧붙였다. “어느 학생이 무작정 교수님을 찾아왔어요.”

여성의 안내를 받은 곳에서 기다리면서 교수 연구실 바깥에 있는 책꽂이의 책들을 둘러보았다. 과연 통섭학자 최재천 교수의 연구실다웠다. 예술, 미술, 문학, 과학, 철학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 서재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ScienceTimes



사회생물학자 최재천(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스승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consilience를 ‘통섭’이라고 번역하고, 이 개념을 널리 알려 학계에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그의 통섭은 학문을 융합하는 방식 중의 하나로 널리 회자되고 있는 중. 청소년, 교사, 과학자, 인문학자, 예술가 등 학문적 융합을 꿈꾸는 이들에게 대표인물로 그려지기도 한다. 

– 교수님의 저서를 재밌게 읽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평범한 것 같지만, ‘자유의지’ 측면에서는 남들보다 비범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면에서는 철이 없는 거죠. 요즘 대학생들 보면 너무 철이 많아서 걱정이 들어요. 1학년 들어오자마자 스펙 쌓고 취업준비 하면서 낭만과 담을 쌓잖아요. 나는 대학 다닐 때 저런 준비라는 걸 요만큼도 한 적이 없었어요. 객관적으로 보면 전 참 못났고, 요즘 아이들은 준비성이 뛰어난 거죠. 그런데 왜 제 눈에는 요즘 아이들이 불쌍해 보일까 싶어요.”

– 저서를 읽어보니 다방면에 재능이 많으셨더라고요. 만일 교수님께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셨거나, 춤꾼이나 조각가가 되셨다면 과학에 관심을 가지셨을까요?

“만일 춤꾼이 되었다면 과학에 관심을 가졌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마도 여전히 오지랖 넓은 짓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단순한 춤꾼이지는 않았을 거예요. 여전히 어딘가에 연결해서 기이한 짓을 하겠죠. 춤과 법학을 연결하던지, 춤과 양자역학을 연결하던지 무슨 짓이라도 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 가지고는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 책에서 쓰신 국악인 황병기 선생님의 표현처럼 ‘넓고 깊게 파는’ 성격이신 거죠?

“깊게 파는 것 같지는 않네요. 넓게는 파요. 어렸을 때 가족들과 둘러앉아 송편을 빚어도 저는 좀 달랐어요. 저는 그걸 가지고 항상 장난을 했어요. 제 동생들은 송편을 예쁘게 만들려고 애를 쓰죠. 저는 몇 개만 제대로 빚고요. 그 다음 부터는 오리를 만들거나 별을 만들어요. 몇 개 똑같이 만들고 나면 뭔가 다른 짓을 해야 제 정신건강에 좋았어요.”

▲ 최재천 교수의 저서들 ⓒScienceTimes



통섭, 융합, 통합을 구분해 이해해야

–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여러 학문을 조금씩 접한 경험이 지금의 교수님을 있게 한 원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에게 있어 ‘통섭’은 융합과 조금 헷갈리지 않을까요. 

“통섭, 융합, 통합을 함께 설명 드릴게요. 통합은 물리적으로 합친 거예요, 진짜로 섞이지는 않은 상태. 사회통합위원회라는 게 생겼지만 잘 안되잖아요. 물리적으로 합치니 안돼요.

반면 융합은 화학적으로 진짜로 합친 것을 말하죠. 융합(融合)의 융(融)자가 녹을 융자로, 다리 셋 달린 솥 모양의 솥력(鬲)자에 벌레충(虫)을 합친 거거든요. 끓이면 김이 솥뚜껑으로 솟아오르는데 벌레처럼 오른다고 해서 그 모양을 형상화해서 융(融)자가 되었어요. 수소분자 하나가 산소분자 두 개와 붙으면 그게 갑자기 물이 되는 거예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거죠. 융합은 원래 형체가 하나가 되면서 전혀 새로운 것이 되는 거예요.

통섭은 원래 학문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학문들 간에 잦은 소통을 통해 약간 거친 표현을 빌리자면 ‘정(情)을 통해서 자식을 낳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통섭의 예로 인지과학을 들곤 하는데, 인간의 뇌를 가지고 설명하는 뇌과학에 심리학, 철학 등 인문학이 합쳐진 게 인지과학이죠. 그런데 인지과학이 생겨서 뇌과학이 없어졌느냐 하면 뇌과학은 그대로 있거든요.

‘지식의 통섭’이란 책에 쓴 바와 같이 결국 융합은 목표가 될 수 있어요. IT(정보통신기술)와 BT(생명공학)처럼 하나의 새로운 기술로 융합되어야하는 거죠. 그래서 융합은 목표고 목적이 되어야하는 것이지만, 통섭은 융합을 하기 위한 방법론이고 철학이에요.

융합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통섭을 해야하는 건 아닐 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핵융합이란 게 이뤄진 게 아니듯이 제대로 된 융합을 하려면 통섭과 같은 철학, 통섭과 같은 방법론이 필요해요. 학문 간의 넘나듦, 그것이 대칭되거나 흡수되는 게 아니고, 서로 공존하는 형태로 이뤄지는 거죠.”

“이 세상 모든 일의 끝에는 글쓰기가 있어”
 
최재천 교수는 중고등학교 시절 단편소설전집을 모두 읽고 시인의 꿈을 키우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진로를 이과로 정하고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 공부를 했다. 뜻밖에 그곳에서 제대로된 글쓰기 수업을 처음으로 배우게 된다.

바로 로버트 위버 교수의 테크니컬 라이팅(기술적 글쓰기) 수업이다. 시인이 되려했던 학생 최재천을 알아본 위버교수는 그에게 개인교습을 제안했다. 이 경험 덕분에 최재천 교수는 지금의 글솜씨를 갖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 교수님께서는 글 잘 쓰는 과학자로 유명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과학자 중에 그런 분이 거의 없어요. 특히 잘 나가는 대중과학서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요.

“우리나라가 잘못 되었죠. 외국에는 대단한 작가 중에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굉장히 많거든요. 우리나라만 이상해요. 과학자는 글을 못 쓰는 게 당연한 나라예요. 저는 이상한 구조의 덕을 보는 거죠.”

– 국내에서 과학 글쓰기 강의를 해주실 생각이 있는지요?

“과학 글쓰기 강의를 따로하는 건 아니지만, 글쓰기 강의는 지금도 자주 나가고 있어요. 요즘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많이 인식하고 있잖아요. 대학마다 글쓰기 센터가 생겨서 이런 곳에서 계속 강의요청을 해와요. 

글쓰기 강의에 가면 저는 학생들에게 처음에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해요. ‘제가 여러분 보다 2~3년 정도 인생을 더 산 것 같은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학생들이 2, 3년만 더 사셨습니까 그런 표정으로 저를 보며 웃죠. 이야기를 이어나가요. ‘제가 여러분 보다 2~3년 정도 더 살아본 것 같은데 살아보니까 깨달은 게 있어요. 이 세상 거의 모든 일의 끝에는 글쓰기가 있더라는 것.’ 그럼 학생들이 ‘에이, 설마’ 그런 표정이에요.

한번 생각해보죠. 교수가 되면 논문을 써야 하잖아요 그런데 똑같은 내용의 논문이라면 결국 얼마나 글을 잘 쓰냐에 따라서 유명한 잡지 게재여부가 판가름이 되죠. 실제로 훌륭한 학자들이 쓴, 세상에 많이 알려진 논문을 보면 범상한 제목이 하나도 없어요. 우리나라 교수들이 좋아하는 ‘00에 대한 연구’ 이런 제목은 하나도 없어요. 네이처지, 사이언스지에 실리는 논문 제목만 보면 알 수 있죠.

궁극에 가면 글쓰기 싸움이더라고요. 만약 회사 취직을 한다면 기안문을 써야 하잖아요. 만일 치킨 장사를 한다. 그럼 전단지 한 페이지에 얼마나 기가 막히게 잘 쓰느냐 여부가 치킨집 성공을 판가름하는 거죠. 연애할 때는 연애편지 잘 써야 배우자를 잘 얻는 거고요. 이외수 선생님 트위터 팔로워가 왜 그렇게 많겠어요? 140자 그 짧은 글 안에 기가 막히게 잘 쓰시니까 팔로워가 많은 거잖아요.”

– 특히 과학에서 글쓰기는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일반인에게는 과학이 어려워서 멀게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글쓰기 강의에서 제가 과학 글쓰기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예로 주로 제임스 왓슨을 이야기해요. 제임스왓슨이 노벨상을 받았던 해에 같은 논문으로 3명이 함께 받았거든요. 세월이 지난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사람들은 왓슨만 기억해요. 얼마나 웃겨요. 다른 두 명의 영국 과학자보다 열두 살이나 어린 미국출신 왓슨만 기억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다른 두 사람은 노벨상을 받고 난 후에 과학논문만 썼고요, 왓슨은 대중과학서인 ‘이중나선’을 썼어요.

그렇게 해서 왓슨이 유명해진 것이 끝이냐 그게 아니라 그는 그런 인지도를 통해 전 세계적인 휴먼게놈프로젝트를 이끌어냈어요. 만약 다른 노벨상 과학자 크릭이 하겠다고 덤볐으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왓슨이니까 의회에서 예산을 얻으려고 갔더니 국회의원들이 제임스왓슨의 저서 ‘이중나선’을 이미 대학교 때 다 읽고 자랐다는 거죠.

왓슨이 글솜씨로 더 유명해졌다는 게 의미가 있는 게 아니죠. 그의 글솜씨는 어마어마한 학문을 여는 데 길이 되었어요.”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