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생성 AI, 인간과의 관계를 사유하다

'미래의 환영' 슬릿스코프 개인전 내달 1일까지 열려

인공지능이 그 어떤 예술보다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표현인 춤을 생성할 수 있을까. 의미 없는 현상만 제시하는 인공지능이라는 가상의 예술가가 만들어낸 작품 속에서 인간은 과연 영혼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것이 과연 녹슬지 않는 영혼일까. 아니면 영혼 없는 강철일까. 이 같은 질문을 던지며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하는 미디어아트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끈다. 전시의 제목은 ‘미래의 환영, (dis)Appearition’다.

슬릿스코프 개인전 ‘미래의 환영’은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한 탈영역우정국 1층에서 오는 3월 1일까지 열린다. ⓒ ScienceTimes

dis)Appearition는 appear와 apparition의 합성어로, 실재와 가상의 무의미한 경계에서 인공지능을 환영적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혹은 그 반대(바라보지 않는)의 양면적, 중첩된 의미를 뜻한다.

예술가와 공학자가 만든 ‘안무 생성 AI’

이번 전시에 참여한 ‘슬릿스코프’는 미디어 아티스트인 김제민과 인공지능 연구 공학자 김근형이 함께하는 아티스트 그룹이다. 팀명 ‘슬릿스코프’는 양자역학의 더블슬릿 실험에서 영감을 얻어 지어진 이름으로, 슬릿 너머에 있는 미지의 세계를 들여다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제민 작가는 “예술가와 공학자가 만나서 춤을 생성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고자 시작했다”며 “이 인공지능은 춤의 원리나 움직임이 상징하는 것에 대한 지식과 감정이나 의지가 없다. 그저 연속된 동작을 계속 관찰하고 비슷하게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학습시켰을 뿐이다. 이처럼 딥러닝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을 보면서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그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또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등 유명 음악가의 작곡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서 만드는 인공지능이나 마이클잭슨이 췄을 것 같은 춤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처럼 기존의 예술 창작을 대신하는 똑똑한 인공지능을 지향한 것이 아니다”라며 “인공지능이 또 하나의 협업자가 되어서 공동창작을 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했다”고 덧붙였다.

길을 찾아주는 인공지능, 운전을 대신해 주는 인공지능 등 쓸모 있는 인공지능이 많은 요즘 세상에서 역설적으로 쓸데없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보자는 것. 예술가의 유희적인 측면에서 잘 놀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 그들의 기획 의도다.

‘슬릿스코프’는 미디어 아티스트인 김제민(좌)과 인공지능 연구 공학자 김근형(우)이 함께하는 아티스트 그룹이다. ⓒ 김제민 제공

작품 ‘slss_sl|lss_sl(부제:스테인리스 스틸)’에서 그 의도가 잘 드러난다. 이것은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작품으로, 관람객이 화면에 나타나는 빨간 공 10개를 터뜨리는 과정에서 보이는 움직임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학습해서 그 동작을 바탕으로 관람객의 예상 움직임 패턴을 출력하게 된다.

김 작가는 “딥러닝이 원리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보여주고 그런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학습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첨단적이고 가장 극단적인 방법을 이용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 없이 표현만, 의미 없는 현상만을 제시하고자 했다”며 “관객 스스로의 겉모습이 씌워진 결과물을 보면서 예술과 인간에 대한 가장 첨예한 이분법적 경계 위에서 그들이 인공지능의 영혼을 발견할 수 있을지를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춤 생성 AI 접목, 국립현대무용단과 공연

이번 전시가 한국과학창의재단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이뤄졌다며 김 작가는 “이렇게 개발된 인공지능을 접목해서 내달에는 국립현대무용단과 함께 ‘비욘드 블랙’이란 공연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이것이 인공지능 안무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CosmosⅠ’에서는 촬영한 카메라 렌즈들 속에서 인공지능이 학습한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춤, 앞으로 도래할 춤을 보여주고 있다. ⓒ 김순강/ScienceTimes

슬릿스코프의 또 다른 작품들은 타블로 비방(Tableau Vivant)이다. 이는 사진 용어로, 본래 19세기 유럽의 사교모임이나 귀족적 연회 등에서 연극의 한 장면 혹은 무언(無言)과 부동(不動)의 상태로 연출하는 놀이를 말한다. 정지된 회화지만 동시에 살아있는 욕체라는 형용모순을 바탕으로 한다.

김 작가는 “사진은 극장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으로 2015년에 타블로 비방 시리즈를 시작했다”며 “사진의 프레임과 극장의 프로시니엄이 복제와 재현이라는 매체성과 극장성을 보여준다. 즉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빈 공간에 지각 가능한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라며 “그것을 이번 전시에는 코스모스를 주제로 다뤘다”고 소개했다.

작품 ‘CosmosⅠ’에서는 촬영한 카메라 렌즈들 속에서 인공지능이 학습한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춤, 앞으로 도래할 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늘 대상을 촬영하던 카메라가 찍히는 대상이 되는 것으로, 주체와 객체가 뒤바뀜으로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공지능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CosmosⅡ’는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겼던 4번째 대국에서 신의 한 수가 됐던 78수의 기보를 촬영한 사진 뒤로 인공지능이 만든 춤추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바둑판을 앞에 두고 이세돌과 알파고가 수담을 나눴던 것처럼 레이어를 경계로 인간과 인공지능이 대화를 나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슬릿스코프 개인전 ‘미래의 환영’은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한 탈영역우정국 1층에서 오는 3월 1일까지 열린다.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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