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 천문학자 이순지와 김담

독자적 역법과 자주적 천문학 체계 수립

우리나라 역대 왕조는 하늘의 현상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이는 천문학이 발전하는 바탕이 되었다. 신라시대에 지어진 첨성대는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천문학이 발달했음을 알려주는 지표이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하늘 현상에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중국으로부터 천문학이 도입된 삼국시대를 지나, 고려시대에는 천체 관측이 특히 발달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조선시대에 이르러 천문학이 발전하게 되었다. 조선 초기, 천문학의 기초를 닦은 데는 이순지와 김담이 있었다.

세종은 독자적 역법과 자주적 천문학 체계를 만들고자 했다. 이순지와 김담은 이 시기 가장 대표적인 천문학자이다. 사진은 세종때 만들어진 해시계 양부일구 ⓒ by Bernat / Wikipedia

세종은 독자적 역법과 자주적 천문학 체계를 만들고자 했다. 이순지와 김담은 이 시기 가장 대표적인 천문학자이다. 사진은 세종때 만들어진 해시계 양부일구 ⓒ by Bernat / Wikipedia

정평(靖平) 이순지(李純之)는 산학, 천문, 음양, 풍수 등에 능했다고 알려진다. 실제로 그는 한반도의 가운데가 북위 38도라는 것을 계산하여 보고한 이후, 세종의 신임을 받아 천문역산(天文曆算)의 전문가로 활약하게 되었다.

반신반의하던 세종은 중국에서 들여온 역서를 통해 이순지의 계산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이순지를 신뢰하였고, 1433년 조선은 이순지를 중심으로 조선의 천문역법을 정비하라는 명을 내린다.

그리고 마침내 이순지는 김담과 함께 1442년 <칠정산내편>(七政算內編)과 1444년 <칠정산외편>(七政算外編)의 편찬한다. 기원전 108년 한사군 설치 이후 한반도에 유입된 중국 역법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천체 운행을 계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이순지가 저술한 <천문류초>(天文類秒)는 조선 초기 천문학의 대표적인 저서로 꼽히기도 한다. 왜냐하면 중국 천문학과는 다른 체제로 서술하였고, 이를 통해 자주적인 조선 천문학의 체계를 세우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업적으로 이순지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올라와있으며 ‘명예로운 과학기술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조선 초 자주적 역법을 만들어 우리 천문학을 세계 수준으로 올려놓은 천문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순지와 함께 당대 가장 뛰어났던 김담

무송헌(撫松軒) 김담(金淡)은 1416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세종 17년이었던 1435년에 병과로 급제하면서 홍문관 정자로 임명된다. 이듬해 이순지가 간의대(簡儀臺)에서 천문을 측정하다가 모친상을 당하여 관측을 그만두게 되자, 그 일을 대신 맡게 되었다.

김담은 이순지와 함께 당대 가장 뛰어난 천문학자로 평가받는다. 천문과 관측 분야에 뛰어나 간의대로 발령 받았으며, 17세 세종의 영을 받아 이순지와 함께 달력 연구에 참여하였다. 이순지와 함께 해와 달의 기울음을 연구하였다.

이순지와 함께 <칠정산내편>, <칠정산외편>, <대통력일통궤>(大統曆日通軌), <태양통궤>(太陽通軌) 등 많은 천문역서를 교정, 편찬하기도 하였다. 이순지와 김담이 조선 초기 천문학의 기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김담은 이순지와 함께 조선 초기의 천문학 기틀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 사진은 문절공 김담의 과거급제 교지로, 그는 천문학과 지리학에 밝았다. ⓒ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 Wikipedia

김담은 이순지와 함께 조선 초기의 천문학 기틀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 사진은 문절공 김담의 과거급제 교지로, 그는 천문학과 지리학에 밝았다. ⓒ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 Wikipedia

운동하는 천체의 위치를 계산할 수 있어

이순지와 김담이 편찬한 <칠정산>(七政算)은 운동하는 천체의 위치를 계산하는 방법을 서술한 역서이다. △해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의 움직임을 계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칠정산내편>은 중국 천문역법과 산학 전통을 따르기 때문에 원주를 365.2575도로 보고 1도를 100분, 1분을 100초로 계산하였다. 반면 <칠정산외편>은 희랍과 아랍 천문학을 따라 각각 360도, 60분, 60초로 바꾸어 계산했다.

즉, <칠정산내편>은 원나라의 수시력을 한양의 위치에 맞게 수정한 것이고, <칠정산외편>은 아랍 천문학의 성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외편>의 경우, 수시력보다 더 정확할 뿐 아니라 오늘날의 수치와 비교했을 때 1초만 짧을 정도로 정확하다.

<칠정산내편>을 통해서는 한양을 기준으로 정확한 천문 계산이 가능했고, <칠정산외편>을 통해서는 발달된 아랍의 천문학을 우리 실정에 맞게 수용하여 당시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특히 <칠정산외편>이 완성되면서 조선의 역법은 완전히 정비되었다. 대통력을 ‘중국력’이라 불렀고, <칠정산외편>을 ‘본국력'(本國曆)이라고 불렀다. 오랫동안의 중국역법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독자적인 역법을 만들 수 있는 단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칠정산내편> 역시 수시력과 대통력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려 매우 정돈되고 체계적으로 편찬되어 있다. 두 역법을 완전히 소화하여 재정비한 자주적인 솜씨가 뚜렷한 역법으로 높이 평가될만하다.

독자적 역법과 자주적인 천문학 체계

조선 초기 이순지와 김담은 조선의 독자적 역법과 자주적인 천문학 체계를 세우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연산군 10년 처음으로 한글로 된 역서의 간행이 계획되고 번역을 하는 등 역서의 보급이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성종 대 이후 차츰 침체하기 시작한 조선의 천문학은 선조대에 이르러 임진왜란을 겪고 난 후 더욱 급격히 침체화되었다. 독자적 역법의 계산이 점점 어려워진 것은 예상된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순지와 김담의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조선 초에는 대개 문과에 합격한 사람이 각자의 의사에 따르거나 왕명에 따라 천문, 역산을 공부하고 연구하였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은 그 중에서도 조선 초 최대의 천문학자로 많은 저술을 남겼고, 이것이 조선 천문학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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