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성별, 유전자 증폭하는 ‘인핸서’가 결정

SOX9 유전자 높으면 남성, 낮으면 여성

아기의 성별은 어떻게 결정될까? 대부분의 상식대로 염색체에 의해서 결정된다. 염색체가 XX이면 여자아이, XY이면 남자아이다.

그러나 그게 다일까? 염색체가 XX가 되는지 혹은 XY가 되는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유전자가 있다.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를 결정하는 실력자가 숨어있는 것이다.

호주 멜버른 머독 어린이연구소(Melbourne’s Murdoch Children’s Research Institute)는 최근 어린아이의 성이 어떻게 정해지는지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했다.

그에 따르면, 단순히 X염색체와 Y염색체만이 아이의 성별을 결정하는 요인은 아니다. 남녀 성을 결정하는 유전자의 활동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조절기’의 작용이 매우 중요하다.

인핸서의 수준에 따라 남녀가 결정된다. ⓒ Pixabay

인핸서의 수준에 따라 남녀가 결정된다. ⓒ Pixabay

이들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SOX9이라는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는 3개의 핵심 인핸서(enhancer, 증폭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논문 제목은 ‘핵심 인핸서의 중복이나 결핍에 따른 인간의 성 전환’(Human Sex Reversal is caused by Duplication or Deletion of Core Enhancers Upstream of SOX9)이다.

어린 아이의 성은 수정 때의 염색체의 형태에 의해 결정된다. X염색체 2개를 가진 배아는 딸이 되는 반면, XY염색체를 가진 배아는 사내아이가 된다.

이때 Y염색체는 아주 중요한 유전자인 SRY(serendipity gene)를 운반하는데, 이 유전자는 SOX9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유전자에 작용한다. 바로 이 SOX9 유전자가 배아에서 고환이 발달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SOX9 유전자의 수준이 높아야 정상적인 고환의 발달이 이뤄진다.

인핸서 변형이 생기면 성전환 발생 

그런데 만약 SOX9의 활동에 어떤 변형이 일어나서 SOX9의 수준이 낮아지면 어떻게 될까? 고환은 발달하지 않으므로, 성 발달의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

인간 DNA의 90퍼센트 이상은 소위 말하는 ‘정크 DNA’나 ‘암흑물질’로 이뤄져 있는데, 바로 이 정크 DNA에 매우 중요한 기능이 들어있다.

정크 DNA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유전자의 활동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조절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DNA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이 인핸서가 바로 태아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번 논문의 주저자인 멜버른 대학 앤드류 싱클레어(Andrew Sinclair) 교수는 “이번 연구는 어떻게 SOX9 유전자가 인핸서에 의해 조절되며, 이러한 인핸서의 변형이 성 발달의 혼란을 가져오는지를 이해하게 해 준다”고 말했다.

태아가 XX 염색체를 가지면 난소가 발달해서 여성이 되지만, 이 인핸서가 추가로 복사돼서 SOX9 수준이 높아지면, 난소 대신 고환이 발달한다. 마찬가지로 XY 염색체를 가졌지만 SOX9수준이 낮으면 고환 대신 난소가 발달한다.

연구팀은 태아의 성을 결정하는 3개의 인핸서를 발견했다. 이번 논문의 제1저자인 브리타니 크로프트(Brittany Croft) 박사는 “인간의 성전환은 SOX9 유전자를 조절하는 이 핵심적인 인핸서를 획득하느냐 잃어버리느냐에 따라 결정되므로, 결과적으로 이 3개의 인핸서는 정상적인 고환 및 남성 발달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거 연구자들은 단지 성 혼란을 겪는 환자들을 진단하기 위해서 유전자만 들여다 보았다. 그러나 유전자 외에 인핸서를 볼 필요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중요하다는 크로프트 박사의 의견이다.

인핸서가 변형되면 성전환이 이뤄진다. ⓒ Pixabay

인핸서가 변형되면 성전환이 이뤄진다. ⓒ Pixabay

싱클레어 교수는 “인간의 유전체에는 약 2만2천 개의 유전자를 통제하는 약 100백만 개의 인핸서가 있다”고 말했다.

이 인핸서들은 주로 정크 DNA, 혹은 암흑물질이라고 불리는 ‘유전자 바깥’에 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질환을 진단하는 핵심은 DNA의 덜 알려진 곳에 숨어있는 이들 인핸서에서 발견될지 모른다.

정크 유전자의 중요성은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1991년에 과학자들은 생쥐의 배아에 SRY 유전자를 집어넣어서 암컷 생쥐를 수컷 생쥐로 바꾸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유전자 하나가 어떻게 동물의 성을 바꿀수있는지를 보여준 실험이었다.

정크 DNA의 중요성 다시 부각돼 

올해 6월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소개됐다.

과학자들은 DNA에서 인핸서 13을 제거하면 수컷 생쥐가 난소를 가진 암컷 생쥐로 변하는 실험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인핸서 13 역시 생쥐 배아가 난소를 가진 암컷으로 성장하는지, 혹은 고환을 가진 수컷으로 성장하는지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부스터 역할을 한다.

당시 이 논문을 발표한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Francis Crick Institute)의 로빈 로벨-뱃지(Robin Lovell-Badge) 박사는 27년전에 SRY를 발견한 과학자로서, 다시 한 번 정크 DNA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줬다.

인핸서 하나가 이렇게 남녀의 성을 구별할 만큼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드러나면서, 이를 담고 있는 정크 DNA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는 형국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암흑 속에 숨어있는 정크 DNA 속에 ‘선조들이 겪은 역사적인 경험’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습관’이나 ‘행동의 결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8730)

뉴스레터 구독신청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