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딛고 우주 향한 마음, 배지에 담아…

[이름들의 오디세이] 아폴로 프로그램 배지의 의미

머큐리 프로젝트(Project Mercury)의 마지막 주자 ‘프리덤 7호’가 성공한 직후인 1961년 5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의회에서 ‘1970년이 되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담대한 포부를 발표했다. 이것이 바로 아폴로 프로그램(Apollo program; 1960~1972)이다.

하지만 인류가 처음으로 지구를 떠나 다른 천체에 발을 디뎌보겠다는 이 원대한 도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우선 맞이한 어려움은 시간 부족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의 발표대로 1969년 12월 31일까지 프로그램을 끝내기 위해서 연구원들은 더욱 급하게 연구에 매진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엄청난 예산 지원을 아끼지 않던 케네디 대통령이 1963년 암살됐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아폴로 프로그램의 첫 주자인 아폴로 1호는 발사도 되기 전에 사고가 나서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다. 대단히 암울한 시작이었다.

아폴로 프로그램 배지 ⓒ 위키백과 자료

아폴로 프로그램 배지 ⓒ 위키백과 자료

그러나 이러한 좌절을 딛고 일어섰기에, 인류는 우주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 상징과도 같은 아폴로 프로그램 배지(insignia)를 한 번 살펴보자.

아폴로 프로그램을 뜻하는 ‘A’ 자가 한 가운데 보이고, ‘A’의 좌우에는 지구와 달이 보인다.

지구, 정확히는 미국 땅인 플로리다에서 출발한 우주선이 아폴로 신의 얼굴이 새겨진 달까지 가는 여정이 보인다. 달의 여신은 ‘다이애너(Diana)’이지만 아폴로의 얼굴이 그려진 것이 의외다. A의 가운데 획에는 3인의 승조원을 뜻하는 별 셋이 보인다.

한편 우주 개발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케네디 대통령의 이름은 NASA의 발사기지(NASA Launch Operations Center)에 남았다. NASA는 1958년부터 운영해 오던 플로리다 주 케이프 캐너버럴 발사장의 이름을 ‘케이프 케네디’로 바꿨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케이프 케네디는 1973년 다시 원래의 지명인 케이프 캐너버럴로 환원되었다.

대신 NASA 발사기지의 이름이 케네디 우주 센터(John F. Kennedy Space Center)가 되었다.

케이프 캐너버럴(Cape Canaveral) ← (스페인어) Cabo Cañaveral 갈대 곶

승조원들의 아이디어를 반영해 만든 아폴로 1호의 배지도 한 번 살펴보자. 아폴로 1호의 모선(CSM)이 미국 남동부의 플로리다 상공을 비행하는 모습이 새겨졌다. 이 곳을 그려 넣은 이유는 발사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아폴로 1호 배지 ⓒ 위키백과 자료

아폴로 1호 배지 ⓒ 위키백과 자료

배지 바깥쪽에는 성조기 도안이 보이고, 그 안쪽 금색 태두리에는 승조원들의 이름과 ‘아폴로 1호’를 새겼다.

그러나 이 승조원들은 결국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의 공언 이후 40개월 조금 못 미친 1967년 1월 27일, 케네디센터의 발사대에서는 발사를 3주 앞둔 아폴로 1호의 발사 모의 훈련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사령실에 화재가 발생하여 3명의 승조원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사실 아폴로 1호는 제작 과정부터 문제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시간에 쫓기다 보니 많은 문제점을 안고서도 어쩔 수 없이 추진되었고, 승조원들 역시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NASA가 우리들에게 ‘고물 자동차’를 몰고 달에 가라고 한다”며 투덜거릴 정도였다.

아폴로 1호의 승조원들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장면. 당시에는 비공개되었던 사진이다.  ⓒ 위키백과 자료

아폴로 1호의 승조원들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장면. 당시에는 비공개되었던 사진이다. ⓒ 위키백과 자료

아폴로 1호의 비극 이후로 유인 우주선 계획은 잠정 중단되었다. 그리고 NASA는 당분간 무인 우주선으로만 성능을 시험했다.

3인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2호와 3호는 결번이 되었고, 다시 시작한 프로그램은 아폴로 4호였다.

사고 후 10개월이 조금 못 미쳐 발사된 아폴로 4호는 세턴V 로켓에 모선(CSM; Command/Service Module)을 탑재해 발사했다.

아폴로 5호는 새턴1B 로켓에 달착륙선(LM; Lunar Module)을 탑재해 지구 궤도에서 엔진 시험을 했다.

아폴로 6호는 새턴V 로켓에 모선(CSM)과 달착륙선(LM)을 탑재해 발사했지만 발사 과정에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해 사실상 실패라는 판정을 받았다.

좌로부터 각각 무인 우주선으로 발사된 아폴로 4호, 5호, 6호. 5호는 새턴1B 로켓을 썼기에 작아 보인다. 다. 6호는 흰색 CSM이다.  ⓒ 위키백과 자료

좌로부터 각각 무인 우주선으로 발사된 아폴로 4호, 5호, 6호. 5호는 새턴1B 로켓을 썼기에 작아 보인다. 다. 6호는 흰색 CSM이다. ⓒ 위키백과 자료

처음으로 사람을 태우고 우주로 나간 아폴로 우주선은 아폴로 7호로서, 아폴로 1호 사고 후 20개월만인 1968년 10월에 발사되었다.

아폴로 7호는 3인의 승조원을 싣고 새턴1B 로켓에 실려 지구 궤도까지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이후 11일 동안 체류하면서 모선(CSM) 기능을 시험하고 무사히 귀환했다

아폴로 7호의 배지 ⓒ 위키백과 자료

아폴로 7호의 배지 ⓒ 위키백과 자료

아폴로 7호의 배지를 살펴보면 아폴로 7호의 임무를 알 수 있다. 달까지 인간을 데려갈, 모선의 주엔진인 SPS(Service Propulsion System (SPS)가 불을 뿜으며 지구 궤도를 힘차게 도는 모습을 그렸다.

아폴로 1호가 플로리다 앞바다의 하늘에 떠있다면 아폴로 7호는 북아메리카 상공에 떠있다. 로마 숫자로 7(VII)이 보이고 테두리에는 승조원의 이름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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