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정신의학과 예술의 만남 ‘리빙 뮤지엄’

[전승일의 과학융합예술] 전승일의 과학융합예술

화가이자 미술치료학자인 이디스 크레이머(Edith Kramer)는 ‘미술 자체가 치료적(Art as Therapy)’이라고 강조하며, 정신질환자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통해 변화와 감정적 보상,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즉, 미술치료자의 역할은 환자의 작품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승화와 통합 과정을 돕는 것이라고 하였다.

정신질환자의 심리적 현실과 내면은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實在) 하는 세계이다. 정신질환자의 몰입과 승화의 결과로 표현되는 시각 이미지들은 무의식을 상징화하고, 자율적인 창조 기능을 갖는다.

리빙 뮤지엄 Ⓒ 크리드무어 정신의학센터

리빙 뮤지엄(Living Museum)은 1984년 미국 뉴욕 주립정신병원 크리드무어 정신의학센터(Creedmoor Psychiatric Center)에 보렉 그레친스키(Bolek Greczynski)와 조나스 매트론(Janos Matron) 박사에 의해 최초로 설립된 예술 스튜디오로서,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환자들이 자유롭게 미술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다.

뉴욕 리빙 뮤지엄은 병원의 치료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환자들이 스스로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예술 공동체로서, 환자들은 미술 표현과 창작 활동에 대한 특별한 간섭 없이 회화, 입체조형, 행위예술, 설치미술 등 다양한 미술적 표현을 자유롭게 경험하고 표출할 수 있다.

조나스 매트론 박사는 “모든 정신질환 환자들은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질환 환자들이 예술가로 발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예술적 창의성과 정신질환 사이에 깊은 상관성이 있음을 강조하며, 리빙 뮤지엄이 환자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역할과 가능성을 제시한다.

리빙 뮤지엄  Ⓒ 크리드무어 정신의학센터

뉴욕의 리빙 뮤지엄은 탁월한 임상적 효과와 예술적 가능성을 입증받아 네덜란드와 스위스에 잇따라 설립되었다. 정신질환자의 트라우마는 사회적 상처와 고통이다. 치유되지 못한 트라우마는 사회적으로 번져나간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일상을 찾기 위해서는 환자들이 사회 공동체와 연결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리빙 뮤지엄은 그 과정에서 발현되는 예술의 치유적 가능성과 효과를 각별히 주목한다.

Dhotel Nuance d’abricot Ⓒ Jean Dubuffet

프랑스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는 독일의 정신과 의사이자 미술사학자인 한스 프린츠호른(Hans Prinzhorn, 1886~1933)이 저술한 정신질환자들이 그린 그림에 대한 연구 서적 ‘정신질환자들의 조형작업(원제: Bildnerei der Geisteskranken, 1922)’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장 뒤뷔페는 1940년대 초반부터 아마추어 화가들이나 어린이가 그린 그림, 그리고 정신질환 환자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미술 창작 작품을 조사하였고, 이를 ‘아르 브뤼트(Art Brut)’라고 불렀다. ‘Brut’는 ‘가공되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또는 ‘다듬지 않은’ 등의 뜻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장 뒤뷔페는 어린이, 정신질환자,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의 미술 작품들로 이루어진 전시회를 연이어 개최하였고, 이러한 미술을 장려하기 위해 ‘아르 브뤼트 컬렉션’을 설립했으며, 정기 간행물 ‘L’Art Brut’를 출판하기도 했다.

예술 평론가인 로저 카디널(Roger Cardinal)은 ‘아르 브뤼트’를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라고 불렀다. 아돌프 뵐플리(Adolf Wolfli), 알로이즈 코르바스(Aloise Corbaz), 안나 제만코바(Anna Zemankova), 카를로 치넬리(Carlo Zinelli), 브룩스 요만스(Brooks Yeomans), 빌렘 판 헨크(Willem van Genk), 하인리히 안톤 뮐러(Heinrich Anton Muller) 등은 ‘아웃사이더 아트’의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아르 브뤼트 전문 미술관으로는 스위스 로잔에 ‘Collection de l’Art Brut’가 운영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용인시에 2015년 ‘art museum VERI’가 설립 운영되고 있다.

리빙 뮤지엄 코리아 Ⓒ 용인정신병원 홈페이지 화면 캡처

우리나라는 2016년에 아시아 최초로, 세계에서는 네 번째로 용인정신병원에 리빙 뮤지엄 코리아가 만들어졌다. 이곳은 정신질환자의 정체성이 치유자 또는 예술가로 변화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환자들이 느끼는 직관이나 감정을 최대한 자유롭게 표현하게 하여 잠재적인 예술가로 인정받고 새로운 정체성과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즉, 리빙 뮤지엄 코리아는 정신질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환자들이 새로운 정체성을 찾도록 하는 환경을 제공한다. 리빙 뮤지엄 코리아 김성수 디렉터(정신과 전문의)는 예술의 창조성, 독창성, 치유성, 자기효능감, 경험 확장성을 강조하며 “리빙 뮤지엄 코리아는 환자들의 탈원화(脫院化)와 사회로의 복귀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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