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 온다면 ‘생존’만이 삶의 목적일까”

[허구에서 바라본 전염병] (9) 데니 보일 감독 영화 ‘28일 후’

더 이상 최신곡을 들을 수 없다. 신간 도서도, 영화도 없다.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물도, 전기도, 식량도 끊긴다. 인류가 멸종된다면 대부분 우리가 공기처럼 누리던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데니 보일(Danny Boyle) 감독의 영화 ‘28일 후’(28 Days Later)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인간이 사라진 세계를 그린다.

홀로 생존을 위해 살 것인가. 죽음을 무릅쓰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 영화는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사라진 세계를 그리면서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존재 가치를 되묻는다.

데니 보일 감독의 영화 ’28일 후’는 전염병에 관한 영화이자 인간 내면의 폭력성을 고발한 영화다. ⓒ 이십세기 폭스

피와 분비물로 감염되는 바이러스

수많은 SF 작품들이 원인 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은 이들의 분투를 그린다. 2002년 개봉 영화 ‘28일 후(28 Days Later)’ 또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생존자들의 기록이다.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온 거리가 텅텅 빈 영국.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사망하고 방치된 폐허로 일그러진 영국 런던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18년 전 영화지만 지금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로 수만 명의 사망자가 나온 영국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의식을 잃고 28일 후 깨어난 세상은 이전에 알고 있었던 세상이 아니었다. 의식을 찾은 짐은 아무도 없는 영국 거리에서 큰 상실감을 느낀다. ⓒ 이십세기 폭스

영국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총리는 이탈리아에 닥친 코로나19의 재난을 방관했다. 어쩌면 코로나19를 그저 ‘독한 감기’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바이러스의 심각성을 외면한 그가 감염자와 악수를 하고 다니며 자신 또한 코로나19 확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코로나19가 지닌 엄청난 전파력을 간과했다. 코로나19는 강한 전파력을 지닌 지독하고 잔인한 바이러스였다. 영국은 현재까지도 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영화 ‘28일 후’에서 등장하는 바이러스 또한 강력하고 지독하다. 어느 날 시골에서 시작된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영국 전역에 퍼졌다.

퀵 배달원 짐(Jim)이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입원한 후 28일이 지난 후 영국 런던의 모습은 사람들이 사라져 황량할 뿐이었다. 바이러스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었고, 죽지 않은 사람들은 감염자가 되어 생존자들을 공격했다. 아비규환인 그곳에는 정부도, 군대도, 경찰도 없었다.

온 거리는 감염자와 시체로 가득했다. 이 바이러스는 감염자의 혈액이나 분비물이 입으로 들어가거나 긁히거나 물리면 20초 내로 감염이 시작된다. 감염자는 극단적인 분노로 인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난폭하고 잔인하게 상대방을 물어뜯는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에게서 자신을 지킬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감염이 의심되면 20초 안에 죽여야 한다. 부모도,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지도, 친구도 예외는 없다.

바이러스 감염자의 눈은 분노로 충혈되어 있다. ⓒ 이십세기 폭스

분노가 일어나는 바이러스, 결국 인간의 내면과의 싸움

‘28일 후’에서 등장하는 바이러스의 정체는 ‘분노’다. 영국의 한 영장류 연구시설에서 침팬지들은 세상의 모든 폭력적이고 잔혹한 장면을 계속 뇌로 전달받는 실험을 받고 있다.

침팬지들은 지구 곳곳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잔혹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영상을 통해 ‘분노’가 축적된 바이러스를 생성한다.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침팬지들은 동물 권리 운동가들에 의해 풀려나고 침팬지들은 사람들을 물어뜯는다.

셀레나는 영화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냉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 그는 감염자를 가차 없이 도륙한다. ⓒ 이십세기 폭스

영화는 세상의 종말이라는 가설 속에서 여러 인간 군상들을 보여준다. 마크(Mark)와 셀레나(Selena)는 짐이 처음 만난 생존자다. 이들은 짐을 감염자들 사이에서 두 번이나 생명을 구해준다. 하지만 두 번째 싸움에서 마크는 감염자에게 상처를 입고 셀레나는 즉시 “오, 안 돼”하고 절규하는 그를 도륙한다.

감염자는 인간이 아니라는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생존에 임하는 셀레나에 비해 짐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애당초 마크가 죽게 된 이유도 한밤중에 짐이 촛불을 켜고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불빛과 소음에 반응하는 감염자들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냉정한 셀레나가 따스하게, 허술하고 유약했던 짐이 강인하게 변화하게 된 것은 또 다른 생존자 그룹 프랭크(Frank) 부녀 덕분이다.

프랭크(Frank)와 해나(Hanna)는 그 어느 생존자들보다 특별하다. 이들 부녀는 어느 정도 감염자를 막을 수 있는 거주지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빌딩 옥상, 비축된 식량, 차, 초, 배설물을 처리할 정도의 작은 시설 등 종말이 닥친 세계에서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곳에서 최소한의 생존은 가능하지만 그렇게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맨체스터로 이동하고자 한다.

셀레나는 생존만을 염두에 두며 거리로 나서는 것이 위험하다며 만류하지만 프랭크와 해나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 부녀의 생각은 아무리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졌어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삶의 유지 목적이 있다는 말이다.

“숨만 붙었다고 사는 것은 아니죠. 프랭크 부녀를 봐요. 서로 의지하고 기대면서 힘든 것을 이겨내잖아요.”

영화 초반과 마지막에 보이는 ‘헬로’라는 단어는 의미심장하다. ⓒ 이십세기 폭스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며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 된다면 가차 없이 사람을 베던 셀레나는 프랭크 부녀를 보면서 자신의 삶의 철학이 달라졌음을 고백한다.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고난 속에서 인간은 삶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조건이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목숨을 연명하는 것이 최우선인 재난 속에서도 진정한 삶의 목적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초반에 짐이 시체 더미 속에 있던 감염자들을 향해 한 첫 마디 ‘헬로(HELLO)’와 영화 말미 셀레나와 해나가 천을 엮어 ‘헬로(HELLO)’라는 구조 문자를 만들고 헬기를 향해 웃음 짓는 장면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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