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카고 컬트 과학’에서 벗어나려면?

[과학명저 읽기] 과학명저 읽기 36

흔히 고전을 다시 읽어도 새롭게 읽힌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름 헛된 반문을 한다. 그것은 문어체 문장과 구어체 문장 중 어느 쪽이 더 자주 새로움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교한 문어가 보여주는 엄정한 사고와 풍부한 함의가 담겨 있는 구어 중 어느 쪽이 독자에게 더 많은 영감을 주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이 물음이 헛된 이유가 있다. 독자가 얼마나 영감을 얻었느냐는 아무래도 문체보다는 글에 담긴 생각의 깊이가 가장 주요한 변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체의 차이를 비교하려면 담긴 생각이 깊은 글들을 골라내야 할 것이고, 그 작업은 꽤나 난감할 수밖에 없다.

▲ 1974년 파인만의 졸업연설이 수록된 칼텍의 교지 Engineering Sciences ⓒCaltech


반성하자면 이런 의문은 짐짓 파인만을 얼추 흉내 내고 싶은 자아도취 탓인 듯싶다. 기억대로라면, 그의 ‘카고 컬트 과학’을 읽은 다음에 이런 공연한 궁금증이 도졌다. ‘카고 컬트 과학’은 1974년 칼텍 졸업식에서 파인만이 한 기념연설을 글로 옮긴 것이니 굳이 분류하자면 구어체에 가깝다.

파인만을 굳이 소개할 필요는 없다. 그는 2차대전 이후 전성기를 맞이한 물리학자들 중에서 가장 사랑받은 존재다. 물리학을 싫어하는 사람도, 그가 말하고, 레이튼이 글로 옮긴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 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 >(사이언스북스, 2000)은 재미있게 읽는다. 포복절도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후속작인 <남이야 뭐라하건! What Do You Care What Other People Think?>(사이언스북스, 2004)도 그러하다. 물리를 어려워하는 중고생들에게 이 책을 읽혔더니, 학교에서 배우는 물리학과 파인만이 너무 다르다고 불평이었다. 그러니 몇 가지만 짚어보자. 

하나.  ‘애송이’에 불과하였던 파이만은 로스알라모스에서 정기적인 외출을 허가받은 유일한 물리학자였다. 남은 날이 얼마 없었던 그의 첫 아내를 꾸준히 만나볼 수 있도록 맨해턴 계획의 보안당국이 예외를 인정한 것이었다. 파인만은 곳곳에서 그로브즈 장군을 비롯한 군당국의 경직성을 비웃었지만, 글쎄,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상황이었다면 파인만이 외출허가를 받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둘. 원폭투하 후 고민하던 파인만에게, 존 폰노이만은 과학자라고 해서, 과학기술에 딸려오는 사회적 책임을 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였다. 너그러이 민주적으로 풀어주자면, 노이만은 전문가가 전문지식의 사용방식을 독점적으로 좌우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 셈인데, 파인만은 이 충고를 그답게 충실히 따랐다. 그는 챌린저호 폭발사고 때까지 30여 년간 연방정부 일을 맡지 않았다.

▲ 로스 알라모스에서 오펜하이머(오른쪽)와 대화하는 파인만 (가운데) ⓒ위키피디아

셋. 양자전기동력학을 ‘완성’한 4인방 중에서 토모나가와 슈빙어는 전통적인 연산법을 혁신하였고, 파인만은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문제의 해결책(파인만 다이어그램)을 내놓았다. 이 두 방법이 같은 것이라는 점을 입증한 사람이 다이슨이다. 이들 중 누구의 기여가 가장 큰 것인지는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지만(1965년 노벨상 위원회는 전례에 따라 다이슨을 제외한 3인을 물리학상 수상자로 발표하였다), 한 사태를 보는 새로운 눈을 제시한 사람은 파인만인 것이 틀림없다. 물론 새로운 눈이라고 해서 옛 방식에 비해 논리적으로 우월한 점이 뚜렷하지는 않다. 그래서 파인만의 기여를 높지 않게 평하는 외국 철학자도 보았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파인만의 사례는 과학이 논리적 연산만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 점 때문에 ‘카고 컬트 과학’이 더욱 빛난다. ‘과학적 방법’만으로 충분할까라는 의문을 품은 채로 읽으면 그의 통찰은 더욱 빛난다. 일단 파인만은 과학적 방법의 요체를 나름대로 제시한다. 그것을 요약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지만, 일단 같은 것을 같은 것과 경험적으로 비교하는 것이라고 하자.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겉보기에 과학 탐구의 모든 지침과 형태를 따르”더라도 “필수적인 것”이 빠져 있으면, 과학이 아니라 ‘카고 컬트 과학’에 불과하다.

그 필수 요소는 “전적으로 정직한 과학적 사고의 한 원칙인 과학적 성실성”으로서 “일종의 반대 태도(a kind of leaning backward)”를 갖는 것이다.

구어체의 표현력이 빛나는 대목이라 우리말로 적확하게 옮기기는 무척 어렵다. 풀어쓰면 간결함이 주는 매력이 사라지고, 짧게 풀자니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함의들이 너무 아깝다. 사전들을 뒤적이면 “leaning backward”는 먼저 취했던 태도와 반대 태도를 취하다, (일부러) 강력하게 반대해보다,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다의 정도를 뜻한다. 말하자면, 자신이 입증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일부러 최대한 극단적으로 반대해보는 태도라고 옮길 수 있겠다.

이런 맥락에서 대학의 철학 강의를 괴롭게만 여긴 파인만도 데카르트에 맞닿아 있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의 제4장에서 절대확실한 지식을 찾고자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상념은 모두 폐기해보는 전술을 취했다. 그래서 백일몽도 꾸게 하는 감각은 지식의 확실한 근거가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단순한 수학문제 풀이도 틀리는 것을 보니, 이성도 지식의 확실한 근거가 아니라는 데까지 나갔다. 그제야 이런 저런 의심을 품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점은 감각으로도 이성으로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근대의 첫 울음을 토해내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Je pense, done je suis.”

파인만과 데카르트 모두 방법론적 회의를 채택했지만, 그들의 차이는 여럿이다. 파인만은 상대적으로 더 확실한 지식에 만족했지만, 데카르트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식을 추구했다. 파인만의 의심은 최대한 같은 조건에서 경험을 모아서 비교하는 방식으로 표출되었지만, 데카르트는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것은 전면적으로 부정해버렸다. 무엇보다도 데카르트는 홀로 근대학문의 기둥 노릇을 할 정도로 자존광대했지만, 파인만은 철저한 자기회의의 길이 어렵고 힘들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 그러니 서로 도울 수밖에. 아무래도 파인만이 더 민주적이다.

그만큼 “내 착상이 절대적으로 옳을 리는 없다”고 알면서도 그런 회의 속에서도 서로 어깨 걸고 함께 가는 길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위압적으로 강요되는, 형식화된 수능시험용 ‘과학적 방법’에 주눅들지 않고서도.

“카고 컬트 과학”은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의 마지막 글이기도 하지만, 파인만이 익살을 자제한 말과 글들을 모은 <발견하는 즐거움> (승산, 2001)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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