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책이 오염수를 식수로 바꿔준다?

[인류를 지키는 적정기술] 인류를 지키는 적정기술 (40) 하이드로팩과 드링커블북

저개발 국가처럼 낙후된 지역에서 깨끗한 식수를 마신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급수 시설이 매우 부족하다 보니 물을 찾는 것이 일이고, 설사 물이 있다 해도 대부분은 심하게 오염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이들은 물이 오염되어 있는 줄 모르고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물을 마시게 되면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설사나 배탈은 기본이고, 심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비닐팩처럼 생긴 필터가 저개발 국가 주민들의 갈증을 해결해 주고 있다 ⓒ Hydration Tech

그렇다면 급수 시설이 낙후된 저개발 국가에서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을 마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임시방편으로는 적정기술이 활용된 필터를 이용하여 최소한의 식수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삼투압 원리 이용하여 오염수를 식수로 변환

필터를 이용하여 오염된 물을 쉽고 간단하게 식수로 바꿔주는 도구로는 비닐팩처럼 생긴 모양의 하이드로팩(HydroPack)이 있다. 이 필터는 수처리 분야 전문 기업인 미국의 하이드레이션테크놀로지(Hydration Technologies) 사가 개발했다.

원래 하이드로팩은 지난 2011년 케냐에서 홍수가 발생했을 때 식수가 모자라 고생하는 피해 지역의 주민들을 위해 응급 지원책으로 개발됐다. 홍수 사태가 마무리되면서 하이드로팩 공급도 중단되었으나, 이를 사용했던 주민들의 요청에 의해 지금도 지속적으로 보급되고 있다.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에서는 사람이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이슈다. 마실 수 있는 물을 찾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km를 걸어 다니는 주민들의 몸부림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특히 케냐의 사례에서 보듯이 홍수가 나서 도처에 물이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흙탕물로 변해있기 때문에 마실 수 있는 물을 찾기란 하늘에서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하이드로팩은 이처럼 물은 풍부하지만, 식수가 부족한 환경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다.

삼투압 현상을 이용하여 오염수를 식수로 바꿔주는 하이드로팩의 원리 ⓒ Hydration Tech

하이드로팩 내부는 특수 비닐과 특수 용액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수 비닐은 정수기의 필터와 같은 역할을 해주는 여과막이고, 특수 용액은 오염된 물에 들어있을지도 모를 병원균을 사멸시켜주는 물질이다.

사용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오염된 물에 하이드로팩을 띄워 놓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잠시 후에 특수 비닐이 삼투압 현상을 일으켜 물이 비닐팩 내부로 흡수된다. 삼투압이란 용액의 농도차에 의해 물질이 이동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렇게 오염된 물이 비닐팩 내부로 들어오면서 흙이나 이물질은 1차적으로 걸러지게 된다. 이후 내장되어 있던 특수용액이 각종 세균을 죽이고 독성물질들을 중화시켜 마실 수 있는 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하이드레이션테크놀로지의 관계자는 “이렇게 하이드로팩을 물에 띄운 채 10시간 정도만 지나면 비닐팩 안에는 약 200ml 이상의 물이 고이는데, 이 물은 바로 마셔도 아무 해가 없는 깨끗한 물이다”라고 밝혔다.

은 나노입자 통해 병원균까지 제거

하이드로팩이 비닐팩 모양의 간이 정수기라면 지금 소개하는 드링커블북(The Drinkable Book)은 어느 집에 가든지 한 권씩은 꽂혀 있을 법한 책처럼 생긴 필터다.

이 필터는 미국의 비영리 기관인 워터이즈라이프(WATERisLIFE)가 버지니아대의 수처리연구센터에 의뢰하여 개발했다. 보기에는 평범한 책처럼 보이지만 물을 위생적으로 정수할 수 있는 필터지로 제작되었다.

총 24장의 필터지로 이루어져 있는 드링커블북은 한 사람이 4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양의 물을 정화할 수 있는 성능을 갖고 있다. 평균적으로 한 사람이 마시는 식수의 양은 1년에 약 0.6톤 정도인데 필터지 한 장이 100L의 물을 여과할 수 있는 만큼, 24장을 다 사용하면 4년 정도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버지니아대의 테레사 단코비치(Theresa Dankovich) 박사는 “이 같은 사용량은 사람마다 마시는 물의 양이 다르기 때문에 필터지의 사용기간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하며 “중요한 것은 필터지 한 장으로 오염된 물을 마실 수 있는 물로 쉽고 빠르게 바꿔줄 수 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드링커블북의 사용 방법 ⓒ WATERisLIFE

사용 방법도 모양만큼이나 간단하고 편리하다. 절취선에 맞춰 필터지 한 장을 뜯고 책의 케이스로 사용하는 전용 박스에 필터지를 넣은 후 더러운 물을 필터 위에 붓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단코비치 박사의 의견이다.

그녀는 “드링커블북의 장점은 단순히 물속의 더러운 이물질을 걸러주는 것뿐만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인체에 유해한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질병을 유발하는 병원균까지 제거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어떻게 종이로 된 필터지 하나로 병원균까지 제거할 수 있을까. 그 비결은 필터지에 포함된 은(Ag) 나노입자에 숨어있다. 금속인 은은 나노입자 상태가 되었을 때 강력한 살균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콜레라균을 포함한 약 650여 종의 세균을 사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 개발사 측의 설명이다.

재미있는 점은 드링커블북의 필터지 한 장씩마다 올바른 위생교육을 제공하고자 각국의 언어로 된 식수위생 관련 정보를 식용 가능한 콩기름 잉크로 인쇄했다는 점이다. 영어 버전의 드링커블북에는 “당신이 사는 마을의 물에는 나쁜 병균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필터 역할을 해주는 이 책의 종이를 뜯어 물을 걸러 마시면 안전하게 마실 수 있다”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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