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충실한 내용으로 삶에 힘 실어

[과학명저 읽기] 과학명저 읽기 25

이 책은 십여 년 전, 인터넷혁명이나 정보혁명의 미래상에 대한 갖가지 상상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하던 시기에 출판되었다. 당시 눈썰미 있는 학자들 사이에서 인터넷혁명이나 정보혁명의 진정한 의미와 미래 지향적 전망을 가장 충실하고 직설적으로 그려 보여주는 책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 이 책은 인터넷혁명이나 정보혁명의 미래상에 대한 갖가지 상상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하던 시기에 출판되었다. ⓒ들녘

비슷한 관심을 현학적이고 추상적으로 표현했던 번역서 몇 편이 순식간에 매진되어 3쇄, 4쇄가 나오기에, 이년 여 뒤 서점에서 책을 다시 구입해야했을 때 몇 번째 판인가 살펴보았다. 그런데 여전히 초쇄였다. 그 책이 그리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는 누가 해 주었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용이 충실하고 잘 씌어졌다고 잘 팔리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함께 들었으니, 아마도 저자는 아니었고, 출판사 일을 하는 분으로부터 들었던 듯 싶다.

그리고 보니 사회와 인류 문명 속에서 과학기술의 위상이나 힘을 잘 분석하여 보여주는 “폭 넓은 의미의 과학고전”을 소개하고 있는 이 ‘코너’에서 지금까지 소개된 이십 여권의 책들 중 국내 저자가 한글로 쓴 책이 아직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다. 독자들이나 책을 소개하는 이들 모두가 국내 저자의 책들을 눈여겨보지 않았거나 과소평가 하는 경향이 있었던 게 아닐까?

과학기술을 다루는 국내 저자의 책들 중 책 한 권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은 작정하고 찾기 시작하면서 곧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용이 충실하고 또 생각해 보니 나 자신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책 한 권으로 이 책을 고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과학기술로 인해 사회, 문화, 경제, 교육 개인의 삶 전반이 변화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는 필연적인 운명도 아니고 또 저항하고 거부해야 할 적도 아니라는 명제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예를 들어 범세계적 통신 네트워크는 통제가 불가능하기에, 당시 한국을 휩쓸고 지나갔던 외환위기에 이어 곧 다시 금융위기가 이어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식의 전망은 당시의 세계금융계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이해를 변호하기 위한 구실일 뿐이라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는 사회 구성원들의 선택에 따라서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역으로 불안한 세계금융의 원인으로 통신 네트워크를 지목하며 그 기술을 거부하는 행위 역시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가 된다.

과학기술이 우리를 해방 시키는가 또는 우리를 닦달하며 위협하는가하는 명제에 매달리기보다는 과학기술로 인한 변화의 열려있는 긍정적 측면을 확장하고 닫혀있는 부정적인 측면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인터넷이나 정보 또는 통신혁명이라는 용어보다 네트워크 혁명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인터넷이라는 수단을 통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양식이 궁극적으로는 개인이나 집단들 사이에 형성되는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보혁명이라는 개념도 현상을 호도할 수 있는 표현이다. 정보가 넘쳐 나지만, 유용한 정보를 선별하여 지식을 창출해 내는 작업은 또 다른 차원의 과제가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이버 대학이 크게 번창할 수 없으리라는 예측도 선보인다. 온라인상으로는 많은 정보 그리고 상당한 지식을 전단할 수 있겠지만, 암묵적인 지식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섬세하고 복잡한 지식의 전수와 형성을 위해서는 결국 사람들이 직접 만나 대화하고 생활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네트워크의 형성을 위해 필요한, 누가 무엇을 알고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판단 같은 것은 온라인을 통해 습득하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이 책이 나 자신을 크게 바꾸었다고 깨닫게 된 내용은 대학교육에 대한 장이다. 저자는 대학 교육과정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유용한 지식을 만들고 선별하며 문제를 스스로 찾아내고 해결하는 힘을 찾으려 노력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리고 보니, 한 주 세 시간이 모자라다고 느끼면서 학기 내내 고대로부터 현대 과학의 많은 내용을 일방적으로 강의하던 내가 학생들의 발언을 종용하며 시간을 여유롭게 쓰기 시작했던 변화가 나 자신의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저자는 세계금융의 변화를 상당히 공들여 그려 보여주는데, 그 내용을 보면, 이 역시 경제학자들만의 관심사일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1970년대부터 금융은 국가의 통제를 크게 벗어나게 된다. 고정환율제가 폐기되고,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세계의 환율 데이터 전용선을 통해 돈을 사고팔기 시작한다. 1년간 국제 무역량이 2조 달러이던 20세기 말에 세계 금융시장의 1일 거래량이 1조 달러였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자유로운 상품교역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금융상품 시장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어떤 방식의 통제가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그런 통제를 왜 미국이 가로막고 있는지도 말하고 있다.

네트워크는 세계 금융시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듯이, 전통적인 직업과 직장의 모습도 바꾸고 있음을 저자는 보여준다. 잘 엮인 지식이 중요해지면서 단순한 경력이나 학력보다는 전문성이나 혁신에 대한 의지가 더 중요한 인선의 기준이 된다. 단순한 정보가 아닌 know-how가 전문성이나 혁신의 뼈대에 있기 때문에 정보들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중요한 경영의 대상이 된다.

기계나 컴퓨터가 할 수 있는 단순노동의 가치는 점차 하락할 것이고, 이들이 대체할 수 없는 고급 정신노동의 가치는 더 상승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배경이 바로 네트워크 혁명에 따른 ‘지식기반사회’인 것이다.

여기까지는 아마도 저자가 종종 인용하고 있는 외국의 저자들도 비슷한 관찰을 하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나아가 이렇게 변화하는 금융공동체, 인터넷 공동체, 직장공동체 등에서 네트워크사회의 열린 측면을 지키기 위한 윤리적 자세를 논한다. 상충되는 요구와 범세계적으로 불확실해지는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네트워크 시대인들이 대화와 타협 그리고 협상을 일종의 자기성찰 과정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겠다.

하지만 저자는 더 나아가 개인의 차이를 부정하는 집단주의는 물론, 고립된 개인이 원자화 되는 시장 시스템 역시 거부되어야한다고 본다. 상호의존 하는 공생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져야 하고, 따라서 네트워크 시대에는 상호의존의 도덕적 의미에 대한 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책이 출판되고 10여년이 지났고, 네트워크 혁명에 새로운 요소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스마트 폰이 등장하여 역시 그 후 등장한 아이팟이나 아이 패드의 기능을 대체해 가고 있다. 대형온라인강좌 (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는 미래의 강의(Coursera) 포맷으로 저자가 지적했던 온라인 강의의 약점을 대폭 보완하는 시도를 선보이면서 또 다른 ‘교육혁명’을 점치고 있다. 이 책에서 예언했던 거대한 금융위기가 있었고, 저자가 지적했던 바와 같은 금융상품 시장의 통제가 논의되었지만, 그 내용이 실행되고 있는 듯 보이지는 않는다.

저자는 1980년에서 2000년 사이에 미국 기업의 최고 경영자와 사원들 사이의 임금격차가 42배에서 475배로 커진 사실을 지적하면서, 사회적 성찰을 기대했지만, 독자들은 그 변화가 네트워크혁명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데 그치는 듯싶다.

저자는 사회 속에서의 과학기술을 연구하면서 “사회를 인식하는 것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다. 저자의 건강하고 교훈적인 성찰이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기 위해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모두가 이 책을 좀 더 ‘성찰적’으로 읽고 있는 꿈을 꾸어 본다.





소개도서 : 홍성욱, <네트워크혁명, 그 열림과 닫힘: 지식기반사회의 비판과 대안>, 들녘,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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