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최신 디지털 기술로 동양 별자리 구현

[융합이 있는 풍경] [인터뷰] ‘영화제작소 눈’ 장성연 대표

「태평성대를 이룩했다고 전해지는 요(堯) 임금 시대에 웬일인지 큰 가뭄이 들었다. 그런데 그 가뭄은 보통 가뭄이 아니었다. 어느 날 열 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오른 것이다. 곡식과 초목이 타죽고 강물이 말라붙는 등 그야말로 대재난이 닥쳤다.

원래 태양은 천제의 아들 열 명이었다. 이들이 동쪽 바다 끝에 있는 거대한 뽕나무에서 교대로 하나씩 떠올라 지상을 비추게 되어 있던 것. 그러나 하염없는 세월 동안 계속해 오던 이 규칙을 무시하고 어느 날 열 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올랐다. 아마 태양의 아들들은 똑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다가 지루한 나머지 한 번 장난을 쳐 볼 생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요 임금은 무당을 시켜 기우제를 지내보았지만 열 개의 태양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내 요 임금은 태양들의 아버지인 천제께 호소했고 천제는 크게 노해 활 잘 쏘는 천신 ‘예’를 하계에 내려 보냈다.

예는 천제로부터 신비한 붉은 활과 흰 화살을 하사 받고 예쁜 아내인 항아(嫦娥)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다. 예는 계속 시위를 당겨 모두 아홉 개의 태양을 격추시켰다. 이렇게 해서 태양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고 겨우 하늘의 소동은 진정됐다.」

▲ 영화제작소 눈에서 제작 중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10개의 태양이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이다. ⓒ영화제작소 눈


9개의 화살로 9개의 태양을 떨어뜨려 세상을 구한 영웅 ‘예’의 이야기. 이는 겨울의 별자리인 ‘호시(弧矢)’에 관한 이야기로,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지원하는 ‘2011년 융합문화사업’ 중 하나인 ‘천문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동양 별자리 스토리텔링 개발’의 내용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과학스토리텔링 사업이 영화인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영화사로는 최초이자 유일한 사회적 기업인 ‘영화제작소 눈’에서 무슨 이유로 이렇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걸까? 사이언스타임즈는 영화제작소 눈의 장성연 대표를 만나 ‘동양 별자리 스토리텔링 개발’에 대한 이모저모를 들어보았다.

“동양에는 동양의 별자리 이야기가 있다”

“같은 별을 봐도 각 나라마다 얽힌 이야기가 다릅니다. 서양에만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한 별자리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에도 천문학에 대한 연구들이 있고 보는 별자리 자체가 다릅니다.”

장 대표와 영화제작소 눈이 동양 별자리 스토리텔링 사업에 뛰어든 것은 서양의 별자리 이야기는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우리 주변의 별자리 이야기를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천문학과 관련된 유서 깊은 전통이 있다. 다만 근대에 이르러 계승이 단절된 채 서양 과학 중심의 천문학으로 대체되고 있는 실정일 뿐이다. 예를 들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국보 31호 첨성대는 세계 최초의 천문대임에도 이곳에서 별을 관찰한 내용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동양의 별자리는 서양 신화에 기반한 서양의 별자리에 밀려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 9개의 태양을 활을 쏘아 떨어뜨리는 명궁 ‘예’. ⓒ영화제작소 눈


영화제작소 눈은 “이는 과학 실증 연구에 바탕한 서양의 천문학이 이식되면서 동양, 특히 한국의 천문학에 대한 연구가 소외되고 그 정서적 기반마저 상실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하고 본격적인 동양 천문학 맥 잇기 작업에 뛰어들었다.

장 대표는 “기존 서양 중심의 천문과학과 다른 동양의 천문과학을 소개해 대중들에게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고 전통과학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2천년 지속된 동양 별자리 스마트폰에 구현

영화제작소 눈은 현재 동양 별자리 어플리케이션 개발 작업에 한창인데, 이는 최신 디지털 디바이스를 활용해 전통과학(동양 천문학)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장 대표는 “향후 제작될 동양 별자리 어플리케이션은 2천년간 지속되어온 동양 별자리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에 구현함으로써 과거와 현대의 과학적 성과의 결합을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장 대표는 이어 “현재 서양의 별자리를 소개하는 ‘Star Walk’라는 어플리케이션이 인기이지만, 동양의 별자리를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은 부재한 상황”이라면서, 서양의 별자리에 해당하는 동양의 별자리 소개 및 별의 밝기(등급), 거리(광년), 위도, 경도 등의 천문학적 정보를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단순한 정보 제공 어플을 만드는 것이 이 사업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 동양의 별자리에 얽힌 설화, 전설, 신화 등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진짜 목적. 장 대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범아시아적으로 공감갈 수 있는 동양적 감수성을 담은 동양 별자리 이야기를 채집해 시나리오화 하는 것이 사업의 1차 목표”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장 대표와 영화제작소 눈은 온라인 동호회, 책 등을 통해 천문학 관련 신화, 전설 및 민담 등의 자료를 모으고, 관련 그림, 텍스트, 벽화 등의 자료까지 조사한 후 이를 동양 과학 및 천문학에 대한 전문가 그룹의 자문을 통해 검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특히 영화제작소 눈이 신경 쓰는 부분은 이렇게 발굴 및 재구성된 이야기의 시각화이다. 장 대표는 “천문지식과 결합된 스토리텔링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이를 어플리케이션에 삽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과학 스토리텔링과 예술의 융합이 이뤄지는 지점이다.

동양 전통과학 대중화의 시금석 될까

▲ 장성연 대표

이렇게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자료와 정보는 2차 가공이 가능하다. 장 대표와 영화제작소 눈이 이를 활용, 동양 별자리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제로 나아가고자 하는 계획은 결코 작지 않다.

장 대표는 이에 대해 “천문학자, 작가, 애니메이터 등으로 TF팀을 꾸리는 등 학습과 재미를 잘 배합한 에듀테인먼트 교재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학교 교재, 체험관, 천문과학 영상자료 등의 교육용 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장 대표는 또한 어플리케이션 내 스토리를 이용해 캐릭터, 출판, 게임, 영화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화, 즉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 활용 가능성도 제시했다. 최근 유아들의 절대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뽀로로처럼 사업이 성공한다면 그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란 분석이다.

서양 별자리에 밀려서 그 명맥이 많이 사라진 동양 별자리와 과학 스토리텔링의 만남. 어찌보면 동양 전통과학의 대중화라는 원대한 목표의 시금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장 대표의 말대로 이 사업이 향후 거대한 시리즈로 성장해, 대한민국 융합문화산업에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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