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천문학 30년 길 걸어온 ‘태양 박사’, 우주시대 백년대계를 준비하다

[과총 과학과기술 인터뷰대담] 박영득 한국천문연구원 원장

글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홍보팀 유태경

박영득 한국천문연구원 원장 ⓒ한국천문연구원

교사로서의 직업을 뒤로 하고 뒤늦게 천문학에 뛰어든 과학자가 있다. 천문학을 선택한 이유는 하늘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다. 그는 작은 시골마을 개울가에서 은하수를 바라보며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웠다. 올해 4월 취임한 박영득 한국천문연구원 원장은 지난 30년 동안 태양 및 우주 환경 분야 연구에 매진하며 우리나라 태양 연구의 초석을 다져 온 ‘태양박사’로 알려져 있다. 수십 년동안 보고 또 관찰한 태양은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역동적 존재라는 그의 대답에는 소년의 호기심이 가득했다.

바야흐로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누리호 발사, 아르테미스 협정 등 2021년 한국 과 학기술계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이 모아지는 천문우주과학 분야의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박영득 원장을 「과학과기술」이 만나 앞으로의 비전과 계획을 들었다.

 

Q. 한국천문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한 소감은.

A. 30년 전 한국천문연구원(이하 천문연)에 입사한 이후 한국 현대천문학의 연구 2세대로서 우리나라의 천문우주과학의 성장을 함께 해왔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고 자부합니다. 이 자부심을 원천으로 선배들의 업적을 잘 보존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 우주시대를 개척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원장이 되고 싶습니다.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과 쉽지 않을 과정을 생각하면 두려움도 있지만, 천문연의 성장과 우리나라 천문우주과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갈 것이라는 기대에 마음이 설레기도 합니다. 먼 훗날에 제 자신에게 스스로 ‘참 잘했다’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 동안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 나가겠습니다.

 

Q. 우리나라 최초로 연구용 태양 관측 시스템을 구축·운영한 ‘태양박사’로 알려져 있는데.

A. 별은 아무리 큰 망원경으로 보아도 하나의 작은 점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태양은 망원경이 클수록 표면의 다양한 현상을 볼 수 있다는 매력이 있어요. 똑같은 별인데도 태양은 훨씬 자세히 볼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태양 연구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특히 일본의 요꼬(YOHKOH) 위성이나 나사 (NASA)의 소호(SOHO), 에스디오(SDO) 위성으로 찍은 태양 폭발 현상을 보고 있으면 아직도 온몸에 전율이 느껴집니다. 일상에서 해는 그냥 하늘에 무심히 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관측해보면 너무나도 역동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역동적인 현상들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어 과학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죠. 한시도 쉬지 않고 변화하는 태양처럼 하나의 점으로만 보이는 수천억 개의 모든 별들이 지금도 끊임없이 폭발하고 활동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도전해보고 싶은 학문이지 않습니까?

 

Q. 다가오는 2024년 창립 50주년을 맞는 천문연의 비전은.

A. 반세기를 역사에 다가선 천문연의 비전은 ‘세계 최고 수준의 천문우주과학 연구기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비전을 향해 지금까지 외계행성 탐색시스템(KMTNet), 거대마젤란망원경(GMT),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아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 세계 최대 태양망원경 GST 등 최첨단 관측 인프라의 공동제작에 참여하거나 운영해 왔습니다. 앞으로 천문연은 축적해온 연구를 통해 국내 천문학자들에게 제공하는 천문관측 자료의 질적 수준을 극대화하고, 선도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반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특히 세계에서 유일하게 운영하는 남반구 하늘을 24시간 관측하는 외계행성 탐색시스템(KMTNet)은 우리가 선구자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서 선도연구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잘 만들어져 있어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천문연의 50주년은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연구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하는 선도연구 그룹이 많이 만들어지도록 연구환경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중입니다. 우주연구에 대한 연구자의 열정과 호기심이 국민에게 이어지고, 이를 과학으로 소통하는 것이 제가 꿈꾸는 천문연의 모습입니다.

 

Q.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우리나라의 우주탐사기술은 어느 정도?

A. 안타깝게도 우리의 우주탐사기술은 아직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내 우주개발이 주로 통신, 방송, 기상 및 지상관측 중심으로 한정되어 왔습니다. 국민 수요 중심의 선진기술을 답습하며 성장을 추구한 결과입니다. 우리가 후발국의 전형적인 성장 패턴을 따라온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런 과정에서 우주탐사 쪽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연구의 흐름이 바뀌고있습니다. 우주탐사를 통한 신기술을 축적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KAIST와 함께 심우주탐사를 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협약식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보유한 기술의 한계에 도전하여 우주탐사를 실현하기 위한 첫 번째 도전 과제가 바로 아포피스 프로젝트입니다.

 

Q. 우주개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우주청’을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A. 선진화된 우주개발은 책임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즉 어떤 임무든 연구자에게 완벽히 맡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아직 그 벽이 너무 높습니다. 물론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는 대형 과제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지만 지나친 간섭은 지양해야 합니다. 또 인력과 인프라의 유연성도 중요합니다. 여러 단계의 개발과정에 소요되는 인력과 인프라를 공유하여 효율성을 높여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나라의 우주개발은 하나의 과제가 끝날 때까지 모든 자원이 집중되어 항상 유휴인력과 유휴 인프라가 발생하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작동되고 있습니다. 잦은 인사이동 역시 담당자들의 전문성과 개발사업의 장기적인 연속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려면 독립성을 갖춘 전문기관이 우주개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의 주체가 되어야 하기에 ‘우주청’ 설립을 제안했습니다.

 

Q. 최근 천문학계의 ‘빅 이슈’는?

A. 우주에는 많은 수수께끼가 남아있고, 아직도 우리는 많은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해결하지 못한 많은 숙제 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다음의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들이 바로 천문학의 빅 이슈라고 하겠습니다. 첫째, 우주의 처음 시작 즉 우주에서 맨 처음 만들어진 별을 찾는 것과 둘째, 생명의 기원을 찾는 것입니다. 관련해서 천문연이 중점적으로 수행 중인 것이 바로 ‘외계행성 탐색’과 ‘블랙홀’ 연구입니다. 특히 외계행성 탐색 분야는 광시야망원경을 이용한 남반구 전천 탐색으로 매년 4~5개의 외계행성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천문연에서 새로 발견한 외계행성이 약 100여 개에 이릅니다. 앞으로 더 나아가서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행성탐사에 주력하고자 합니다. 블랙홀 탐색연구는 천문연이 독자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관측 장비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국제 공동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Q. 올해 우리나라가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 전격 참여하게 되었다는 깜짝 뉴스가 있었는데.

A. 천문연은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참여사업의 일환으로 2022년 8월에 발사 계획인 달 궤도선 (KPLO) 탐사선에 탑재할 ‘달 탐사용 광시야 편광카메라’를 지난해 12월에 이미 개발하여 납품을 완료했습니다. 지금은 탑재 조립시험의 지원과 자료처리 소프트웨어 고도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민간달착륙선사업(CLPS)에 우리 과학 탑재체를 싣기로 하여 그 첫 번째 탑재체를 제작 중입니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170억 원을 투입해 4개의 탑재체를 달착륙선에 제공하고 과학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천문연의 탑재체를 실은 달 탐사선이 발사되는 시기는 2024년 상반기가 될 것입니다.

 

Q. 천문연은 인류 최초로 20~30 m 급 광학망원경 시대를 열어 줄 거대마젤란망원경 개발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A. 거대마젤란망원경(GMT)은 주경의 지름이 25 m인, 세계 최대급의 차세대 초거대 지상 광학망원경으로 칠레 안데스 산맥의 라스캄파나스 천문대에 설치될 예정입니다. 현재 토목공사 등은 완공되었고, GMT의 25 m 주경을 이루는 지름 8.4 m의 원형 조각거울이 순차적으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대략 2030년경 완공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거대마젤란망원경 완성 모습(예상도) ⓒ한국천문연구원

우리나라는 GMT의 지분 10% 확보를 목표로 참여 중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천문학자들이 GMT 망원경의 전체 관측 시간의 10%에 해당하는 연간 약 30일의 관측 시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천문연은 출자금 투자를 통한 지분 확보에 그치지 않고, GMT 망원경과 첨단 관측 장비의 개발에 직접 참여함으로 써 우리나라의 광학 및 광기계 기술을 세계 최첨단 수준으로 격상시키려는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천문연이 직접 참여하는 GMT 망원경과 관측 기기 개발 분야에서 특히 가시광선 초정밀 분광기는 GMT의 첫번째 관측기기로서 이 망원경을 이용한 최초의 연구 성과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Q. 그 외에도 많은 프로젝트가 숨 가쁘게 진행될 예정이라는데.

A. 우선, 2029년에 지구 정지궤도 위치까지 접근하는 소행성 아포피스 탐사 프로젝트에 대한 예비 타당성을 준비 중입니다. 내년 초에 심사에 들어가는데, 통과를 위해 과학임무와 탐사 개발 계획을 과기정통부와 조율 중에 있으며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노위성 도요샛의 경우 금년 연말이던 발사 계획이 2022년 3월 이전으로 수정되었습니다. 도요샛은 4대의 나노위성이 지구 상공을 편대 비행하면서 전리권과 자기권의 여러 가지 물리량을 연속적으로 측정해 우주 날씨의 비밀을 밝힐 것입니다. 발사 계획은 수정됐지만, 기본 탐사목적을 완성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

또한, 세계 최초 구축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우주전파관측망 확장(EKVN) 사업도 차질 없이 진행 중입니다. 기존 4채널을 수신하는 KVN 전파망원경을 230GHz 밴드가 포함되는 EKVN 전파망원경으로 업그레이드하여 5채널 동시 관측이 가능하도록 안테나와 수신시스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23년 말에 전파망원경 설치 및 시험 관측을 완료하고, 2024년부터 운영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Q. 국가R&D 100조 원 시대를 맞아 출연연의 역할이 민간에서 할 수 없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사회문 제해결형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A. 천문연 또한 국민의 안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주시대에 접어들면서 세계 각 국이 우주로 위성을 보냈고, 이중 상당한 수의 위성들이 고장이나거나 수명을 다하면서 지구 주변을 떠다니는 우주 쓰레기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다른 위성이나 비행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멀쩡한 위성을 훼손시키거나 고장을 일으켜 경제적 피해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천문연은 2015년 국가 우주감시기관으로 선정되어 우주 쓰레기나 인공위성의 추락을 감시하며, 지구 충돌에 따른 피해를 예방하는 우주물체감시 상황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직 장비가 부족하고, 추적 또한 미국에 많이 의존하는 상황이라 이 분야의 장비와 추적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작년부터는 2024년까지 193억 원을 투입하여 10 cm급 우주물체 감시를 위한 추락우주물체 정밀감시 레이더시스템 개발과 1.5 m급 광시야망원경 구축 및 우주위험 통합분석 시스템 개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천문연은 2001년부터 우주환경연구를 꾸준하게 수행하여 2007년부터 우주환경감시실을 운영하면서 NASA와 협력해 현재 가장 강력한 태양관측 위성인 SDO의 아세아 허브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주환경연구와 예보기술 개발에 있어서 국제적인 위상도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우주환경의 예보정밀도를 높이기 위하여 NASA와 국제공동연구를 통하여 2023년 국제 우주정거장에 태양 관측용 코로나그래프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이렇듯 국민 여러분이 일상생활에서 체감하긴 어렵지만, 천문연이 보이지 않는 우주공간의 안전문제를 책임지고, 인류의 미래를 위한 우주 프로젝트를 전방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임기 수행 중에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A. 우선 국제적인 연구의 패러다임을 주체하는 선도연구그룹을 발굴‧육성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연구 수준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대내외 의견 수렴을 통해 천문연만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강점 분야를 발굴해 키우고 싶습니다. 다음은 아포피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발사체에 우리가 개발한 탑재체를 싣고 우주탐사를 하는 그 첫 번째 도전의 중심에 천문연이 있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연구원들이 행복한 천문연을 만들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면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재미가 있으면 빠져들기가 쉽지요. 즉 ‘몰입’이 잘 된다는 뜻입니다. 원하는 연구에 재밌게 몰입하면 세계적인 연구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요. 이런 신명나는 연구환경을 만들기 위해 연구자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소통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힘쓰겠습니다.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과학과기술’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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