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제2차 세계대전 일본군의 풍선 폭탄

[밀리터리 과학상식] 세계 최초로 실전에 사용된 대륙간 전략 병기

일본군의 풍선 폭탄. 추락한 것을 미군이 재생하여 비행 실험 중인 모습이다. ⒸWikipedia

나름 제2차 세계대전사에 대해 잘 안다는 사람과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하와이를 제외한) 미국 본토를 폭격하여 미국인 사망자까지 발생시켰다고 말한다면 곧이들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내용은 엄연한 사실이다. 심지어 일본은 제대로 된 폭격기나 미사일 같은 것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고정익 항공기보다 더 먼저 실용화되었던 원시적인 항공기인 기구(氣球)를 사용했다. 일본은 미 본토 폭격에 쓰인 이 기구들을 후호병기(ふ号兵器), 또는 풍선폭탄(風船爆弾)으로 불렀다. 정말 원시적이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엄연히 세계 최초로 설계되어 실전에 사용된 대륙 간 전략 병기였다.

이 풍선 폭탄을 개발한 인물은 일본 육군 제9군 소속 제9육군기술연구소(통칭 노보리토 연구소)의 쿠사바 스에요시 소장과 타카다 테이지 소좌였다. 이들은 제트 기류가 동쪽으로만 흐르는 데다가 겨울철에는 매우 빨라진다는 데서 이 풍선 폭탄을 착안하게 되었다. 고도 9100m 이상으로 기구를 띄워보내면 고공의 제트 기류를 이용해, 미국까지의 8000km 거리를 3일 만에 주파할 수 있었다. 일본군은 이렇게 날려보낸 풍선 폭탄으로 미국 본토의 도시와 삼림을 폭격할 생각이었다.

풍선 폭탄의 구조는 간단하기 짝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폭탄과 자체 고도 측정 및 유지 장치를 매단 수소 기구에 불과했다. 기구 기낭은 뽕나무 종이를 곤약으로 접합해서 만들어진 원시적인 것이었다. 기낭의 직경은 약 10m, 내부 용적은 540㎥에 달했다.

이 기구는 자체 기압계 및 연동 고도계를 이용해 자신의 고도를 측정, 유지했다. 기온이 낮아져 수소의 양력 효과가 떨어지는 야간에 고도가 9100m(제트 기류가 흐르는 최소 고도) 이하로 내려가면 자동적으로 밸러스트(무게추)를 내버려 고도를 높인다. 기온이 높아져 수소의 양력 효과가 높아지는 주간에 고도가 1만 2000m 이상으로 올라가거나 내부 기압이 너무 높아지면 자동적으로 배출구가 열려 수소를 버려 고도를 낮추는 식이었다.

제트 기류의 속도상 일본을 출발한지 3일이 지나면 8000km 떨어진 미국 본토 상공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면 시한장치가 작동되어 모든 밸러스트를 버리고, 동시에 싣고 있던 폭탄을 투하한다. 이후 84분이 지나면 기구 자체도 내장한 시한폭탄에 의해 자폭한다는 구조였다. 워낙 구조와 재료가 간단했기 때문에 숙련공이나 첨단 조립 설비도 필요 없었다. 여학생들이 극장이나 체육관, 학교 강당 같은 곳에서 조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군은 풍선 폭탄 총 9300여 발을 1944년 11월 3일부터 1945년 4월까지 미국으로 날려보냈다. 이 풍선 폭탄들은 태평양 한복판의 하와이 주는 물론,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등 미국 서부의 주, 심지어는 텍사스 등 미국 중부에서까지 총 20여 개 주에서 목격되었다. 심지어는 미국의 이웃나라인 캐나다와 멕시코에서도 이 풍선 폭탄이 목격되었다.

1945년 미국 캔자스 주 비글로우에서 발견된 풍선 폭탄의 잔해. ⒸWikipedia

전과는 형편없었지만 생화학전에 사용될 잠재력도

풍선 폭탄의 실질적인 전과는 의외로 실망스러웠다. 사실 일본군도 이륙시킨 풍선 폭탄의 10% 정도(900여 발)만이 미 본토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긴 했다. 그러나 실제로 미 본토에 도달한 풍선 폭탄은 총수의 3% 정도에 불과한 300여 발 정도였다. 일단 낙하했다고 해도 화재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현지는 겨울이라 눈이 많이 쌓여 있었고, 따라서 소이탄의 효과가 그리 잘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불발된 풍선 폭탄의 잔해를 처음 접한 미국인들은 그 정체를 알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개중에는 풍선 폭탄의 잔해를 해체해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풍선 폭탄의 공격으로 인해 발생한 유일한 전사자(?)도 이 과정에서 발생했다. 1945년 5월 5일 남 오리곤의 기어하트 산에 추락한 풍선 폭탄의 잔해를 민간인 6명이 잘못 건드렸다가 탑재된 폭탄이 폭발, 전원이 사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또한 이들 풍선 폭탄으로 인해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파이어플라이 프로젝트’라는 작전명 하에 2700명의 군 병력과 다수의 소방 항공기가 배치되었다. 화재 진압 작전 중 이 중 1명이 죽고 22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이 괴상한 기구들의 정체를 알아챈 미국 정부와 군은 난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일본이 이 기구에 폭탄이 아닌 생화학 작용제를 탑재, 미국 본토에 생화학전을 본격 시도한다면 큰일이 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미군은 적극적으로 이 풍선 폭탄의 요격에 나섰다. 그러나 당시 항공기가 도달하기 힘든 고공을 비행했던 탓에, 미국 전투기가 격추한 풍선 폭탄의 수는 20발이 채 되지 않았다. 실제로 일본군은 이 풍선 폭탄에 탄저균과 페스트균, 천연두균 등을 탑재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했다. 그러나 이 안은 히로히토 천황의 명령으로 실행되지 않고 기각되었다.

앞서도 잠시 밝혔듯이 일본의 풍선 폭탄은 제트 기류가 센 겨울에만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전과도 미약했기 때문에 1945년 4월을 기해 풍선 폭탄 공격은 중지되었다. 일본의 수소 공장이 미군의 폭격으로 격파당해 수소를 조달하기 어려웠던 점도 원인이었다. 그러고 나서 5개월 후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린다.

이렇게 풍선 폭탄의 전설은 막을 내렸지만, 종전 후에도 오랫동안 북미 대륙 곳곳에서 풍선 폭탄의 잔해가 발견되었다. 작년인 2019년에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맥브라이드에서 풍선 폭탄이 발견되었다. 미국의 쿠스 박물관, 캐나다 전쟁박물관 등에도 이 풍선 폭탄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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