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 정복’ 몽골 낙농 BC1300년 시작

서양 유목민 유입 없이 문화교류로 낙농 목축 전파

낙농 목축은 몽골 스텝지대의 유목민들이 한때 아시아와 유럽의 대부분을 정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동아시아 대초원지대에서 언제부터 가축을 길러 유제품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지는 지금까지 불분명했었다.

막스플랑크 인류사연구소가 이끄는 국제연구팀은 최근 몽골지역 낙농의 시작이 기원전 13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특이한 것은 낙농의 시작이 서양 유목민 유입 혹은 인구 교체로 인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전파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최근호에 발표됐다.

선사시대에 소와 야크를 비롯한 많은 낙농 가축들이 몽골로 유입돼 3000년 이상의 낙농 목축 문화가 형성됐다.  CREDIT: Christina Warinner

선사시대에 소와 야크를 비롯한 많은 낙농 가축들이 몽골로 유입돼 3000년 이상의 낙농 목축 문화가 형성됐다. CREDIT: Christina Warinner

징기스칸의 군대가 출현하기 2000년 전 몽골지방 인구는 이미 목축민으로서 낙농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는 미래의 후예들이 유럽과 아시아를 정복할 수 있는 중요한 기틀이 되었다.

징기스칸 군대가 날쌘 기동력으로 장거리 원정을 수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유목민이 가진 장점을 최대로 활용했다는 점이 꼽힌다.

가축을 몰면서 단련된 기마 능력, 철이 아닌 가죽으로 만든 가벼운 갑옷, 전투병 못지 않게 중요한 병참선의 단축 등이 그것이다.

당시 서양의 기사들은 수십 ㎏에 달하는 무거운 갑옷을 하인의 부축을 받아 입어야 했다. 마상전이건 근접전에서건 몽골병에 비해 움직임이 둔하고 장거리 기동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징기스칸 군이 식량조달을 위해 고기를 말린 육포를 각자 지참해 필요할 때 뜨거운 물에 건져 먹은 것은 오늘날 샤브샤브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 않고 병참을 위해 커다란 솥단지와 각종 식품 등을 사시사철 달구지로 끌고 다녔다면 그처럼 재빠른 기동력이나 장기 원정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몽골의 대초원 스텝(steppe) 지역. CREDIT: Wikimedia Commons /Marcin Konsek

몽골의 대초원 스텝(steppe) 지역. CREDIT: Wikimedia Commons /Marcin Konsek

몽골의 가축은 서양에서 유래했을 가능성

동아시아 스텝지대에서 목축은 오랫동안 이 지역의 중요한 생존 수단이 되어왔으나 이 전통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었다.

연구팀은 고대인들의 치석에 보존된 우유 단백질을 추적해 몽골지방에서의 낙농 연대가 기원 전 1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최초의 직접 증거를 발견했다.

우유를 생산하는 소와 양, 염소는 몽골지방의 토착종이 아니다. 따라서 이 가축들은 서양 대초원 유목민들에 의해 도입되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청동기시대 몽골인들의 DNA에는 서양 대초원 유목민들의 유전적 흔적이 미미하다. 이는 이 지역의 목축과 낙농기술이 유럽에서 나타나는 패턴과는 대조적으로, 주요 인구유입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화적 전파과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몽골 뫼렌(Mörön) 근처에 있는 사슴 거석. CREDIT: Wikimedia Commons / Aloxe

몽골 뫼렌(Mörön) 근처에 있는 사슴 거석. CREDIT: Wikimedia Commons / Aloxe

인구 교체 없는 문화적 기술이전

연구팀은 ‘사슴 거석-키릭수르 복합지(Deer Stone-Khirigsuur Complex; DSKC)’와 관련된 북부 몽골지방 6개 지역의 유적지를 분석했다.

논문 공동 제1저자인 막스플랑크 인류사연구소 슈반 윌킨(Shevan Wilkin) 연구원은 “DSKC는 사슴이나 다른 주제를 의미하는 우뚝 솟은 거석들과, 한 사람 혹은 많은 사람들의 매장과 관련된 커다란 돌무덤을 비롯해 몽골인 기념 구조물이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지역에서는 이런 구조물들이 먼 거리에서도 매우 눈에 잘 띈다”고 말했다.

DSKC는 고고학적으로 몽골지방에서의 목축과 관련된 최초의 문화유적지로 꼽힌다. 13세기 이전의 양과 염소, 소와 말의 뼈가 발견되는 지역들이 포함돼 있으나,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낙농제품이 소비됐다는 직접 증거는 나오지 않았었다.

키릭수르(khirigsuurs)로 알려진 후기 청동기시대 고분은 몽골의 초기 목축민들과 관련이 있다.  CREDIT: Bruno Frohlich

키릭수르(khirigsuurs)로 알려진 후기 청동기시대 고분은 몽골의 초기 목축민들과 관련이 있다. CREDIT: Bruno Frohlich

연구팀은 기원전 1300~900년 전의 후기 청동기시대에 살았던 22구의 이 지역 청동기인에 대한 전장 유전체 분석을 실시했다. 그리고 두 개체에 대해서는 추가로 전체 게놈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이 청동기시대 몽골인들은 같은 시기 서양 스텝지대에 살았던 목축인들과는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몽골지방에서 낙농이 시작된 것은 서양 목축민의 유입이나 인구 대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논문 공동 제1저자이자 공동 시니어저자인 막스플랑크 인류사연구소 정충원( Choongwon Jeong) 박사(인구유전학 그룹장)는 “이런 연구 결과는 이웃해 있는 서양 대초원 목축민들이 몽골 토착민들에게 문화교류 과정을 통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낙농 목축을 소개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청동기시대 유럽이나 인근의 알타이-사얀(Altai-Sayan) 지역에서 관찰된 것과 같은 서양 대초원 유목민들에 의한 대규모 인구교체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치아의 치석에 보존된 우유 단백질은 몽골지방 낙농 목축에 대한 최초의 직접 증거를 제시한다.  CREDIT: Christina Warinner

치아의 치석에 보존된 우유 단백질은 몽골지방 낙농 목축에 대한 최초의 직접 증거를 제시한다. CREDIT: Christina Warinner

치석 분석 결과 유제품 소비 증거 나와

연구팀은 또 단백질체학 기법으로 아홉 개체의 치석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일곱 개체에서 우유 단백질이 발견됐다. 이는 유제품이 이 지역에서 기원 전 1300년 이전에 소비되었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치석에 있던 유청과 응고 단백질이 둘다 복원돼 이 단백질이 양과 염소, 소에서 유래됐다는 것이 밝혀졌다. 흥미로운 것은 대상 개체들 모두 유전적으로 유당 락토오스 소화 능력이 없는 유당 불내증이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몽골인의 식단에서 유제품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도 대부분의 현대 몽골인들 역시 유당 불내증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선천적으로 유제품 소화 효소가 부족하지만 후천적인 식습관을 통한 장내미생물군 변화로 소화력이 생기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논문 시니어 저자인 같은 연구소 크리스티나 워리너(Christina Warinner) 박사는 “몽골의 3000년 전통 낙농 축산은 인류의 적응과 자연도태의 웅장한 서술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그는 “몽골은 풍부한 선사 이야기를 가진 유당 불내증 사회로서, 어떻게 문화적 관습이나 인체 장내미생물군 변형과 같은 적응들이 전세계 낙농 기반 사회를 가능케 하고 유지하는데 관여하는가를 이해하는 모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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