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서 이름을 딴 ‘카드뮴’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49)

최근 언론을 통해 아이들 장난감에서 카드뮴 같은 유해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푸른빛을 내는 은백색 금속으로 일반인은 니켈-카드뮴 전지 정도로 본 적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카드뮴은 어감이나 뉘앙스가 상당히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데 그 이유는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이기 때문이다. 카드뮴의 이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기원이 그리스-로마 신화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니켈-카드뮴 전지. ⓒ 박지욱

니켈-카드뮴 전지. ⓒ 박지욱

그리스 신환에서 황소로 변한 제우스에게 납치된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Europe)에서 유럽(Europe)이라는 지명이 탄생했다. (이름들의 오디세이 7화 ‘유럽과 유로파’ 참고). 카드뮴의 사연은 그 후일담으로 시작한다.

금지옥엽인 딸을 잃은 페니키아의 왕 아게노르는 아들 카드무스(Cadmus)를 불러 여동생을 찾아 나서라고 명한다. 그리고 만약 동생을 찾지 못하면 왕자도 집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엄혹한 명령을 내린다.

카드무스는 비장한 각오로 동생을 찾아 그리스 전역을 돌아다녔지만 공주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공주는 바로 바다 건너 크레타 섬에 있었지만 카드무스는 크레타는 가지 않았다. 설령 크레타에 갔다 하더라도 오빠는 여동생을 만나거나 구출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제우스가 에우로페를 가두어 놓은 이상 인간의 힘으로는 되돌릴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아마도 카드무스는 크레타만 제외하고 그리스 전역을 헤매고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카드무스에겐 헛고생에 불과했던 그리스 일주였지만 그리스인들에겐 행운의 사건이 되었다. 선진 문명국이었던 페니키아의 문자가 카드무스를 통해 그리스로 전해졌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영어의 자모 체계는 알파벳(alphabet)이라 불리는데, 영어에는 ‘알파’도 ‘베트’가 없다. 다만 영어의 기원이 라틴어, 라틴어의 기원이 그리스어인 것을 생각하면 영어의 자모 체계를 그리스어의 첫 글자인 알파(α)와 베타(β)에서 따와 부른다는 것이야말로 영어가 그리스어의 영향을 받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페니키아 알파벳 중 그리스어 알파에 해당하는 문자. 소의 머리 모양에서 따온 것이다.  ⓒ 박지욱 사진

페니키아 알파벳 중 그리스어 알파에 해당하는 문자. 소의 머리 모양에서 따온 것이다. ⓒ 박지욱

결국 카드무스는 누이도 찾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카드무스는 자신의 딱한 처지를 ‘영험하기로 소문난(?)’ 아폴론의 신탁에 물어본다. 물론 아폴론은 손바닥 보듯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실을 말했다가는 아폴론 자신은 물론이고 카드무스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는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 카드무스를 단념시키려 그랬을까? 아폴론은 카드무스에게 새로운 임무를 내려준다.

“신전을 나가서 제일 처음 마주치는 암소를 따라가라. 암소가 걸음을 멈추고 누우면 그 자리에 도시를 짓고, 테베(Thebes/Thebai)라 불러라!”

아폴론의 신탁은 사실 애매하기 그지없거나 동문서답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딱히 믿을 데도 없는 카드무스는 부하들을 이끌고 제일 처음 마주치는 암소를 따라간다. 암소는 카드무스를 아테네의 북서쪽으로 이끌고 갔다.

한참을 가던 소는 마침내 걸음을 멈추고 자리를 잡고 누웠다. 카드무스는 신탁이 실현된 것을 기뻐하여 신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카드무스는 몰랐겠지만 테베는 크레타섬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사고가 터졌다. 물을 길으러 간 부하들이 샘을 지키는 왕뱀에게 물려 모조리 죽임을 당한 것이다. 카드무스는 달려가 왕뱀을 찔러 죽여 부하들의 원한을 갚는다. 하지만 이제 홀로 남은 그가 어떻게 신도시를 건설한단 말인가? 하는 수없이 여동생을 다시 찾으러 나설까?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뱀 이빨을 땅에 뿌려라”는 음성이 들린다. 카드무스는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뱀 이빨을 뽑아 볍씨를 뿌리듯 땅에 뿌린다. 그러자 놀랍게도 흙 속에서 완전 무장을 한 전사들이 쑥쑥 자라 나오기 시작한다. 이들은 나중에 스파르토이(Spartoi)라고 불리는데, ‘뿌려서 태어난 남자’란 뜻이다. 스파르토이와 영어의 스프레이(spray)는 보나 마나 친척인 단어가 된다.

뱀의 이빨을 뿌려 태어난 스파르토이. 루벤스.

뱀의 이빨을 뿌려 태어난 스파르토이. 루벤스.
ⓒ 위키백과

스프레이, 아니 스파르토이들은 다 자라서 땅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아무 이유도 없이 서로를 보고 으르렁대더니 마침내 격분하여 칼로 서로를 찔러 죽이기 시작한다. 속수무책으로 카드무스가 지켜보고 있는 동안 마침내 칼부림이 끝나고 최종 승자 다섯이 살아남았다. 그들은 그만큼 뛰어난 전사들이었다. 당연히 자신들을 태어나게 한 카드무스에게 복종했고, 카드무스는 그들을 이끌어 테베를 건설한다.

카드무스는 전쟁의 신 아레스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난 딸 하르모니아(Harmonia)와도 결혼한다. 둘은 금술이 좋았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자식들은 모두 불행해진다. 상심한 카드무스는 테베의 왕위를 버리고 아내를 데리고 엥겔리아라는 곳으로 물러난다. 하지만 그곳 주민들은 그를 다시 왕으로 추대했다. 두 사람은 나중에 선량한 ‘뱀’이 되어 백성을 보호하며 살았다. 이렇게 카드무스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1817년에 독일 화학자 스트로마이어(Friedrich Stromeyer)는 탄산 아연(zinc carbonate)을 가열해 ‘칼라민(calamine, 산화 아연)’을 만드는 가열 과정에서 불순물 때문에 색이 노랗게 변하는 사실을 알고 그 불순물을 처음으로 분리하는데 성공한다.스트롬마이어는 새로 발견한 물질의 이름을 칼라민의 라틴어 이름인 ‘카드미아(cadmia)’에서 따와 ‘카드뮴(cadmium)’으로 지었다. 카드미아는 ‘카드무스의 땅’이란 뜻으로, 칼라민의 주요 산출지가 테베라서 붙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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