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테크늄과 인간의 공진화?

[과학명저 읽기] 과학명저 읽기 34

기술에 대한 담론은 과학에 대한 담론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순한 경향을 보인다. 학생들에게 기술을 주제로 글쓰기를 시켜보면 대개 기술의 ‘양면성’을 거론하고 현명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모범답안을 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기술은 문명의 이로운 장치를 통해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해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환경오염이나 인간소외 문제처럼 여러 부작용도 있으니, 우리는 현명한 기술개발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설명 패턴은 ‘모든’ 구체적인 기술에 대한 분석에도 똑같이 동원된다.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사람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단점이 있다. 유전자변형 기술은 우리가 원하는 형질을 가진 생명체를 얻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단점이 있다.

기술의 양면성에 대한 담론이 이렇듯 지배적인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기술발전을 옹호하거나 일방적으로 기술발전에 반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케빈 켈리의 <기술의 충격>은 독특하다. 그는 매우 적극적으로 기술개발을 옹호한다. 기술개발에 어떠한 사전적 제한을 가하려는 제도적 노력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

물론 일단 기술을 개발하여 사용한 후에 등장하는 문제점을 바로바로 고치려는 노력의 중요성까지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일단 기술개발과 개발된 기술의 광범위한 사회적 확산 이후에 진행되는 모니터링과 피드백을 통해 대처할 문제이지 기술개발 단계에 제한을 가함으로써 대처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켈리는 기술발전을 옹호하면서 동시에 기술발전에 일방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알게 모르게 어떤 형태로든 기술에 의존하고 있음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심층생태주의자가 문명파괴론자조차 현대 기술문명을 완전히 떠나서는 생존하기조차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말이다. 결국 우리는 기술을 떠나 살 수 없는 상태에 도달했으며 기술을 부인하거나 기술을 배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켈리 주장의 핵심이다.

재미있는 점은 켈리가 현대 기술의 사용에 있어 매우 선택적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은 스마트폰은 물론 휴대 전화도 이 책을 쓸 당시에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이나 일을 위해 꼭 필요한 기술만을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 첨단기술을 대중적으로 소개하고 비평하는 <와이어드>의 공동창립자이자 오랫동안 편집장을 맡았던 사람의 생활 습관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켈리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무조건 열광하는 단순한 기술광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가 기술의 장점으로 가장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기술이 개인의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는 점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기술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을 기술의 도움으로 할 수 있게 된 수많은 사례를 나열하면서도, 켈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기술의 발전을 수동적으로 따라가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실현된 수많은 기술 중에서 자신의 선택에 따라 일부 기술을 선택적으로 활용하여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켈리가 꿈꾸는 낙관적 기술미래의 전망이다.

여기까지 보면 켈리의 주장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켈리는 이 주장에 더해 존재론적으로 매우 강한 ‘테크늄’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인다. 켈리에 따르면 테크늄은 휴대전화나 노트북처럼 단순한 개별 기술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그러한 기술들이 전지구적, 대규모로, 상호연결된 시스템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상당히 추상적인 테크늄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켈리는 우리가 (켈리처럼 부자가 아니라도) 과거의 우리 조상에 비해 얼마나 많은 기술적 산물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지적한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조차 적어도 백개 이상의 기술적 대상에 둘러싸여 있다. 입고 있는 옷이나 간단한 세면 도구, 필기 도구, 신발 등은 기본이고 우리들이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과정에는 운송 수단이나 통신 수단처럼 수많은 기술적 인공물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강조한 후 켈리는 테크늄에 대해 더욱 논쟁적인 주장을 제기한다. 즉, 테크늄이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진화’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진화는 특정한 방향성을 가진 ‘진보적 진화’이다. 즉, 테크늄의 성장은 보다 더 ‘빠르고, 저렴하고, 좋은 품질’의 방향으로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기술이 정확히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지에 대해 탐색할 필요가 있다.

<기술의 충격>의 원제가 ‘What Technology Wants(기술이 원하는 것)’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켈리는 기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내는 일은 쉽지는 않지만, 세계 여러 곳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이 수렴하는 여러 사례를 제시하면서 기술이 방향성이 정해져 있다는 점을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술의 역사에는 수렴의 사례만이 아니라 수레바퀴의 발명처럼 역사적으로 드물게 나타난 후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는 사례도 많다는 점은 무시되고 있다.

테크늄의 진화에 대한 켈리 주장의 무리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테크늄의 진화 방향이 미리 정해져있다는 말은 이 책에 대한 한 서평자가 비꼬듯이 빅뱅이 시작될 때 블랙베리폰이 나올 것이 예정되어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켈리가 진화가 작동하는 방식에 방향성을 부여하는 것은 기술진화를 유비하는 생물학의 진화에 비추어 보거나 기술의 역사에 비추어 보아도 모두 문제가 있다.

일단 켈리는 테크늄의 진화 과정과 생태계의 진화 과정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데, 생물학적 진화의 특징은 미리 정해진 방향성이 없으며 우발적인 사건에 따라 진화의 전개 양상이 결정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6천 5백만 년 전에 거대운석이 지구와 충돌하지 않았다면, 당시 공룡들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던 (인류의 조상을 포함한) 포유류가 지구 생태계의 전면에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고 지금 내가 이 서평을 쓰고 있지도 못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기술의 역사도 수많은 우발적, 역사적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차의 선로 폭이 선로 위를 달리는 전동차의 폭에 비해 좁은 이유는 증기기관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미 깔린 선로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선로의 폭은 말이 끌 수 있는 힘에 의해 제한되었기에 증기기관차가 끌 수 있는 객차의 폭보다 좁았다. 새롭게 선로를 까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그 이후의 기술 발전은 선로의 폭을 유지하고 대신 좁은 선로 위를 달리는 큰 폭의 객차의 진동을 줄이는 기술을 발전시키게 된다.

이처럼 켈리의 테크늄 진화에 대한 분석에는 기술 발전의 경로의존적 요인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빠져 있다. 기술 발전에 경제적 요소가 차지하는 중요한 비중도 다루지 않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아쉬움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례를 비롯하여 기술발전의 경로의존성의 사례를 켈리는 기술의 결과물이 어떤 부작용과 혜택을 줄지 미리 알 수 없다는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켈리는 기술발전의 불확실성으로부터 기술의 초기 발전 단계에서 미리 선제적으로 기술 연구와 확산에 제한을 가하는 ‘사전예방 원칙’이 부당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자신이 드는 사례들이 기술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결정되어 있다는 생각과 긴장 관계에 있다는 점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잇는 듯하다.

켈리가 테크늄의 진화가 내재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간과 테크늄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며 인간이 기술적 진화의 ‘멋진 신세계’에서 번영할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즉시, 생태계의 진화가 그러하듯, 기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체가 인간의 기술 개발의 과정과 무관하게 결정될 수는 없다.

인간과 기술의 공진화를 강조한다면 당연히 기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인간이 무엇을 원하는지 (단순히 편리한 기계장치에 대한 욕구가 아니라 보다 나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열망까지 포함하여)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며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은 결국 사회적, 제도적 수준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켈리는 행동우선원칙을 강조하면서 기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우리가 적극적으로 탐색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런 제안 자체가 기술의 ‘선택’을 고정된 것으로 물화시킬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켈리의 책은 기술에 대한 치밀한 학술서로 보기에는 논증에 여기저기 허점도 많고 일관성도 부족하다. 하지만 이런 모든 단점을 메워 줄만큼 재미있고 풍부한 사례 연구를 담고 있다.

특히 기술 문영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상징하는 유나바머가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얼마나 많은 기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상세하게 분석한 10장 ‘유나바머는 옳았다’나, 기술의 발전에 종속되지 않고 개인이나 공동체의 선택을 통해 기술을 선별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가능성을 예시한 11장 ‘아미시파 기술광이 주는 교훈’ 등은 흥미진진하면서도 동시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기술에 대한 상식적 담론이 갖는 진부함에 지친 독자라면 켈리의 책에서 기술이 제기하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개념적, 사회적, 문화적 논점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소개도서: 케빈 켈리 지음, 이한음 옮김, <기술의 충격>, 민음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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