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과학의 결합, 새 산업의 지평 연다

융복합 연구를 통해 ‘과거서 찾은 미래’

‘전통문화의 미래를 만드는 과학기술 – 과거에서 찾은 미래’. 9일 오후 국립민속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2017 과학기술‧전통문화융합연구포럼’이 내세운 이날의 주제다. 전통문화를 현대 과학기술로 연구하여 새 산업의 지평을 연다는 전통문화융합연구사업은 지난 해 10월 발대식을 가졌다.

이 분야 연구개발 참여자 200여명은 이날 연구개발사업의 진행 단계를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다시 짚어보는 기회를 가졌다.

9일 오후 민속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2017 과학기술‧전통문화융합연구포럼’의 토론에서 전통문화의 현대 과학기술과의 융복합 연구를 두고 문제점과 나아갈 방안에 여러 의견이 제시됐다.

9일 오후 민속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2017 과학기술‧전통문화융합연구포럼’의 토론에서 전통문화의 현대 과학기술과의 융복합 연구를 두고 문제점과 나아갈 방안에 여러 의견이 제시됐다. ⓒ 이순재 프리랜서

전통문화융합연구개발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서 관심을 끌만한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 과학적 연구와 거리가 먼 전통문화는 그냥 우리 주변에서 쓰일 뿐 산업화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경우도 지적됐다.

이날 행사는 미래창부과학부 등 3개 기관이 주최하고, KIST 전통르네상스지원단(단장 홍경태) 등 3개 기관이 주관해서 열렸다.

산업화를 앞둔 새로운 연구성과들

이날 ‘토론’에서 남기달 박사(KIST 미래융합기술연구본부)는 자신의 연구개발 사례를 통해 전통문화에 현대과학의 융합연구가 이루어지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구개발사업이 더욱 확대 발전해나간다는 점을 설명했다.

남 박사는 “조선시대 기록에만 남아 있고 제조 명맥이 끊겼던 명유(明油‧생 들기름을 무명석과 백반을 넣고 끓여 만든 기름)를 재현했을 때 처음에는 재현으로 연구가 끝나는 줄 알았다. 명유가 복원됐다니까 그동안 들기름을 그대로 쓰다가 명유를 쓰겠다는 수요가 늘어나며 산업화 요구가 뒤따랐다. 이에 발맞춰 명유를 현대과학기술로 분석해 소재가 전혀 다른 친환경 하이브리드 명유를 개발해냈다. 빨리 마르고 도막이 경도가 높아지는 등 물성이 종래의 명유보다 좋은 점이 많다. 할 일이 점점 더 많아졌고, 연구 지원도 더 많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고 말했다.

KIST 미래융합기술연구본부 연구팀이 재현한 명유와 하이브리드 명유. 전통르네상스지원단 제공 ⓒ ScienceTimes

KIST 미래융합기술연구본부 연구팀이 재현한 명유와 하이브리드 명유. ⓒ 전통르네상스지원단 제공

명유는 단청의 마감재로 쓰이는 기름으로 단청에 칠하면 발수제 기능을 발휘해 물기를 없애주고 색을 보존하면서 벌레를 물리쳐 목재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 명유를 친환경 도료 마감재로 쓰면 실내공기오염의 주범인 휘발성유기물질(VOC)이 발생하지 않는 실내용 천연 발수 코팅제로 사용할 수 있다.

또 과일이나 햄버거를 싸는 종이, 생선초밥 밑에 까는 종이 등의 친환경 코팅제로도 활용할 수 있어 다양하게 산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증류주와 한국형 증류기’를 발표한 한국식품연구원 김재호 우리술연구팀장은 “전통 소줏고리의 한계를 개선한 새로운 한국형 증류기의 개발이 시도되고 있다”며 “대량 증류 공정의 핵심 설비인 한국형 증류기의 개발을 통해 전통소주의 산업화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전통 소줏고리는 직화 방식으로 △화점이 불균일해 발효액의 온도가 전 구간 균일하지 않고 △화점의 높은 온도로 인해 발효액 열화가 일어나, 탄내 성분 등이 생성되어 술의 품질을 떨어뜨리며 △열전도율이 낮은 재료를 사용하여 열교환 효율과 냉각 효과가 낮아 에너지 손실이 크다는 단점을 있다는 지적이다. 이것을 △증류에너지 측정 △이론단수 측정 △환류비 계산 △소줏고리의 재질 및 증류 적합성 평가 등 과학적 원리 규명을 통해 새로운 한국형 증류기가 원형이 개발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인문학적 심층조사와 분석이 선행돼야

이날 ‘전통문화와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해 발표한 함한희 교수(전북대 무형문화재연구소장‧전통문화과학기술협의회 의장)는 “전통문화는 4차 산업혁명의 소스 데이터(source data)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전통문화산업의 현황과 발전 방향을 짚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함 교수는 소스 데이터로서의 전통문화 사례로 세계적인 주방용 칼을 생산하는 독일의 ‘헹켈’ 출발지인 졸링겐 대장장이 마을과 일본의 칼의 명산지인 기후현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함 교수는 또 “한지는 중성지여서 산성지인 서양 종이에 비해 장기보전이 가능한 장점이 있어서 중요문서의 기록 보관을 비롯해 통기성, 감촉, 흡수성, 방음성, 방한성, 방온성 등에도 뛰어난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지 제조 업체는 1996년 64개 업체에서 2016년 10월 현재 29개 업체로 감소할 만큼 한지마을 및 장인공동체가 눈에 띄게 소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일본 종이 와시(和紙)의 품질관리기술을 향상시키는 연구를 통해 절연지, 문화재보수지, 특수필터, 바이오지 등 고도의 과학기술이 필요한 새 기능 제품으로 산업기반을 넓혀가고 있고, 와시 생산 마을이나 장인공동체가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함 교수는 거문고 악기장 최동식이 울림통을 한쪽 방향으로 기울여 깎는 작업에서 연주자의 연주 습성을 고려한 나름대로 이유가 있음을 예로 들면서 미세하면서도 중요한 사실을 장인과의 장기적인 교류를 통해 확인해야 전통지식의 속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시세계의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인문학적 심층조사와 분석이 선행되어야 과학적인 규명이 필요한 전통지식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9일 과학기술‧전통문화융합연구포럼이 열린 국립민속박물관 강당 입구 홀에서는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됐다.  ⓒ 이순재 프리랜서

9일 과학기술‧전통문화융합연구포럼이 열린 국립민속박물관 강당 입구 홀에서는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됐다. ⓒ 이순재 프리랜서

‘전통문화산업의 현실과 미래를 위한 전망’을 발표한 유동환 교수(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는 “전통문화산업의 시장 규모는 2010년 약 25조원에서 연 5.9% 성장하여 2015년에는 33조원으로 성장했다는 추정이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전통문화의 대중화 측면에서 살펴보면 실제로는 시장이 죽어가고 있다는 게 현실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문제점을 국가 승인 통계가 없다는데서 찾았다. 그는 “국가승인 통계의 상설 조사와 함께 산업적 접근과 문화적 접근은 실태조사로부터 출발해야 하고, 핵심 정책 및 사업 수립 시 필수 정보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온돌’은 외국서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돼

‘온돌, 전통문화와 과학기술’을 발표한 김광우 교수(서울대 건축학과)는 “온돌은 3000년 역사를 가진 우리 고유의 복사 난방 시스템이지만 산업화는 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며 “외국의 경우 복사 난방뿐만 아니라 복사 냉방 기술도 개발되어 복사 냉난방 시스템이 다양한 시설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쓰이고 있다”고 밝혔다.

복사 냉난방 시스템 시장 규모는 유럽과 미국에서 2015년 추정 24억 유로(약 3조24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시장이 급속하게 커지고 있다는 유럽의 관련 회사 보고서도 나왔다.

그러나 이 분야는 국내에서는 산업이 아니고, 관련 회사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만큼 과학적인 산업화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서울 상암동 에너지드림센터나 인천공항 제2터미널처럼 설계부터 시공까지 모두 외국 회사들이 복사 냉난방 시스템 설치를 맡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첨단과학기술과 결합한 옻칠은 첨단소재로

‘국내외 옻칠 연구 동향’을 발표한 한호규 박사(KIST 전통문화과학기술연구단장)는 “옻칠은 단순한 도료에 그치지 않고, 산소나 수분을 차폐하는 ‘친환경 배리어 필름’으로 식품, 의약품 포장재부터 디스플레이 소자까지 다양한 제품군에 적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옻칠은 또 전도성 잉크나 전도성 접착제로서 인쇄 유연 전자소자로 이용할 수 있어 RFID 태그, NFC안테나, LED, 유연 회로기판(FPVCB), 3D 전자부품에 활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옻은 접착력이 강할 뿐 아니라 낮은 온도에서 굳어지고 유연하다는 장점이 있으면서 높은 전도도를 보여 하이테크 신소재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강연과 연구 발표 중간에 ‘악기의 제왕’ 파이프오르간과 한국 전통 악기가 어우러져 우리 전통 아악 ‘수제천(壽齊天)’ 연주가 있었다. 동서양 악기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음악적 가치와 가능성을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연주회가 마련됐다. 이날 연주에 동원된 파이프오르간(사진 중앙)은 ‘바람피리오르겔’이란 이름으로 1997년 독일에서 마이스터에 오른 홍성훈 오르겔바우마이스터가 제작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파이프오르간이다.  ⓒ 성하운

이날 강연과 연구 발표 중간에 ‘악기의 제왕’ 파이프오르간과 한국 전통 악기가 어우러져 우리 전통 아악 ‘수제천(壽齊天)’ 연주가 있었다. 동서양 악기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음악적 가치와 가능성을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연주회가 마련됐다. 이날 연주에 동원된 파이프오르간(사진 중앙)은 ‘바람피리오르겔’이란 이름으로 1997년 독일에서 마이스터에 오른 홍성훈 오르겔바우마이스터가 제작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파이프오르간이다. ⓒ 성하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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