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이 창궐한 도시, 인간과 쥐의 차이점은?

[허구에서 바라본 전염병] (3)편혜영 '재와 빨강'

‘쥐’ 때문이다. 모든 일이 한 마리의 쥐를 잡아 죽이면서 생긴 일이었다. 그가 고속 승진한 것도, 타국에서 하수구 쥐처럼 살던 그가 다시 인간처럼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것도 모두 쥐 때문이었다.

편혜영 작가의 ‘재와 빨강(도서출판 창비)’이 그리는 소설 속 세상은 온통 회색 잿더미와 시뻘건 피로 난무한다.

인간이 쥐보다 존엄한 존재일까. 편혜영 작가 ‘재와 빨강’은 비현실적인 가상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인간존재의 의미로 되살렸다. ⓒ 도서출판 창비

전염병이 창궐한 낯선 타국에서 평범한 직장인이 어떻게 삶의 밑바닥까지 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소설은 과학이라는 얼굴을 한 첨단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섬뜩한 경고음을 낸다.

쥐를 잡는 사내, 쥐 때문에 인생이 바뀐 사내

소설 ‘재와 빨강’의 주인공인 ‘그’는 방역업체의 약품 개발원이다. 개발이라고는 하지만 자체적으로 연구하여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본사에서 개발된 약품을 가져다 국내 품질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안정성 실험을 하고 시판을 위한 기획을 하는 게 다였다.

본사는 ‘C’ 국에 있다. 그는 최근 본사 C 국의 차기 지사장 자리를 염두에 두고 파견됐다. 그가 차기 지사장 후보라는 걸출한 자리를 꿰차게 된 것은 직원들을 휘어잡는 리더십도, 유창한 C 국 언어도, 탁월한 업무 능력 때문도 아니었다. 지사장의 집들이 자리에 나타난 한 마리의 회색 쥐 때문이었다.

갈 곳을 잃은 한 마리의 쥐를 그가 잡겠다고 생각한 건 특별한 영웅심이나 지사장에게 잘 보이겠다는 공명심 때문은 아니었다. 살충제든 덫이든 회사 업무의 막내 뻘인 그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가방을 던져 쥐를 잡아 죽이지 않았어도 괜찮았다. 재빠른 쥐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게 뻔했다. 하지만 불행인지 행운인지 그가 던진 가방 밑에 정통으로 깔린 쥐는 터져 나온 내장과 잿빛 털, 분홍빛 살점과 뒤엉켜 흩어졌고 그 뒤처리 또한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날 일은 그에게 행운이었다. 차기 지사장이 될 재목으로 파견 대상자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파견 대상자로 뽑힌 그가 기대에 차 자신을 뽑은 이유를 물어봤을 때 지사장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쥐 때문이야.”

지사장은 그를 자신이 보기에 가장 쥐를 잘 잡는 사내라며 치켜세웠다. 지사장은 이어 “그때 내장이 덜렁거리는 쥐의 꼬리를 잡아 쓰레기통에 넣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는 감상을 대며 그의 발탁 요인을 설명했다.

이처럼 끝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는 ‘그’에게 ‘쥐’는 특별하다. ‘그’의 모든 인생은 어느새 ‘쥐’로 시작해 ‘쥐’로 끝난다.

작가는 쥐를 소탕할 수 없는 종이라고 단언한다. 쥐는 인간이 있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 게티이미지

인간이 쥐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그가 파견된 C 국은 전염병이 돌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내려선 그가 처음 본 안내문과 표지판도 전염병의 위험과 안전 수칙을 알리는 것이었다. 전염병은 감기 증세와 비슷했다. 감염자들은 기침을 했고 발열이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병원균이 신경계를 침범하면서 의식은 몽롱해지고 환각 증상이 나타나다가 결국 피를 토하고 온몸에 고름이 맺히고 몸을 떨다가 죽는 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가 C 국에 파견된 후 파견 직원들에게 제공되던 아파트에서 나와 부랑자 신세가 된 것은 그의 아내가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였다.

출국 전 아파트 안의 개를 맡기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자신의 전처의 남편이었던 ‘유진’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개를 어디에든 풀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의 부탁대로 아파트에 간 ‘유진’은 살해된 전처와 개의 소식을 전했고 그는 직원 숙소로 들이닥친 경찰인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들을 피해 창문을 뛰어내렸다.

순식간에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어 도망친 그는 돈도 휴대전화도 없는 신세였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공원의 부랑자들처럼 벤치에서 자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옷과 신발을 신고 음식쓰레기를 주워 먹는 일이었다. 쥐와 같은 삶이었다. 실상 쥐보다 못한 삶이었다.

그가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수구의 쥐를 잡아 죽이는 일이었다. 그는 인간에게 유해한 쥐를 잡아 죽이는 행위를 함으로써 쥐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이 아직 인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염병이 돌아도 일상은 계속된다. 소설 속 상황도, 현실도 마찬가지다. ⓒ게티이미지

높은 감염률과 높아가는 사망률, 확보되지 않는 백신 소식에도 불구하고 일상은 돌아갔다. C 국의 사람들은 여전히 출근하고 학교에 등교했으며 물건을 팔았다. 전염병이 도는 시기라고 해도 배워야 할 것이 있었으며 진학해야 할 학교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 다녀야 할 학교와 학원이 있었다.

우리 방역당국도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새로운 생활 방역 지침을 발표했다. 발열 및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은 행사 참석, 시설 방문, 출근, 등교 등을 해서는 안 된다.

재택근무, 온라인 등교, 사회적 거리 지키기 등 이전과는 다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시대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 선포된 셈이다.

소설에서도 동일한 방역지침이 내려진다. 그는 자신이 C 국의 파견 온 사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본사 직원 ‘몰’을 찾아 회사까지 잠입하는 데 성공하지만 몰 또한 전염병에 감염되어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염병이 창궐한 C 국은 이미 증상이 있는 직원은 출근을 하지 못하도록 했고 몰은 감염자로 확진되고 난 후 그대로 모든 업무가 중단됐다. 감염된 직원은 회사에서 사라졌다.

끝내 이름을 알 수 없는 주인공인 ‘그’는 전처를 살해한 일이나 공원의 부랑자를 소각장에 던진 일, 더 많은 수의 쥐꼬리를 내밀며 돈을 더 받으려 했던 일을 힐난하던 여자를 죽인 일 등을 자신의 기억 속에 묻는다. 그리고 쥐를 소탕하기 위해 다시 일어선다. 전염병인지 감기인지 알 수 없는 희미한 기침과 함께.

그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쥐를 잡아 죽이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돈을 벌고 인간의 우월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정말 쥐보다 나은 존재일까. 인간이 쥐보다 더 존엄하다는 전제가 정말 사실일까.

작가는 암울한 전염병 속 도시에서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있는 쥐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에게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해 진지한 물음표를 던진다.

(815)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