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향군인병으로 알려진 레지오넬라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50)

우리나라도 최근에 레지오넬라증(legionellosis) 환자들이 많이 생긴다. 질병관리본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벌써 환자가 176명이나 생겼다. 2018년 상반기의 141명, 2017년 상반기의 70명인 점을 비교해보면 환자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45명의 환자가 생긴 2015년부터 발병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레지오넬라증은 50개의 균이 속하는 레지오넬라균속(Legionella spp.)에 속하는 세균종들이 일으키는 감염병으로 대부분 레지오넬라 뉴모필라(L. pneumophila)가 병원균이다. 레지오넬라증은 폐렴형과 독감형으로 나뉘는데, 독감형은 ‘폰티악 열(Pontiac fever)’로, 폐렴형은 ‘재향군인병(Legionnaire’s disease)’으로 알려져 있다.

폰티악 열은 미국 미시건 주의 디트로이트에 있는 폰티악에서 처음 발병했다. 이곳은 제너럴모터스(GM) 자동차 공장이 있는 곳으로 GM 브랜드인 폰티악도 이 도시의 이름에서 따왔다.

재향군인병이란 이름은 이병에 처음 걸린 집단의 이름에서 따왔다. 레지오넬라증이라 하면 보통은 재향군인병을 뜻한다. 도대체 재향군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길래 이 이름이 붙었을까?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벨뷰스트래퍼드 호텔(the Bellevue-Stratford Hotel)에서 미국 재향군인협회(The American Legion)의 총회(convention)가 열린 것은 1976년 7월 21일이었다. 그 해는 미국 독립 200주년이던 해였고, 독립을 기념하는 뜻깊은 대회가 독립 선언의 고향인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것이다. 4400명이 넘는 회원과 그 가족들이 총회에 참석해 성대한 총회가 치러졌다.

레지오넬라증의 고향인 벨뷰스트래퍼드 호텔.

레지오넬라증의 고향인 벨뷰스트래퍼드 호텔.
ⓒ 위키백과

하지만 총회 기간 중 뜻밖의 불상사가 발생했다. 일부 회원들이 고열과 기침을 동반한 폐렴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령의 재향군인들이 여행 중에 컨디션 난조로 폐렴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총회가 막을 내리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환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총회 개막 후로부터 2주가 되는 8월 3일까지 재향군인회원 149명이 같은 증상을 보였다. 최종적으로는 환자 211명이 발생했으며, 그중 34명이 사망했다.

보건당국은 처음에는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총회가 끝나고 재향군인회원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버렸기 때문에 집단 발병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중에 집단 발병으로 확인이 된 후에도 호텔에서 먹은 음식물 속에 든 독소가 원인인지, 공기 중에 떠도는 병원균 때문에 생긴 폐렴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환경적인 요인도 발견하지 못했고, 환자들에게서 얻은 가검물에서도 특별한 병원균을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정체 모를 병에 걸린 환자들의 가검물이 든 배양접시에는 ‘재향군인병’이라는 라벨만 붙였을 뿐이다.

6개월이 지나서야, 병원체의 신상이 공개되었다. 1977년 1월,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재향군인병’을 일으킨 병원균이 매우 특이한 세균이며 특이한 배양 환경에서만 자라는 균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병원균은 호텔이나 대형 건물의 냉각수탑이나 에어컨, 샤워기, 수도꼭지, 분무기 속에 흔히 있는 균이었고, 에어로졸 형태로 공기 중을 떠돌다가 사람이 들이마시면 폐로 들어와 폐렴을 일으켰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치사율이 20%에 이르렀다.

몇 년 후 이 미생물의 이름은 ‘레지오넬라 뉴모필라(Legionella pneumophila)’로 정해진다. 레지오넬라(Legionella)는 이병에 처음 걸린 미국재향군인협회 ‘American Legion’에서, 뉴모필라는 ‘공기(pneumo)’를 ‘좋아한다(phila)’는 뜻이다.

대부분의 인간 레지오넬라증은 레지오넬라 뉴모필라가 원인균이다. 그러므로 레지오넬로시스는 재향군인병의 동의어로 쓴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레지오넬라뉴모필라균 ⓒ 위키백과

레지오넬라 뉴모필라균 ⓒ 위키백과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 주변에 흔해 빠진 세균이 이때 처음 문제를 일으킨 것일까? 아니었다. 8년 전인 1968년에 미시건 주 폰티악의 한 건물에서 일하던 사람 100명 중 95명이 원인불명의 고열, 설사, 구토, 가슴 통증을 앓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병의 정체를 몰라 ‘폰티악 열’로 불렀다. 하지만 레지오넬로시스가 발견된 후 당시 환자들의 혈액을 조사해본 결과 같은 균이 일으킨 병으로 확인되었다.

폰티악 열의 환자들 역시 모두 같은 에어컨에서 나온 공기를 쐬었던 사람들이었다. 다행히 폰티악 열에 걸린 환자들은 독감처럼 앓고 지나갔다. 그러므로 레지오넬라 뉴모필라균에 감염되었다 하더라도 독감처럼 앓고 지나갈 수도, 재향군인병처럼 심각한 폐렴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균의 병독성이 다른 탓이다.

레지온(legion)은 재향군인으로 변역되기도 하지만, 재향군인을 뜻하는 영어는 레지온네어(legionnaire)가 더 일반적이다. 원래 레지온, 레지오(legio)는 군인, 군대, 집단을 뜻하는 라틴어다. 가톨릭의 신앙 단체인 ‘레지오 마리에’ 역시 ‘마리아의 군대’란 뜻이다.

재향군인협회. 우리나라는 영어로 legionnaire 가 아닌 veteran을 쓴다.

재향군인협회. 우리나라는 영어로 legionnaire 가 아닌 veteran을 쓴다.
ⓒ 박지욱

legio(n)은 ‘모으다’라는 뜻의 라틴어 lego 와도 관련이 있는데 lego는 벽돌 모양의 조각들을 쌓아 만드는 유명한 완구 ‘레고’가 떠오른다. 레고도 모으다는 라틴어에서 온 이름일까? 답부터 말하면, 아니다. 1949년에 덴마크에서 태어난 ‘LEGO’는 덴마크어로 ‘잘 논다’는 뜻인 leg godt 에서 왔다.

하지만 실망할 것 없다. 우리에겐 college가 있으니까.

학문 연구나 지식 전수를 위해 돈, 사람, 특권을 모은 것을 college 라 불렀다. 대부분은 ’대학’으로 번역되지만 일부는 ’협회’로 번역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영국의 의사 단체인 the Royal College of Physicians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왕립내과의사대학’, ’왕립의과대학’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틀린 번역이다. 또한 the Royal College of Surgeons를 ’왕립외과대학’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많은데 역시 틀렸다. 이 college는 ’대학’이 아니라 ’협회’이므로 ’왕립내과의사협회’와 ’왕립외과의사협회’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에는 ’레지옹 도뇌르(Order de la légion d’honneur)’라는 훈장이 있다. ‘명예로운 군인(부대)’이란 뜻을 가진 이 훈장은 1802년에 나폴레옹이 만들어 뛰어난 무공(武功)을 쌓은 군인들에게 수여했다. 지금은 군인이 아니라 해도 정치, 경제, 문화 등에서 업적이 뛰어난 사람에게 수여된다. 프랑스 최고의 명예 훈장이다.

(1187)

뉴스레터 구독신청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