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뒤바뀌는 준거집단

‘부산행’ 에 축약된 생의 유동성에 대해

우리 가족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나는 어느 학교에 소속되어 있거나 졸업했고 종교는 무엇이며 어떤 사람들과 친교를 유지하고 있는지 등은 내가 속한 준거집단을 말해주는 예이다. 그런데 최근 준거집단에 한 가지 기준이 더 추가되어 있는 듯하다. 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가 그렇지 않은가. 좀 더 넓게 말해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가 아닌가까지.

매일 어느 지역에 몇 명의 확진자가 나왔을까. 이것은 최근 몇 달간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버렸다. 거기에 내가 사는 동네 주변의 확진자 정보를 제공하는 안전 안내 문자가 도착하면 순간적으로 심장이 졸아들게 된다. 확진자 동선 안내에 들어가 보고 내가 갔던 장소와 날짜가 겹치지 않으면 한숨을 돌리지만 다음 순간 그 동선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며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이 돌아다닌 것일까. 마스크를 하고 갔다는데 정말일까라는 불안이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도 한다.

그러다 자신에게 경미한 감기 증상이라도 발견되면 혹시 내가 확진자가 아닐까. 며칠 사이 이곳저곳에 갔는데 확진자로 판명이 돼 내가 간 곳에서 접촉한 사람들에게 병을 옮긴 장본인이 되어 버리면 어쩌나. 내가 남에게 했던 원망이 고스란히 나에게로 향하지 않을까. 이전과는 다른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며칠 자가 격리 후 증상이 사라지거나 혹은 코로나19 검사 후 음성 판정을 받게 되면 불안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확진자·비 확진자 그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붕 떠 있는 자신을 비감염자 집단으로 되돌려놓는다.

하지만 이제는 절감한다. 당장 내일이라도 자신의 준거집단이 변화될 수 있다는 걸. 확진자와 접촉하지 않고도 감염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최근, 이는 더 선명해지고 있다.

‘부산행‘은 좀비 바이러스를 싣고 부산으로 향하는 442km의 거리 내내 좀비에게 물리면 여지없이 좀비가 되어버리고 마는 초 공포의 상황을 그렸다. ⓒ(주)NEW

‘부산행’은 부산으로 향하는 442km의 거리를 달리는 동안 열차 안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는 모습을 그린 영화이다. 좀비에게 물리면 여지없이 좀비가 되어버리고 마는 초 공포의 상황. 좀비가 머무르는 칸에서 미친 듯이 도망쳐 다음 칸으로 향하고 나면 미친 듯이 따라오는 좀비들을 차단할 방법은 단 하나, 죽을힘을 다해 열차 칸의 문을 닫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문을 닫던 내가 좀비에게 물리고 나면 함께 문을 닫던 사람들이 나를 차단하기 위해 내 앞의 문을 닫아버린다. 그들에게 함께 좀비를 막아낸 나에 대한 연민 따위는 없다. 왜냐하면 나조차 그들을 좀비로 만들어버릴 좀비이니까. 수시로 반복되는 이 역전, 코로나19 앞에 선 우리의 모습과 닮은 꼴이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 앞에서 사람들은 격리를 위해 문을 닫는다.  하지만 감염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두려움에 문을 닫아버린 사례들도 있었다.  코로나19 의심증상이 없는 대구 경북 지역 사람이 다른 지역 병원으로 가 진료를 받으려 해도 대구 경북 지역에서 왔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구 지역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고열로 병원을 찾아 폐 염증으로 위독하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이유로 입원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는 뒤늦게  대형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그리고 사망 후 최종적으로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았다.

바이러스에 전염되지 않았는데도 좀비가 있는 칸을 통과했다는 이유로 15호 칸에 들어서지 못하게 되자 영국이 문을 부수는 장면 ⓒ(주)NEW

비슷한 일은 영화 속에서도 벌어졌다. 석우와 상화는 자신들이 위치한 9호 칸에서 13호 칸 화장실로 가 좀비를 피해 갇혀있는 석우의 딸과 상화의 아내를 구해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15호 칸으로 간다. 목숨을 내건 사투 끝에 도착한 그곳이었지만 그들 앞에 열려 있어야 할 15호 칸의 문은 닫혀버리고 만다. 그들은 좀비에게 물리지 않아 아직 바이러스가 전염되지 않았는데도 좀비가 있는 칸을 통과한 그들 역시 감염자일 거라는 용석의 주장 때문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종길은 인간의 이기심을 한탄스러워하며 좀비들이 있는 칸의 문을 열어젖혀 생존자들을 떼죽음으로 몰고 간다.

불가해한 생의 유동성, 다소 긴 시간을 두고 그것이 펼쳐지기 때문인지 우리는 그것을 체감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세상 속 우리는 누군가를 향해 문을 걸어 잠그며 외로워하고, 당장 내 앞에 문이 닫힐지 모르는 두려움에 떠는 이중고에 시달리며,  또 누군가는 실제로 확진자가 되기도 하며, 그 유동성을 체감했다. 4년 전 영화는 이미 그것들을 부산행 기차 안에 축약해 둔 셈.

그런 우리 앞에 ‘부산행’ 그 후의 이야기인 ‘반도’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부산행’이 개봉됐을 당시, 우리는 열차 안에서 사람들이 보인 이기심을 극렬하게 비난하고 종길이 문을 열었을 때 느낀 짜릿한 쾌감을 달뜬 목소리로 말하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코로나19 세상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부산행’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할 예정이라는 ‘반도’에 조금은 다른 반응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조금은 겸허해진, 그래서 조금은 더 숙고한 이야기들이 오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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