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 알려면 창자 속 세균을 보라

혈액형 아닌 3가지 장내 세균유형 발견돼

사람의 체질을 나누는 새로운 방식이 발견됐다. 창자에 거주하는 체내 세균의 종류와 기능에 따라 3가지로 분류하는 엔테로타입(enterotype) 구분법이다. 창자형, 장내 세균유형, 장 유형 등으로도 불린다.

창자형은 전 세계에서 동일하게 발견됐다. 나이, 인종, 국가, 거주지역 등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미국, 유럽, 일본 공동연구진이 4개국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밝혀낸 결과다. 연구결과는 지난주 네이처(Nature)지에 ‘인간의 창자 속 세균에 따른 구분법(Enterotypes of the human gut microbiome)’이라는 논문으로 발표됐다.

전문가들은 “의약품 처방이나 식이요법 적용의 효과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앞으로는 상대방에 대해 알고 싶다면 혈액형이나 사상체질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창자 내 세균부터 검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발달한 인간 구분법

“제가 A형이라 내색을 잘 못해요.” “알고 보니까 AB형이었던 거 있죠? 어쩐지 성격이 좀…”

일상적인 대화나 TV 토크쇼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 ‘혈액형’이다. 혈액형은 인체의 혈액 속 적혈구가 특정 항원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에 따라 나눈 것으로, 1901년에 A, B, O, AB의 4가지 구분법이 생겨났고 1940년에는 Rh 구분법이 발견됐다.

혈액형에 따라 인종의 우열을 구분하던 독일 나치스의 방식을 일본 과학자들이 받아들인 후 점점 퍼져나가다가 1971년 노오미 마사히코라는 작가가 ‘혈액형 인간학’이라는 책을 펴내면서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대유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혈을 할 때는 중요한 혈액형이 성격과도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런데도 혈액형을 빗대어 사람을 평가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심리 상태를 알아내기 위해서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이 변화가 심한 사람의 마음을 파악해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사회심리학자 매슬로(Abraham H. Maslow)가 발표한 이론에서도 확실한 것을 찾으려는 ‘안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 다음으로 중요하다.

사람의 종류를 나누고 범주를 정하는 구분법은 의학 분야에서도 사용된다. 1894년 이제마가 4가지 체질로 사람을 나누는 ‘사상의학’을 발표한 이후 최근에는 한의학 계에서 8가지 체질로 구분해 식습관과 생활방식을 개선시키는 치료를 행하기도 한다.

의학에서 환자의 특질을 구분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음식물과 약품에 서로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 환자에게는 잘 듣던 약이 다른 환자에게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일이 종종 발생하며, 음식도 사람에 따라 좋게 작용하기도 하고 나쁜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네이처지에 실린 ‘창자형 구분법’ 논문은 체질에 따라 적합한 처방을 하는 과학적 치료의 토대가 될 전망이다.

창자형 구분은 핵심세균에 따라 3가지로 나뉘어

이번 논문은 규모 면에서도 주목받을 만하다. 공동 연구진은 유럽과 일본의 과학자들 80여명 이외에도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추가인원으로 구성돼 있다. 직접적인 피실험자만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덴마크 등 4개국 39명이며 선행연구에서는 미국인 4명과 일본인 13명에 대한 실험 결과도 확보했다.

주된 연구내용은 피실험자들의 대변 샘플을 분석해 창자 속 세균의 종류를 나누고 기능을 구분하는 것이다. 발견된 세균의 DNA를 분석해서 1천511종의 세균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는 식이다. 처음에는 가설도 없이 단순한 구분법만을 적용하는 지루한 과정이 반복됐다. 그러나 세균들이 여러 개의 뚜렷한 군집으로 나뉘자 연구가 활력을 띠기 시작했다.

우리 몸에는 500여종 100조마리 이상의 세균이 사는데 그중 대부분이 창자에 거주한다. 세균들은 음식의 소화와 칼로리 추출, 면역체계 보조, 장내 건강 유지, 비타민 생산 등 각종 신진대사를 담당한다. 인체를 유지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세균인 셈이다.

창자 속 세균은 메탄이나 황화수소 형태로 존재하는 과잉수소를 없애는 핵심세균을 중심으로 군집을 형성한다. 연구진은 그 종류가 3가지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각 창자형의 명칭은 숫자도 많고 주된 역할을 담당하는 세균의 이름에 따라 붙여졌다.

첫째는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다. 탄수화물을 분해하고 비타민 B2, B5, C, H를 만드는 것이 주된 기능이다. 여기 속하는 피실험자들 중에는 비만을 겪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둘째는 프레보텔라(Prevotella)로 점액을 분해하고 비타민 B1과 엽산을 만든다. 셋째는 루미노코커스(Ruminococcus)로 세포가 당분을 흡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살이 찌기 쉽다는 의미다.

환자 체질에 적합한 맞충형 치료에 도움될 듯

이 3가지 창자형은 나이, 체중, 인종, 국적, 거주지역, 식습관 등 그 어느 것과도 관련이 없다. 연구를 지휘한 독일 하이델베르크 소재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의 피어 보크(Peer Bork) 박사는 타임(TIME)지와의 인터뷰에서 “결과를 어떻게 분류해도 결국 이 3가지 그룹으로 나뉠 것”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 인간을 동일한 방식으로 구분 짓는 새로운 방법이 발견된 것이다.

세균 군집이 인간의 체질을 좌우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세균 군집이 수행하는 생화학적 기능이나 핵심세균의 유전자 특질이 피실험자의 체질적 특성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예를 들어 세균 군집을 기능에 따라 구분한 모듈 중 3개가 피실험자의 체질량지수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앞으로 연구가 계속 진행된다면 약물 투여나 식이요법을 적용할 때도 각 체질에 따라 맞춤형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갈수록 효과가 점점 떨어지는 항생제의 대안을 찾아내는 데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없애는 대신에 몸에 유익한 세균에 힘을 실어주는 식으로 치료 속도를 높일 수도 있다.

전문가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조지 와인스톡(George Weinstock) 미국 워싱턴대학 유전학 교수는 사이언스뉴스(Science News)와의 인터뷰에서 “왜 사람들의 체질이 각자 다른지, 약물이나 식이요법에 제각각 반응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롭 나이트(Rob Knight) 미국 콜로라도대 생물학 교수는 뉴욕타임즈(NYT)와의 인터뷰에서 “체내 세균이 만든 생태계가 인간의 체질과 관련이 있다는 첫 번째 발견이자 생물학과 의학계에 있어 큰 진전”이라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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