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에 넣고 쏴도 살아남는 생명체는?

완보동물 물곰, 초당 900m의 충격에서도 살아남아

이스라엘의 무인 탐사선 베레시트(Beresheet) 호는 2019년 4월 달 표면에 착륙하다가 추락해 산산조각이 났다. 이 탐사선에는 인류의 역사와 언어 등의 정보가 담긴 디스크와 인간 DNA 샘플 등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추락한 후 함께 실려 있던 한 생명체의 생존 여부에 전 세계 과학자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사실 어떤 생명체라도 추락할 때의 엄청난 충격, 그리고 추위와 방사선 같은 혹독한 달의 환경을 견뎌내기 힘들다.

물곰은 총알처럼 빠른 속도의 충격과 압력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그 생명체가 물곰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완보동물문인 물곰은 최고 150℃, 최저 영하 272℃까지 견딜 수 있으며, 5,700그레이(Gy)의 방사선에 노출돼도 죽지 않는다. 또한 유럽우주국(ESA)의 실험에 의하면, 인간은 단 몇 분도 버틸 수 없는 우주 환경에서 12일간 생존했다. 베레시트 호에는 수천 마리의 건조된 물곰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최근 영국 켄트대학과 런던퀸메리대학의 과학자들은 베레시트 호에 탑승했던 물곰들의 생존 여부를 밝히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우선 그들은 약 20마리의 물곰에게 이끼와 물을 먹인 후 48시간 동안 얼려서 그들의 신진대사가 정상적인 활동의 0.1%로 감소하는 동면상태로 만들었다.

물곰은 그 같은 냉동상태에서 30년이 흘러도 적당한 환경에서 수분을 공급받을 경우 다시 활동하는 것이 입증됐다.

탐사선 추락 당시 살아남았을 가능성 낮아

연구진은 속이 빈 나일론 총알 한 개당 동면상태의 물곰 2~4마리를 넣은 다음 일반 총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2단 경가스총을 이용해 다양한 속도로 발사했다. 경가스총은 운석에 의한 크레이터의 형성 등의 고속 충돌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매우 높은 속도를 낼 수 있게 고안된 물리 실험 기구다.

경가스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도착한 곳은 수 미터 떨어진 모래 표적인데, 이때 총알의 속도는 초당 약 900m(시속 약 3,000㎞)이며, 가해지는 순간적인 충격 압력은 1.14기가파스칼(GPa)에 이른다.

그 후 연구진이 총알 속 물곰들의 생존 여부를 확인한 결과, 그처럼 빠른 속도의 충격과 압력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물곰들은 그보다 더 높은 압력과 충격 속도에서는 죽는 것으로 밝혀졌다.

a와 b는 충격 실험 전의 물곰 모습이며, c와 d는 충격 이후 회복된 모습이다. ©Astrobiology

이 실험 결과는 베레시트 호에 실려 있던 물곰들이 추락 당시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베레시트 호의 추락 속도는 초당 수백m밖에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탐사선의 금속 프레임이 달 표면에 부딪히는 충격 압력은 1.14GPa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또한 저속 및 중속 충돌에서 살아남은 물곰은 동결 상태의 다른 물곰보다 정상 환경에서의 회복 시간이 더 소요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충돌에서 살아남은 물곰들이 나중에 번식할 수 있을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우주생물학(Astrobiology)’ 최신호에 발표됐다.

범종설 힘들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아

이번 실험 결과는 범종설과 관련해서도 주목을 끌고 있다. 범종설(panspermia hypothesis)이란 생명이 지구상의 무기물에서 진화하지 않았고 멀리 있는 행성에서 날아온 박테리아 포자 형태에서 발생되었다는 이론이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에든버러대학의 우주생물학자 찰스 코켈(Charles Cockell)은 “이 실험 결과는 범종설의 가능성이 얼마나 낮은지 보여준다”라며 “이 논문은 복잡한 다세포 동물의 경우 쉽게 우주공간을 이동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 참여한 런던퀸메리대학의 알레한드라 트라스파스(Alejandra Traspas)는 의견이 약간 다르다. 그는 범종설이 힘들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이번 연구가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소행성은 보통 초당 11㎞ 이상의 속도로 지구에 충돌하며, 화성에서는 적어도 초당 8㎞의 속도른 낸다. 물론 이 속도에서는 물곰들이 살아남기 힘들다. 하지만 소행성 충돌로 인해 지구에서 튕겨 나오는 파편 중 약 40%는 물곰들이 생존할 수 있을 만큼 낮은 속도로 달에 충돌한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또한 기존 연구에 의하면 물곰 이외의 다른 생명체들은 생존할 가능성이 훨씬 높을 수 있다. 일부 미생물의 경우 초당 5,000m의 빠른 충격에서도 살아남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 연구는 태양계에서 생명체를 발견하는 데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주장했다. 예를 들면 토성의 달 엔셀라두스나 목성의 달 유로파같이 얼음으로 덮인 위성 근처를 우주선이 지나갈 경우 지표 아래의 바다에서 물기둥이 분출될 때 죽지 않은 상태의 생명체를 샘플링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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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안대희 2021년 5월 25일4:10 오후

    물곰으로 범종설을 설명하는 글을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범종설과는 반대로 생각해보았습니다. 물곰은 혹독한 환경에서도 생존 가능하니까 물곰을 이용해서 환경을 파악하거나 물곰이 높은 압력을 버티는 원리를 알아내어 심해 탐사에 응용할 수 도 있을 것 같고 더 편한 우주복을 만들때 활용 가능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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