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출간된 ‘팩트풀니스(Factfulness)’는 의사이자 통계학자인 저자가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막연하고 부정확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쓴 책이다. 사람들은 극적인 것에 열광하는 특성으로 인해 쉽게 오해하고 부정적인 세계관을 갖게 되지만, 통계를 통해 실제에 접근해보면 사실은 이 세상이 꾸준히 진보해 왔다고 한다.
박사학위를 하고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임용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연구자들, 생애 처음으로 정부 과제에 선정된 신진연구자들은 실제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그들의 ‘시작’은 어떠한 것인지, 우리가 막연하게 떠올리는 것과 얼마나 같고 어떻게 다른지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부인종양 전공)에서 7년째 재직 중인 이마리아 교수에게 들어봤다.
이마리아 교수는 2016년 박사학위를 마치기도 전에 서울대에 임용된 이력을 가지고 있지만, 예상을 깨고 연세대에서 학·석·박사를 마친 순수 국내파다. 일찍 임용된 것을 두고 덕담을 건네자, “여성이고, 타교 출신이라 오히려 유리한 점이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것에서 젊은 연구자의 솔직함이 느껴졌다.
수술, 진료, 수업과 실습, 학과 일까지 챙기는 중에 처음으로 정부 기초연구 과제에 선정
이 교수는 “일주일에 4일은 종일 진료와 수술이 있어서 중간에 학생들 수업자료를 만들고 실습을 챙기고 있어요. 부교수로서 학과의 일까지 챙기다 보면 일주일에 하루 정도 다른 일들을 챙길 수 있습니다.”라며, 취재에 응할 수 있었던 것도 수술이 하나 취소돼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임상진료를 하면서도 최근에 처음 정부 과제에 선정되어 기초연구도 병행하는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한국연구재단의 ‘생애 첫 연구사업’은 과기정통부나 교육부의 기초연구사업 수혜 경험이 없는 4년제 대학의 전임교원을 대상으로 만 39세 이하 신진연구자를 지원한다.
이 교수는 “서울대에 오기 전부터 1년에 2회 정도는 신청을 했었지만 계속 떨어졌습니다. 이번에 연구재단의 생애 첫 연구 사업에 선정되기 전까지 열 번 정도 지원했었는데, 신진연구자지원사업보다는 선정률이 높다는 주변 교수님의 조언을 듣고 사업을 바꿔서 신청한 덕분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처음은 누구나 어렵다!
서울대 의대 이마리아 교수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실제 환자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연구성과에 관심, 임용초기에는 사비로 학생들 인건비 지급
이 교수는 부인암 중에서도 재발 가능성이 높고 조기진단이 어려워 난치병에 해당하는 난소암을 연구 중이다. 조기진단이나 치료의 예후를 예측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를 발굴하고 있는데, 아직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지 않아서 주로 DNA 시퀀싱 분석을 의뢰하고 결과를 받아서 연구한다.
이 교수는 “임상을 같이 하고 있는 의사이기 때문에 기초연구자들에 비해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의 다양한 샘플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어서, 이를 통해 얻어진 결과물이 논문 게재에 그치지 않고 환자에게 실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라고 말했다.
연구비 사용 계획에 대해서는 이 교수는 “부인암 유전체 연구를 하고 있고, 아직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지 않아서 시험검사 의뢰에 연구비가 가장 많이 들어갈 것 같고요. 서울대는 공동 활용 시설이나 장비가 잘 갖춰진 편이라서 아직 장비 구축을 계획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학생인건비인데, 지금 수준의 연구비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처음에 임용되었을 때는 사비로 학생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했는데, 기초연구라는 게 열심히 해도 제가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속되지 못했어요. 2~3년 그렇게 했지만 연구비 수주가 되지 않아서 계속 끌고 가기 힘들었는데, 서울대 임용 초기에 교내 연구비 지원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향후 연구실을 운영할 계획은 갖고 있지만, 현재는 논문을 필요로 하는 전임의 중에서 같이 연구하는 분들이 있고, 큰 과제를 하고 계신 중견 선배 교수님들 지도 학생 가운데 제 연구를 도와주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번 연구재단 과제를 계기로 다른 과제도 신청하고 같은 학과의 다른 교수님, 다른 과 교수님과의 공동연구도 해보려고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연구경력이 짧은 신진연구자는 성과창출 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고 정량적인 평가에 더 불리
이 교수는 “학교나 병원의 규모에 따라 상대적으로 장비가 부족하거나 실험을 해주는 인력들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서울대 의생명연구원에 실험을 많이 의뢰하는데, 비교적 장비나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연구비가 적은 신진연구자들은 연구비가 많은 중견연구자에 비해 실험 결과가 나오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기초연구는 2~3년 연구에도 기대했던 결과가 안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보통 1년 단위로 무언가 결과를 제출하고 보고해야 하는 부담이 큽니다. 때문에 연구에 몰입하기 보다는 말하자면 ‘단타식’ 연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느낌입니다. 기초연구 하는 연구자에 공통적일 수 있지만, 중견연구자들에 비해 이뤄놓은 게 적은 신진연구자에게는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어요. 정부 과제 평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논문이나 특허 수와 같이 정량적이고 정형화된 잣대로 평가하면 아무래도 신진연구자가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기관별 연구환경의 차이로 시작된 얘기가 자연스럽게 신진연구자와 중견연구자의 연구환경 차이로 이어졌다.
반면 이 교수는 “저도 정부과제 심사를 해본 적이 있는데, 전공분야 적합도가 높고 잘 아는 분야인 경우에는 심도 있는 평가가 가능해 보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연구계획서의 우수성보다는 그때의 상황, 계획서가 이해하기 쉽게 작성되었지 등에 좌우되어 평가 후에 허무한 느낌이 들었어요. 다만, 분야가 약간 다를 때에는 제가 해보지 않은 실험 방법 등이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어서 의외의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지거나 드물게 발생하는 질환에 대해 연구하는 경우는 연구비 수주가 더욱 어려운데, 그래서 오히려 더 이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부인암도 그런 분야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국의 의학분야 성과는 성장세에 있어 미래는 밝지만, 장기적인 방향성을 가진 범정부적 지원 필요
또한 이 교수는 “의학 분야는 연구 수준에 있어서 다른 어떤 과학 분야 못지않게 굉장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분야입니다. 하지만 부처별로 예산이 나눠진 탓인지, 10년, 20년을 내다보는 거시적인 목표와 방향성 없이 연구비가 지원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미국국립보건원(NIH)과 같이 의학, 의료, 생명 분야를 아우르는 전문성 있는 보건 의료 연구의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미래 의학은 임상과 기초과학을 모두 잘 아는 연구자가 필요한데, 연구 외적인 일에 지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독립된 연구자가 될 수 있도록 시작하는 단계부터 안정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며 안정적인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미국 기초연구 지원의 산실로서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국립과학재단(NSF)의 비전 슬로건이 떠올랐다. ‘발견이 시작되는 곳(Where Discovery begins)’ 이들이 이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막대한 연구비를 가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연구를 통한 발견과 발명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 그것은 연구를 막 시작한 신진연구자를 제대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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