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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비행 50주년을 맞이한 ‘점보’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

지난 2월 9일은 747 점보 여객기 비행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점보는 1968년에 완성되어 1969년 2월 9일에 처음으로 하늘을 날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1500대가 넘게 만들어져 35억 명의 탑승객을 지구 곳곳으로 실어 날랐다. 노익장을 과시하듯 지금도 여전히 생산 중이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주요 국가 정상들의 전용기로 애용되고 있다. 그만큼 믿을 만한 비행기다.

점보는 특정 항공기 제작사가 만든 무수한 비행기 중 하나일 수도 있다. B747 이란 이름 그 자체여서 ‘보잉사의 747번 모델’이란 뜻이니까. 하지만 ‘점보젯(Jumbo Jet)’혹은 ‘점보’라고 불리는 순간 사람들은 그 이름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50년 만에 ‘하늘을 나는 인간 호모 아비엔스(Homo aviens)’의 역사에 길이 남을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런데, 점보는 사실 공식적인 이름이 아니고, 보잉에서 붙인 것도 아니다. 우연히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여객기 역사의 가장 큰 별이 된 점보의 이름 뒤에는 많은 사연들이 숨어있다.

1968년에 공개된 B747 ⓒ위키백과

1968년에 공개된 B747 ⓒ위키백과

1860년 12월, 아프리카에서 새끼 코끼리 한 마리가 생포되었다. 사냥꾼의 총에 희생당한 어미 곁에 있다가 잡힌 것으로 보인다. 아기 코끼리는 처음으로 유럽 땅을 밟은 최초의 아프리카 코끼리가 되어 파리의 식물원을 거쳐 1865년에 런던 동물원에 자리를 잡았다.

런던 동물원의 사육사는 이 코끼리에게 ‘점보(Jumbo)’라는 이름을 붙였다. 점보는 무슨 뜻일까?  ‘안녕’ 혹은 ‘대장’을 뜻하는 아프리카 말에서 왔다고도 하고, 비밀스러운 마법 주문인 ‘멈보-점보(mumbo-jumbo)’에서 온 것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이 사육사는 같은 동물원에 있던 고릴라에게 ‘멈보’란 이름도 붙였다.

여하튼, 키가 3.6미터나 되는 거구였지만 아직은 아기 코끼리였던 탓에 성질은 유순했다. 동물원 측은 점보의 등에 아이들을 태우고 동물원을 한바퀴 돌게 했고,꼬마들에겐 ‘과자를 주면 코로 받지요’ 체험을 하게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점보는 별일 없이 잘 지내며 런던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1882년에 동물원은 점보를 미국의 ‘바넘앤베일리 서커스(Barnum & Bailey Circus)’에 팔아버렸다. 점보의 매각 소식이 알려지자 런던은 물론이고 영국 전체가 들썩거렸다. 동물원에는 매각에 반대하는 아이들의 편지가 날아들었고, 빅토리아 여왕도 매각을 만류하고 나섰다. 하지만 동물원은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들끓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런던 동물원이 점보를 팔기로 한 것은 점보가 더 이상 귀여운 아기 코끼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20대로 성장한 점보는 아프리카 대초원에서 살아남은 조상들이 물려준 거친 야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쇠사슬을 끊거나 철장 문을 부수기 시작했고, 만약 마음만 먹는다면 동물원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는 엄청난 괴물이 될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국에 팔아 넘긴 것이다.

점보가 등장한 서커스 포스터 ⓒ 위키백과

점보가 등장한 서커스 포스터 ⓒ 위키백과

대서양을 건너간 점보는 뉴욕에서 서커스단이 펼치는 ‘지상 최대의 쇼’에 출연했다. 서커스를 본 사람이라면 짐작하듯 점보는 일단 거대한 위용으로 사람들을 압도했을 것이고, 조련사의 구령에 맞추어 아슬아슬한 묘기를 펼쳤을 것이다. 그리고 엄청난 굉음으로 울부짖어 관객들의 마음에 큰 충격을 주며 공연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이제 키가 4미터를 넘는 거대한 아프리카 코끼리를 보며 충격과 열광이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미국인들에게 점보는 ‘거대한 것’으로 각인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점보는 대형을 말한다.제주국제공항 ⓒ 박지욱

우리나라에서도 점보는 대형을 말한다. 제주국제공항 ⓒ 박지욱

런던 동물원이 우려하던 엄청난 사고는 미국에서는 없었다. 괜한 걱정을 해서 점보를 팔았을까? 서커스단이 공개하진 않았겠지만, 서커스단은 거대한 점보를 잔인한 채찍질과 술로 조련했다. 성질을 죽이기 위해 위스키를 매일 4리터씩이나 먹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점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마침내 1885년에 철길을 건너다가 화물열차에 치여 죽고 말았다(사고 정황은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점보 나이 이제 25세였다. 전세계가 최초의 동물 슈퍼 스타였던 점보의 죽음을 애도했다.

하지만 점보는 죽어서도 안식을 누리지는 못했다. 뼈는 추려져 골격 표본이 되어 뉴욕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었고, 심장은 코넬 대학에 팔렸고, 가죽은 거대한 박제 인형으로 만들어져 보스턴의터프츠 대학에 기증되었다. 터프츠 대학은 지금도 점보를 학교의 마스코트로 쓰고 있다.

45년이 지난 1942년에 후 대중들 앞에 점보는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동물원도, 서커스단도 아닌 영화관 스크린이었다. 디즈니가 내놓은 장편 애니메이션 ‘아기 코끼리 덤보(Dumbo)’에는 서커스단에서 동물 쇼를 벌이는 동물들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여기에는 엄마 코끼리 ‘점보’와 아기 코끼리 ‘점보 주니어’가 나왔다.

점보 주니어는 서커스단의 동물이라면 해내야 하는 동물쇼를 소화하지 못해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받아 ‘덤보(Dumbo)’라고 불렸다. 덤보란 바보, 멍청이,천치라는 뜻이었다. 점보 주니어 아니, 덤보가 그토록 재능이 없었던 것은 너무나도 큰 귀 때문이었다.인생의 커다란 걸림돌이 된 큰 귀,하지만 점보는 그것을 이용해 하늘을 나는 기술을 익혔고, 나중에는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 무렵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던 미 해군은 바다에 추락한 항공기 승무원을 구출하는 수색구조기에 ‘덤보, 플라잉엘리펀트(Dumbo, Flying Elephant)’라는 별명이 붙었다. 훨훨 나는 코끼리의 개념은 ‘아기 코끼리 덤보’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초의 덤보는 ‘보잉’이 제작한 B-17 폭격기의 해상 수색 구조기 버전을 통칭했다. 그러다가 점차적으로 해상 수색 구조 임무 자체를 ‘덤보 임무(Dumbo mission)’ 로 불렀다. 나중에는 덤보 임무에 투입되는 모든 비행기를 기종에 무관하게 덤보라 불렀다.

우리 땅에서 벌어진 625전쟁 중에도 덤보가 투입되었는데, 이 때의 덤보 기종은 B-29를 개조한 SB-29였다. 기존의 덤보보다 큰 비행기였기에 ‘슈퍼 덤보(Super Dumbo)’로 불렀다.

수퍼 덤보로 불린 sb-29 수색구조기 ⓒ 위키백과

수퍼 덤보로 불린 sb-29 수색구조기 ⓒ 위키백과

덤보에 대한 기억이 점보로 이어진 걸까? 아니면 거대한 큰 코끼리에 대한 추억이 되살아난 것일까? 1960년대 말미에 등장한 초대형 여객기 B747의 디자인은 사실 고래와 가장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끼리의 별명인 점보가 비행기에 붙었다는 것은 거대함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사실 보잉이 미리 준비한 이름은 따로 있었다. 바로 ‘슈퍼 에어버스(Super Airbus)’. 하지만 한 언론사에서 붙인 점보란 이름이 순식간에 널리 퍼져버려 보잉은 자신들의 이름을 강요하지 않았다.

B747 점보의 특이한 디자인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샌프란시스코국제공항(SFO) ⓒ  박지욱

B747 점보의 특이한 디자인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국제공항(SFO) ⓒ 박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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