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통증을 완화해 주는 무통 분만의 역사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98)

무통(無痛) 분만의 사전적인 의미는 출산의 고통(産苦) 없이 아이를 낳는 것을 말한다. 사실, 산고(産苦)보다 더한 고통을 일으키는 병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만큼 출산은 고통스럽다. 그 고통을 없앨 수 있고 산모와 아기 모두 안전하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몇 세대를 올라가면 무통분만을 시도하는 일은 대단히 불경스럽고도 위험한 일이었다.

분만의자. 서양에서는 앉은 자세로 아이를 낳았다. 누운 자세보다는 훨씬 유리하다. ⓒ 박지욱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무통 분만은 창세기에 나온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겪어라’했던 기독교 교리를 부정하는 이단 행위로 규정되었다. 1591년 에든버러에서는 쌍둥이 분만 중에 견딜 수 없던 산고를 겪던 여성은 진통제를 썼다는 이유로 국왕 제임스 1세가 산 채로 화형을 시켰다.

250년이 지난 1853년, 런던에서는 심슨(James Simpson) 산부인과 의사가 클로로포름을 이용해 무통 분만을 했을 때도 교리에 어긋난다는 반대에 부딪혔다.

무통 분만은 일종의 마취법이다.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마취제는 술, 아편, 상추, 사리풀, 맨드레이크 등과 같은 식물성 재료들이었다. 특히 술은 구하기도 쉽고 익숙했기에 자주 쓰였다.

19세기가 되면 화학 연구를 통해 다양한 물질들이 발견, 합성되었는데 그중에는 아산화질소(N2O)에서 처음으로 진통-마취 효과가 발견된다. 하지만 아산화질소는 사람들을 실실 웃게 만드는 독특한 부작용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의료용이 아닌 유흥용으로 쓰였다.

바로 얼마 전까지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마약 풍선’ 혹은 ‘해피 벌룬’안에 들어있는 가스의 정체이기도 하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마약 풍선을 흡입, 소지, 판매, 제공하는 것은 모두 불법 행위이다.

치과용 아산화질소 마취기. ⓒ 박지욱

아산화질소가 유흥용 기체로 큰 인기를 끌자 다른 기체들도 ‘웃기는 성질’이 있는지 알아보는 시도가 있었고, 그러던 중 에테르(ether)의 ‘웃기는 성질’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일부 의사들이 에테르나 아산화질소를 들이마시면 다쳐도 아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마취제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1846년 미국 보스턴에서 에테르 마취를 이용한 외과 수술이 처음으로 성공했다.

미국에서 에테르 마취로 무통 수술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대서양 건너 영국으로도 전해지다 런던에서도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런던의 성공 소식이 다시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 전해졌다.

이에 심슨(James Young Simpson, 1811~1870) 산부인과 의사는 무통(외과) 수술이 가능하다면 무통 분만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끔찍한 진통 중에 진통제를 찾았다는 이유로 쌍둥이를 낳은 산모가 처형된 이 유서 깊은 도시에서 246년 만인 1847년에 심슨은 무통 분만에 성공한다.

무통분만술 보급에 큰 몫을 한 에든버러의 심슨 산부인과 의사. ⓒ 위키백과

하지만 에테르를 겪어본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에테르는 아주 역겨운 냄새가 난다. 산모들이 이 냄새 때문에 질겁을 할 정도였다. 냄새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폭발할 수도 있는 위험 물질이다. 그래서 심슨이 찾아낸 좀 더 나은 마취제가 클로로포름(chloroform)이다.

이후 심슨은 에테르가 아닌 클로로포름을 무통 분만에 사용했고, 뒤이어 외과의사들의 수술장에도 클로로포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보수적인 교단이 외과수술은 놔두고 심슨의 무통분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교단은 여성이 해산의 고통을 겪는 것은 성서에 명시된 신의 섭리라고 밝히면서 심슨이 해산의 고통을 고의로 없애는 것은 중대한 월권행위라고 공격했다.

1849년 심슨은 ‘출산과 수술에서 마취제 사용을 반대하는 종교적 의견에 대한 답변’을 내놓았다. 심슨은 아담의 갈비뼈를 꺼내기 전에 신이 아담을 ‘잠들게 했다’는 성서의 내용을 강조했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재우는 것도 신의 섭리에 맞다고 밝혔다. 아울러 50년 전에 도입된 제너의 우두법 역시 신의 섭리를 거스른다고 반대했지만 아무 문제 없이 잘 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 아편 같은 먹는 진통제는 쓰면서 왜 클로로포름 같은 마시는 진통제를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따졌다.

에테르와 클로로포름. ⓒ 박지욱

물론 심슨의 차분하고도 논리적인 반격에 백기를 내걸 상대는 아니었겠지만 결정적인 한 방은 그로부터 6년 후에 나온다. 1853년에 빅토리아 여왕이 무통 분만으로 출산을 하게 된 것이다.

여왕은 무통 분만에 아주 흡족했던지 4년 후에도 무통 분만으로 공주를 낳았다. 또 2년 후에는 큰 딸도 무통 분만으로 아이를 낳게 했다. 아울러 여왕은 무통 분만법을 개발한 심슨에게 ‘통증을 정복한 자’라는 명예와 작위까지 내렸다. 이렇게 무통 분만이 자리를 잡았다.

물론 지금은 무통 분만에 클로로포름을 쓰지 않는다. 척추 마취법의 일종인 요추 경막에 관을 꽂아 마취주사액을 꾸준히 주사하는 방식을 쓴다(경막외 마취 무통분만법). 덕분에 산모들은 해산의 고통, 스트레스, 탈진을 완화할 수 있는 안전한 무통 분만을 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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