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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중국 출신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3)

[과학기술 넘나들기] 과학기술 넘나들기(150)

중국 출신의 과학자로서 노벨상을 받은 이들이 적지 않지만, 대학 시절 전후에 미국 또는 영국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거나, 미국에서 출생한 중국계 미국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이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연구 역시 미국 또는 영국 등지에서 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중국 과학계만의 업적이라 보기는 힘든 부분이 있다.

2015년도 노벨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인 투유유 ⓒ Bengt Nyman

그런데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투유유(屠呦呦, 1930~ )의 경우, 최초로 중국 과학계가 배출한 노벨과학상 수상자로서 여러모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전통적인 약용식물인 개똥쑥으로부터 아르테미시닌 성분을 추출하여 말라리아 치료약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다른 두 명의 과학자와 함께 2015년도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투유유는 이른바 ‘3무(無) 과학자’라 불렸는데, 중국 과학계의 최고 명예인 원사(院士) 직위는커녕 박사학위조차 없었고, 해외 유학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2년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 1959~ )가 학사 출신에 평범한 민간 기업의 연구원으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여 큰 화제를 모았는데, 투유유 역시 이에 버금갈 정도로 노벨과학상 수상자로는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라 하겠다.

모기가 매개하는 기생충의 일종인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말라리아는, 오랜 옛날부터 인류를 괴롭혀온 급성 열성 전염병 중 하나이다. 오늘날에도 세계적으로 2억 명 이상이 이 질병에 노출되거나 앓고 있으며, 해마다 수십만 명에서 백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말라리아 병원충 ⓒ 위키미디어

말라리아를 치료하는 방법 역시 옛날부터 개발되어 왔는데, 예전에는 키니네(quinine)나 클로로퀸(chloroquine)이 말라리아의 특효약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쓰이다 보니 내성이 생겨서, 갈수록 약효가 떨어지거나 치료제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할 정도가 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말라리아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일이 급선무였는데, 투유유는 이를 중국 전통 의학에서 찾은 것이다. 그녀가 말라리아 치료제를 추출한 개똥쑥(黃花蒿, 학명 Artemisia annua L.)은 국화과 쑥속에 속하는 식물로서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며, 중국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오래전부터 약재로 쓰여왔다.

4세기경 중국의 동진(東晉) 시대에 활동한 의약학자이자 도학자였던 갈홍(葛洪, 281~341)은 방대한 저술을 남긴 인물이다. 그의 호를 딴 포박자(抱朴子)는 연단술(煉丹術)을 다룬 유명한 저서로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비과학적이겠지만, 서양의 연금술처럼 화학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가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의약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저술한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에는 학질, 즉 말라리아의 치료에 관한 대목도 나온다. 즉 개똥쑥 한 줌을 충분한 물에 담가 즙을 짜서 복용하라는 처방이 기록되어 있다.

전통 약용식물의 하나인 개똥쑥 ⓒ 위키미디어

투유유는 1930년 중국 저장성 닝보에서 태어나 베이징의학원 약학과에서 식물학과 본초학 등을 공부하였다. 유유(呦呦)라는 그의 이름은 시경(詩經)의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서, 사슴의 울음소리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중의연구원에서 근무하면서 중국 전통의학을 연구하였다.

투유유가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하게 된 배경에는, 베트남 전쟁 등 당시의 정치적 요인들도 관련되어 있다. 즉 1960년대에 미국과 전쟁 중이던 북베트남에서 말라리아로 인하여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하자, 호찌민 주석은 중국 정부에 말라리아 치료제의 개발을 요청했던 것이다.

북베트남의 요구에 더하여 중국 남부지역에서도 수많은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1967년에 마오쩌둥은 비밀 지시를 내려서 전국적으로 과학자를 동원하여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에 나서도록 하였다. 시작한 날짜를 따서 이른바 ‘523 임무’라 불리는 이 프로젝트에 전국적으로 60여 개의 연구기관에서 500여 명의 과학자들이 투입되었다. 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혼란으로 기초과학 연구가 거의 중단되고 과학기술자들이 핍박받던 시기여서, 이 프로젝트는 베트남을 돕기 위한 군사 연구의 차원에서 마오쩌둥의 특별 지시가 필요했던 것이다.

1950년대 중의연구원 시절의 투유유(우측) ⓒ 위키미디어

1969년부터 이 연구에 보조연구원으로 투입된 투유유는 능력을 인정받아 소조장이 되었고, 수백, 수천 종의 약재를 찾은 끝에 갈홍의 주후비급방 구절에서 힌트를 얻어, 마침내 개똥쑥으로부터 ‘저온추출법’으로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하게 되었다. 말라리아에 특효가 있는 새로운 치료제의 성분은 개똥쑥의 학명을 딴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이라 불렸고, 중국식 명칭으로는 ‘칭하오쑤(靑蒿素)’이다.

투유유의 노벨상 수상은 몇 가지 측면에서 논란거리를 낳기도 하였다. 즉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것은 투유유 개인이며 중국 정부나 중국과학계가 수상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리커창 총리는 ’중국 과학과 중국 전통의약학이 받은 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사실 투유유가 아르테미니신을 개발한 직후인 1972년에 연구성과를 발표할 당시에도, 보고 제목이 ‘마오쩌둥 사상 지도가 발굴해 낸 항학질 중약 공작’으로서 정치적 색채를 떨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역으로 이러한 공적과 영광을 투유유 개인이 독차지하는 것이 온당한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또한 전혀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거나 첨단의 이론적 성과를 낸 것도 아니고, 무려 4세기부터 알려진 기록을 토대로 약재를 추출한 것이 노벨상을 받을 정도의 업적이 되는가 하는 비판도 따를 수 있다.

그러나 투유유는 190번이라는 숱한 실패 끝에 성공을 거둔 집념을 보였고, 또한 매년 수십만 명의 인명을 앗아가는 말라리아를 치료하는 것이므로 노벨상의 이념인 인류의 평화와 복지에도 부합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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