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천왕성의 이름을 딴 ‘우라늄’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45)

명왕성(Pluto)이 자격 미달로 행성 목록에서 삭제된 후 태양계의 가장 바깥에 남게 된 행성은 천왕성이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에서 모두 같은 한자인 ‘天王星’으로 쓰고 있는데 그 뜻을 새겨보면 ‘하늘(天)의 임금(王) 별(星)’이다. 영어로는 ‘Uranus’ 로 쓰는데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할아버지인 ‘하늘의 신’의 이름이다.

1781년 3월, 영국 천문학자 허셜(Frederick William Herschel, 1738~1822)는 토성(Saturn) 궤도 바깥에서 새로운 행성 하나를 발견한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알고 있던 7천체계를 벗어난 새로운 행성의 발견이었다. 7천체계의 ‘칠성(七星)’은 일(해), 월(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이었다. 허셜은 새로운 행성의 이름을 뭘로 정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허셜 ⓒ 위키백과

허셜 ⓒ 위키백과

허셜은 원래 독일 사람이었다. 고향은 신성로마제국에 속한 하노버였다. 아버지는 군악대에서 음악가로 일했다. 하노버 왕가의 게오르크 1세가 영국의 왕 조지 1세(George I)를 겸하게 되어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영국 왕은 한동안((1714~1837) 하노버 왕가 출신의 독일인들이 도맡는다. 이 시기에 독일인들이 영국으로 건너가 활동하고 심지어는 귀화한 경우도 많았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크 음악의 대가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 1685~1759)이다.

헨델의 성공에 고무되었을까? 허셜도 음악가로 영국을 오가다가 19세 때부터는 아예 영국 땅에 정착했다. 헨델의 말년 2년과 허셜의 스무 살은 겹치기는 했지만 음악가로 서로 만나 교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허셜은 헨델만큼 유명한 음악가로 역사에 남지는 못했다. 하지만 30대인 1770년대부터 과학에 심취했고, 35세인 1773년부터는 자기 손으로 만든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측하기 시작했다.

8년 정도 지난 1781년 3월 13일 밤 허셜은 쌍둥이자리에서 밝고 큰 별을 발견한다. 새로운 혜성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허셜은 다른 천문학자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줬다. 하지만 이 별은 혜성 모양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후 스웨덴 천문학자인 럭셀(Anders Johan Lexell)은 이 별이 93년 만에 태양을 한 바퀴 도는 행성임을 밝혀냈다. 이렇게 허셜은 태양계의 일곱 번째 행성을 발견한 이가 되었다.

천왕성은 하늘 빛을 닮아 푸르다. ⓒ 위키백과

천왕성은 하늘 빛을 닮아 푸르다. ⓒ 위키백과

발견자의 권리인 명명권을 행사하게 된 허셜은 새 행성의 이름을 ‘조지 왕의 별’로 정했다. 당시에 영국과 하노버를 지배하는 군주인 조지 3세(Geoge III)를 기리는 뜻이었다. 국제 학술 공용어인 라틴어로는 Georgium sidus로, 영어로는 Georgian star가 되었다.

프로 음악가이자 아마추어 천문학자였던 허셜이 새로운 행성에 자신의 이름이 붙었다는 사실을 안 조지 3세는 매우 기뻐하며 허셜을 궁정 천문학자로 임명한다. 하지만 조지 3세의 기쁨은 오래가진 못했다.

당시 영국과 앙숙 관계였던 프랑스 사람들은 새 행성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조지 3세를 떠올려야 하는 수모를 견디기 싫어 그냥 ‘허셜’로 불렀다. 스웨덴 천문학자는 바다의 신의 이름인 ‘넵튠(Neptune. 아직 해왕성이 발견되기 전이다)’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조지星’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자 독일 천문학자인 보데(Johann Elert Bode)가 행성의 이름들이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을 사용한 관례를 따르자고 제안했다.

목성(Jupiter) 다음의 행성이 주피터의 아버지인 새턴(Saturn, Saturnus, Cronus)이므로, 토성 다음의 별은 새턴의 아버지인 우라노스(Uranus, (O)Uranos)로 하자고 제안한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면서 조지성은 설자리를 잃고 1782년 우라노스로 확정되었다.

우리는 우라노스를 천왕성으로 번역하는데, 신화나 전설 등의 역사에는 천왕(天王)이란 존재가 없다. 다만 절집의 입구를 지키는 4명의 수호신을 사천왕(四天王)으로 부르고 있다. 사천왕이 있는 문은 천왕문으로 부른다.

불국사 천왕문 ⓒ 박지욱

불국사 천왕문 ⓒ 박지욱

7년이 지난 1789년, 보데의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 동료이자 화학자인 클라프로트(Martin Klaproth)는 자신이 새로 발견한 원소의 이름을 우라노스를 따서 우라늄(uranium)으로 지었다. 별의 이름에서 원소의 이름을 가져오던 관례를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신생 행성의 이름인 우라노스의 입지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노란 빛깔의 우라늄은 그다지 관심을 받는 원소는 아니었다. 107년이 지나서 파리에서 그 특별한 ‘능력’이 발견될 때까지 말이다. 1896년 에콜 폴리테크의 교수 베크렐(Henri Becquerel)은 책상 서랍 속에 보관해둔 우라늄 광석이 사진판을 감광시킨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대학원생인 과학자 부부에게 이 특별한 현상을 연구하게 한다. 이 젊은 부부 연구자들의 이름은 마리와 피에르 퀴리(Marie and Pierre Curie)였다.

퀴리 부부는 우라늄이 겉보기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강력한 에너지를 주변에 방출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 현상은 ‘에너지를 주변에 방출하는 능력’이란 의미로 ‘방사능(radio-activity)’으로 불렀다. 이것은 사상 최초로 발견된 자연 방사능이었고 이 발견으로 1903년에 베크렐과 퀴리 부부 세 사람은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다.

방사능의 발견.베크렐의 책상 속에서 우라늄 광석으로 감광된 사진 건판. ⓒ 위키백과

방사능의 발견.베크렐의 책상 속에서 우라늄 광석으로 감광된 사진 건판. ⓒ 위키백과

이 무렵인 20세기 초 ‘방사능’은 물리학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물질이었고, 이후 폴로늄과 라듐 역시 방사능을 지닌 물질로 밝혀졌다. 라듐에서 세 가지 종류(α-선, β-선, γ-선)의 ‘방사선(radioactive ray’)이 나온다는 것도 알려졌다.

1919년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는 질소 원자를 α-선으로 쏘아 맞혀 산소 원자로 바꾸는데 성공한다. 1932년 채드윅(James Chadwick)은 양성자(수소 원자의 핵)와 질량은 같지만 전기적으로는 중성인 중성자를 발견한다. 페르미(Enrico Fermi)는 중성자로 다양한 방사능 물질을 만들어 냈으며, 심지어 우라늄보다 무거운 원자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1938년 독일의 오토 한(Otto Hahn)과 프리츠 슈트라스만(Fritz Strassman)는 우라늄에 중성자를 쏘아, 몇몇 원자들은 훨씬 가벼운 원자인 바륨으로 만들어버렸다. 동시에 엄청난 에너지와 중성자의 방출을 확인했다.

그들은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잘 몰랐지만,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핵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원자무기의 생산으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을 금세 알아챘다.

마이트너는 조카이자 보어(Niels Bohr)의 연구소에서 일하는 물리학자 오토 프리쉬(Otto Robert Frisch)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프리쉬는 미국 여행을 떠나는 보어에게 급히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그때 프리쉬는 이 현상을 ‘핵분열(nuclear fission)’이라고 보어에게 알려줬다. 프리쉬가 학창시절 생물학 시간을 떠올려 세포 분할을 이르는 생물학 용어인 ‘분열(nuclear fission)’를 가져와 만들었다. 보어는 이렇게 별안간에 나치 독일의 과학자들이 최초의 핵분열 실험에 성공한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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