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시대, 인간이 금수와 다른 이유

[허구에서 바라본 전염병] (7) 장 지오노 원작 ‘지붕 위의 기병’

1832년 프랑스 액상 프로방스(Aix-en-Provence). 바깥에서는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괴한들이 한 부부의 집에 들이닥쳐 여자를 때리고 남자는 납치한다.

이들은 납치한 이들을 강가로 데려가 총으로 살해한다. 총성은 불꽃놀이에 묻힌다. 괴한들의 정체는 오스트리아의 비밀경찰들. 프랑스 인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탈리아인들을 색출해 죽이고 있다.

지난 1996년도에 개봉한 영화 ‘지붕 위의 기병(The Horseman on the Roof, 1995)’은 이탈리아 기병 대령 앙젤로가 콜레라가 발생한 프랑스를 거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전염병은 국경도, 이념도 가리지 않았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생과 사’에만 관여했다.

거대한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 전염병보다 무서워

1951년 프랑스 문학계의 거장 장 지오노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지붕 위의 기병’. ⓒ Miramax Films

영화 ‘지붕 위의 기병’은 프랑스의 거장 장 지오노(Jean giono)의 동명의 소설 ‘지붕 위의 기병(Le Hussard sur le Toit)’을 원작으로 장 폴 라프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완성했다.

장 지오노가 1951년 출간한 ‘지붕 위의 기병’은 역병이 도는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선’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콜레라’라는 역병을 극의 갈등요인으로 등장시킨다. 자신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젊음과 생명을 바치는 순고한 기병 대령 앙젤로와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개척하고자 하는 당찬 여인 폴린 또한 전염병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는 생명체에 불과하다.

작가는 역병 속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듯하다. 이들이 결국 전염병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사람이 살면서 지켜야 할 신념과 도리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탁월한 절제와 도덕성, 신념을 가진 앙젤로(오른쪽)라는 인간 캐릭터가 돋보인다. ⓒ Miramax Films

특히 극 중 앙젤로는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탁월한 인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역병으로 인해 거대한 광기가 지배하는 도시 속에서 끝까지 절제 의식을 잃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해나간다.

극의 배경은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직후이다. 앙젤로는 조국인 이탈리아 독립을 위해 힘쓰는 25세의 기병 대령이다. 그는 오스트리아 비밀경찰에 쫓기며 프랑스 남부지방까지 도망쳐왔다.

이곳은 콜레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집단 광기에 사로잡혀 전염병이라는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들은 이방인이 나타나 샘에 독을 타고 그 독을 먹고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앙젤로 또한 독을 탄 이방인으로 몰려 시민들에게 쫓기다 지붕 위로 도망을 쳤고 계속 지붕을 이용해 쉴 곳을 찾아다녔다. 제목 ‘지붕 위의 기병’은 앙젤로가 지붕 위로 도망쳤을 때를 가리킨다.

국경도 이념도 사람도 가리지 않는 전염병

지붕 위로 도망을 치다 비를 피해 숨어 들어온 집에서 미모의 후작 부인 폴린과 처음 만난 앙젤로. 그는 이상하다고 생각될 만큼 매우 예의 바른 청년이었다. 앙젤로는 폴린의 식사 초대에 응하며 자신의 더러워진 몸차림을 부끄러워했다. 또한 허겁지겁 먹느라 소리를 내서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불가항력에 놓인 역병 속에서도 인간의 탐욕으로 지속되는 전쟁을 비웃는다. ⓒ Miramax Films

그의 태도에 호감을 가진 폴린. 하지만 이들은 전염병이 심해지면서 군대가 시민들을 마을에서 철수시키는 과정에서 하루 만에 이별을 하게 된다.

이후 영화는 앙젤로가 군자금을 프랑스에 전달하기 위해 떠나던 중 남편을 찾아 떠난 폴린과 재회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들은 의기투합해 전염병이 도는 도시를 탈출한다.

당시 프로방스 지방을 거쳐 유럽을 덮친 역병은 ‘콜레라’였다. 콜레라는 비브리오 콜레라균에 의한 급성 세균성 장내감염증으로 구토와 함께 체액 및 염분이 손실되는 수인성 전염병이다. 오염된 식수와 음식물, 어패류 등을 먹은 후 감염된다.

콜레라는 감염된 환자의 배설물을 통해 전파되기 때문에 환자가 발생하면 철저한 격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1830년대 당시에는 이러한 의료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전염병에 무지한 사람들은 시체들을 마차 수레에 마구잡이로 담아 옮겼다. 운반하는 사람도, 이를 지키는 군인들도 맨손으로 시체를 만지고 옮기고 사람들을 검열했다.

영화에서는 콜레라로 죽은 시체들이 거리와 집 안에 쌓여 까마귀들이 시체를 먹이 삼아 떼를 지어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까마귀들은 이미 새가 아니었다. 사람을 무서워하며 피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사람은 그저 먹이일 뿐이었다.

산 사람을 공격하는 까마귀 떼, 콜레라가 덮친 마을의 살풍경이다. ⓒ Miramax Films

감독은 콜레라가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었는지 생생하게 그린다. 전염병이 더욱 심각하게 번지자 사람들은 미쳐 날뛰었다. 누가 전염병에 걸렸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역병이 돈 지역은 사람들을 가두고 전염병 환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군대가 동원됐다.

역병이 지나가는 지역은 고립되었고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전염병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앙젤로를 쫓던 비밀경찰도 콜레라에 죽었다. 역병은 고향땅으로 돌아온 폴린에게도 들이닥쳤다.

헌신적인 앙젤로의 간호로 콜레라를 극복한 폴린. 이들은 사랑을 느끼면서도 결국 서로의 자리를 찾아간다. 자신의 사랑을 절제하고 떠난 앙젤로의 태도는 가장 더럽고 처참한 역병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금수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인간의 신의, 예의, 도덕성을 지켰다.

188년 전과 같은 새로운 전염병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작품은 그 어떤 처참한 역병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다는 메시지로 다가와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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