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명제, 과학으로 입증하다

과학자에게 종교란?(상)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과학자’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자연신학자라고 했습니다. 뉴턴도 자연신학자로 불렸습니다. 뉴턴의 글들을 보면 과학적인 것보다 종교적인 것이 더 많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깊은 신앙생활을 했던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지 과학자이자 신학과 과학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는 현우식 호서대 교수는 “신을 공부하던 뉴턴은 성경의 가르침을 과학을 통하여 증명하려 한 것”이라며 “뉴턴의 3대 법칙이 그 대표적 예”라고 설명했다.

성경의 주기도문에는 ‘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글귀가 있다. 이 종교적 명제를 뉴턴은 과학적으로 입증하려 했다. 그 결과가 지구 내부나 지구 외부의  우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뉴턴의 3대 법칙인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다. 그야말로 종교적 믿음에 기반을 둔 과학적 성과인 셈이다.

하지만 뉴턴의 예는 어디까지나 학문이 세분화되기 전의 일이다. 현재에도 과학자들의 종교에 대한 태도가 비슷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현 교수는 이런 주장에 “과학과 종교는 양립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빅뱅이론, 성경의 태초이자 시작 증명

“현대 과학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이인슈타인도 종교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저명한 과학자 파인만, 다이슨, 굴드, 펜로즈 등도 종교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펜로즈는 빅뱅이론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펜로즈-호킹 특이점 정리(singularity theorem)를 증명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입니다.”

빅뱅 이론(Big-Bang Theory)은 극도로 높은 에너지를 가진 아주 작은(부피가 0인) 한 점(특이점)이 대폭발을 통해 팽창하면서 우주가 형성됐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이 나오기 전인 20세기 중반 이전까지도 우주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정적 우주론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빅뱅 이론이 나오자마자 많은 논란이 일어나게 됐다. 그런데 수리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의 등장으로 모든 반론을 잠재울 수 있었다. 우주 팽창의 시작으로, 무한대의 밀도를 가진 한 점 즉 ‘’특이점’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시작’, 즉 ‘태초’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로저 펜로즈 교수와 현우식 교수 ⓒ 현우식

로저 펜로즈 교수와 현우식 교수 ⓒ 현우식

그런데 로저 펜로즈 본인도 ‘펜로즈 삼각형’ 모델에 근거하여 종교적 세계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펜로즈에 의하면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3개의 실재 세계(real world)를 전제해야 한다. 하나는 초시간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토닉 월드(Platonic World)’인데, 수학적 세계이자 추상적인 세계이다. 수학에서 허수(i)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허수는 상상의 수이다. 실재 존재하지 않는 수라는 의미에서 허수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허수가 없다면 현대물리학은 탄생할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양자물리학의 이론 자체가 나올 수 없었다. 수학세계에서 허수는 볼 수 없는 수이지만 존재하고 있는 수이다. 이 허수가 존재하는 세계가 ’플라토닉 월드‘라고 할 수 있다. 펜로즈에게 추상적 수학의 세계는 분명히 실재하는 세계이다.

로저 펜로즈는 이 ‘플라토닉 월드’가 실재하므로 우리가 존재하는 ‘물리적 세계(Physical world)’가 실재한다고 봤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인간의 뇌가 만드는 의식인 세계인 정신적 세계(mental world)’가 생겨난다고 봤다. 중요한 것은 뇌는 의식을 만들어내지만 의식이 뇌의 형태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수학적 세계가 정신적 세계에 초월하여 존재하지만 의식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즉 수학적 세계의 부분으로부터 물리적 세계가 서술될 수 있고, 물리적 세계의 부분으로부터 정신적 세계가 나올 수 있고, 정신적 세계의 부분으로부터 수학적 세계는 이해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 교수는 “펜로즈의 삼각형을 종교적으로 해석하자면 추상적 실재인 신이 물리적 세계를 만들었고 그 안에 있는 인간은 자신의 의식을 통해 신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멘탈 월드가 신을 자각하게 만들어주는 종교의 영역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학과 종교의 갈등은 사회적 문제로 인해 발생

솔직히 이렇게 예를 들지 않아도 과학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종교와 과학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성장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과학과 종교가 반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현 교수는 “과학과 종교의 갈등은 두 분야의 직접적 싸움이라기보다는 사회적·문화적·역사적 등 외부환경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대답했다.

과학과 종교의 갈등 사례로 바로 생각나는 인물은 갈릴레오이다. 카톨릭에 의해 그는 억압받은 대표적 인물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갈릴레오의 과학적 신념이자 종교적 탄압에 저항의 말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천동설과 지동설 논쟁을 담은 갈릴레오의 ‘두 개의 주요한 세계 체계에 대한 대화’는 갈릴레오의 친구이자 과학과 수학을 가르쳐주었던 바르베리니 신부가 교황에 즉위한 것을  염두에 두고 출간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재판에 유죄선고를 내린 사람이 우르바노 8세 교황이었다.

현 교수는 “당시 갈릴레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프로테스탄트들이 늘어나면서 카톨릭이 복합적인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겉으로는 종교와 과학의 갈등처럼 보이지만 근대사회로 이행 과정에 발생한 사건이었을 뿐”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종교와 과학의 갈등하는 모습을 본다.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첨예해보이기까지 한다. 특히 최첨단 과학의 선두에 서 있다고 하는 미국에서도 목격되기도 한다.

현 교수는 “미국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보면 두 분야의 싸움이라기보다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탄생 배경으로 인해 독특한 사회적 문제로 발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공동의 역사를 갖지 못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만든 나라여서 국가를 하나로 묶기 위한 정신적 이념이 있어야 했는데, 기독교는 그 주요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기독교를 부정하는 사회주의자들과 유물론주의자이 말하는 ‘진화론’을 거부하게 됐고, 이 이데올로기는 아직도 일반인이나 종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심지어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게놈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콜린스가 기독교모임에서 강연을 할 때, 다른 이야기는 잘 듣다가도 ‘진화’라는 단어만 나오면 사람들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릴 정도이다. 진화론을 바라보는 흑백논리가 뿌리 깊이 박혀 나온 현상인 셈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종교와 과학의 관계가 대립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사상사의 위치에서 서양 철학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위치에 비견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할 때 두 가지 논리로 창조했는데, 첫 번째는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부터 만든 창조이고, 두 번째는 가능성을 만들어 놓으시고 가능성이 현실로 실현되면서 더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지도록 하는 창조이다.”라고 성서를 해석해 놓고 있다.

현 교수는 “두 번째 해석은 연속적인 변화인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연속창조’가 이것”이라며 “진화론 등을 여기다 대입하게 되면 이 정의가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덧붙여 현 교수는 “‘과학과 종교가 양립가능 한가?’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볼 때 거시적으로 대부분 공존하고 양립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갈릴레오 사건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사과를 했고 진화론도 ‘신의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만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을 걸기는 했지만 어쨌든 교황청도 받아들였다.

현 교수는 “큰 틀로 보자면 이제까지 종교와 과학은 크게 반목한 적은 없었다.”며 “다만 우리 눈에 그렇게 보였던 것은 일부의 과학자와 종교인들이 편견을 가지고 자극적인 말로 상대를 비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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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박종원 2014년 9월 12일3:59 오후

    종교와 과학의 공존은 싸움이 아닌 상호보완을 위하여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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