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종교를 통해 세계역사를 바꾸어 놓은 기술

[과학명저 읽기] 과학명저 읽기 33

린 화이트 2세는 유럽 중세사 학자였다.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학 학위를 마치고 여러 대학에서 중세사를 가르쳤지만, 그는 또한 신학을 공부한 종교인이기도 했다. 중세사학자로서 그리고 종교인으로서, 그는 세계의 역사를 이끈 결정적인 힘을 유럽의 중세 종교문화에서 읽어 낼 수 있었다. 그가 중세 유럽의 종교문화에서 본 그 힘이란 자연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변화시키려는 인간의 의지였다. 그리고 그 기술적 의지 또는 인간중심적 심성은 매우 세속적인 인본주의적 과학기술관으로 탈바꿈하여 미래의 사회변화를 추동하고 자연을 닥달하게 될 것이었다.

20세기 초까지 유럽 중세사는 고대 문명의 쇠퇴와 정체의 역사로 그려졌다. 특히 낮은 기술 수준으로 인해 꾸준한 산업 생산력의 증진을 기대할 수 없었던 전 근대사회로서의 성격이 강조되었다. 천문학의 역사를 다루는 어떤 책은 심지어 중세 부분의 장을 제목만 붙이고 백지로 남긴 채 출판되기도 했다. 다룰 내용이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20세기 전반 많은 학자들이 과학의 역사에서 중세 유럽의 의미를 새로이 발굴해 냈다. 물리학자 피에르 뒤엠은 방대한 자료를 통해 인간의 지성이 신의 의지, 즉 자연을 읽어 낼 수는 없다는 신학적 명제가 경험과학, 실증주의, 그리고 실험과학의 토대가 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철학자 에티엔느 질송 역시 꼼꼼한 추적을 통해 데카르트 류의 기계적 자연관을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의 행간에서 읽어 낼 수 있었다. 린 화이트 2세의 스승이었던 찰스 해스킨스는 고대의 학문이 유럽에서 다시 태어나는 사건을 15, 16세기 이탈리아로 보는 대신 12세기 프랑스와 영국으로 보는 해석을 “12세기 르네상스”라는 표현을 통해 설득력 있게 펼쳐 보여 주었다.

 

중세사학자로서의 경력 초반부터 린 화이트 2세는 해스킨스나 조지 사튼 등 선배들과 달리 문자 기록과 문서고 작업에 매달리지 않고 농민들과 장인들이 남긴 인류학적 유물에 대한 연구들에 초점을 맞추어 가며 독특한 시각을 길러갔다. 중세의 광영을 위압적인 성당 건축물이나 스콜라 철학의 미로 속에서가 아니라 그 건축을 가능하게 한 기술 그리고 그 기술을 추동한 인본정신에서 찾았던 것이다.

화이트는 소위 ‘고급문화’가 쇠퇴한 중세 내내 농민이나 장인들의 기술은 조금씩 변화해 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 기술 변화의 결과로 10세기의 농노는 전성기 로마의 노동인보다 월등히 높은 생활수준의 삶을 누리고 있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 그 기술이란 대체로 현대인의 눈에 엄청난 첨단기술로 보이는 것들은 아니었다. 이 책 <중세의 기술과 사회변화>에서 화이트는 우선 말의 등자가 어떻게 봉건제라는 사회제도를 가능하게 해 주었는지를 보여준다.

말의 등자는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도구이다. 그런데 화이트는 중세 봉건제를 연구하면서 동시에 기마술의 역사와 전쟁사를 다루는 문헌과 유물들을 집요하게 추적, 정리하여 놀라운 결론을 이끌어 낸다. 물론 원시적인 형태의 등자는 역사 상 여러 차례 등장했다. 하지만 기마병에게 든든한 발 받침대를 제공하면서 전투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를 실제 전투에 응용하기 시작하는 사건은 중세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해서 엄청난 전투력을 지닌 기사계급이 등장하여 유럽식 봉건제를 가능케 했다는 결론이었다.

등자의 등장으로 봉건제가 가능했다는 이야기는 창기병 훈련을 받으며 등자 없이 병기를 휘둘러 본 자신의 경험을 과장해 극적으로 표현한 내용이었다. 책의 주된 주제는 중세가 사실상 기술혁명기였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 특히 농민들의 삶이 극적으로 변했다는 내용이었다.

중세의 대표적인 혁명적 농업기술로 화이트는 밭을 깊이 팔 수 있을 뿐 아니라 흙을 갈아엎어 주는 수평 날을 가진 무거운 쟁기를 예로 든다. 그 무거운 쟁기를 사용하기 위해 에너지 요율을 높일 수 있는 각종 마구도 개발되었으며 또 삼포제라는, 소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농법도 가능해 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농업 생산성이 높아져 농민들의 삶의 수준이 상승했을 뿐 아니라 도시화라는 사회 변화가 가능했고, 또 그런 농법으로 인한 변화가 컸던 북쪽으로 유럽 문명의 중심이 이동하게 되었다고 본다.

화이트가 본 중세 기술혁명의 영역은 물론 등자와 같은 병기나 쟁기와 같은 농기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등자나 쟁기는 극적인 결과를 보여 줄 수 있는 사례였을 뿐이다. 좀 더 큰 차원의 중세 기술 변화를 화이트는 동력원에서 찾는다. 물레방아나 풍차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으며 그 동력원에서 생긴 힘을 전달하기 위한 크랭크나 중력을 이용하는 시계장치 등 사람들의 일이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많은 기술적 변화를 그는 중세의 문헌과 유물에서 찾아 보여준다.

1962년 그 책의 출판 후 곧바로 화이트에게 붙여진 이름이 ‘기술결정론자’였다. 등자가 봉건제를 낳고, 쟁기가 북유럽 문명의 흥기를 추동했으며, 풍차와 물레방아가 근대 사회의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는 주장으로 그의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4년 ‘기술결정론자’로 한껏 유명해지자, 화이트는 과학사학회에서 “기술이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삶의 중요한 여러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며 또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기도 하다”라는 요지의 강연을 통해 그런 명성이 온당치 않음을 지적했다. 그는 사상사학자로서, 인간의 아이디어와 생각을 우선시 하는 20세기 중반 사상사로서의 과학사가 정립되던 시기의 전형적인 과학사학자였던 것이다.

사실 그는 이미 1967년 ‘사이언스’지에 투고한 ‘생태계 위기의 역사적 기원’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통하여 자신을 기술결정론자라 부를 수 없음을 보여준 바 있었다. 자연을 크게 변형시키고 훼손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과학기술로 인해 가능해졌으며, 그 과학기술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이용하며 자연을 이용하려는 자세는 중세 유럽에서 분명히, 그리고 독특한 현상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 적극적인 자세는 서방 기독교가 성서를 읽는 독특하게 인간중심적인 자연관에 힘입은 바 크다는 주장이었다.

그 후 화이트는 기독교의 인간 중심적인 교리를 환경 위기의 주범으로 보았다고 여겨졌고, 많은 반론을 이끌어 낸 소위 ‘화이트 명제’는 화이트의 글을 바로 그런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화이트의 ‘생태계 위기의 역사적 기원’은, 그가 기술결정론자라기보다는 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상사학자임을 보여 주는 글이었다. 기술, 특히 쟁기나 기타 농사기술이 당시 거기에 있었지만, 그 기술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자연을 개발하는 도구로 이용하려는 노력은 당시 그 곳의 사회와 문화, 특히 당시 지배적이었던 종교문화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이었던 것이다.

근대 과학기술의 초석이 되는 자연을 향한 적극적인 자세가 중세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화이트의 시각은 유럽중심주의적 역사관의 전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박식한 연구물을 살펴보면 그가 일찍이 세계 문명권 사이의 활발한 교류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서 유럽 과학기술에 미친 인도, 말레이시아, 중국의 영향을 살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화이트의 관심의 초점은 근대 과학의 기원 자체가 아니었다. 기술을 보는 서방 기독교의 문화적 배경이었다. 그는 생태계 위기는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기보다는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할 문제라는 사상사학자로서의 시각을 보여 주고 있었으며, 더구나 그의 청중은 기독교인들, 특히 자신 주변의 기독교인들이었다.

화이트는 기술에 관심을 가지면서, 기술사란 과학 사상과 이론을 연구하는 과학사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튼이나 해스킨스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종교를 포함하는 문화가 만들어 내는 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본주의의 가치를 버리지 않았다. 중세 서구 기독교가 기술을 포용하는 바탕은 명상과 지적 활동만을 강조하는 동방교회와는 달리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서방교회의 문화적 가치였다고 말하면서도, 또 한 편 노동인을 단조로운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인간적인 배려로 그 기술의 발전이 가능했다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진술에서 어떤 독자들은 논리적 부정합을 감지한다. 또 많은 학자들이 등자나 쟁기의 역사적 탐구를 통해 화이트의 연구 내용의 약점이나 허점을 지적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화이트 자신은 언술에 일관성이 없다거나 세부적인 내용이 상상에 기대고 있다는 지적에 마음아파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논쟁을 야기하고 그 주제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해 주기를 바라면서 책을 펴내고 글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의 책을 관통하는 주제란 어떻게 서방 종교 문화 속의 사상이 기술을 통해 유럽 문명을 만들어 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태계 위기의 역사적 기원’을 통해서 다시 강조 되듯이 그는 또 근대 과학기술의 뿌리가 된 그 서방종교 문화가 보여 준 기술적 자세가 인류의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으로부터 문명을 움직이는 엄청난 기술의 힘을 읽을 수 있지만 동시에 기술의 사회 구성적 성격을 보게 된다.





소개도서: 린 화이트 주니어, 강일휴 옮김, <중세의 기술과 사회변화: 등자와 쟁기가 바꾼 유럽역사>,
             지식의 풍경, 2005

(3063)

뉴스레터 구독신청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