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재능을 다 쓰지 못한 비운의 과학자들

[기상천외한 과학자들의 대결] (6) 에바리스트 갈루아와 로잘린드 프랭클린

천재가 되면 어떨까. 천재가 되면 삶이 편해질 거 같지만 사실 천재들의 삶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이 중 누구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가진 능력을 다 펼쳐 보이지 못하고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불운의 천재들이 있다. 에바리스트 갈루아(Évariste Galois)와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 1920~1958)이 그 주인공이다.

피지 못한 꽃스물한 살에 생을 마감한 에바리스트 갈루아

에바리스트 갈루아 (Évariste Galois, 1811~1832)는 당시 난제로 꼽혔던 ‘근의 공식이 5차 방정식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낸 수학자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답을 구한 시기가 바로 십 대 소년 시절이었다는 사실이다.

에바리스트 갈루아는 뛰어난 수학 실력을 갖췄으나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방황하다 뜻밖의 죽음을 맞이했다. ⓒ 김은영/ ScienceTimes

갈루아는 이 외에도 각을 3 등분하는 문제나 원적문제가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등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난제들의 답을 구했다.

1811년 한 학교의 교장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편안한 삶을 살던 그는 상상력이 풍부한 소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갈루아는 수학적 재능에 상상력을 발휘해 어려운 문제를 풀어냈다. 그는 15세에 불과한 나이에 이미 대학에서 배우는 수학 전공 서적을 마치 소설처럼 쉽게 접근하고 이해하는 실력을 보였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재능을 가졌기에 갈루아는 외로웠다. 이미 학교에서 배우는 많은 과목들은 그의 지적 욕구를 채우는 데 한계를 보였다. 갈루아는 학업에 흥미를 잃었고 그나마 자신이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었던 수학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고 괴로운 학문이 수학 천재에게는 가장 재미있는 놀이로 변화하는 놀라운 일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의 천부적인 수학 재능에 비해 학교에서 받는 수학 점수는 영 신통치 않았다. 교사들은 풀이 과정을 적어내지 않는 갈루아에게 좋지 않은 점수를 줬기 때문이다.

미처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너무 짧은 생을 살다 간 비운의 천재, 갈루아. ⓒ wikimedia

사실 갈루아는 풀이 과정에는 흥미가 없었다. 갈루아 입장에서는 교과서의 수학 문제란 그냥 보면 당연한 것(?)인데 왜 풀이 과정을 나열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에게 풀이 과정은 생략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문제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자동 계산되어 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은 그가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명문대 에콜 폴리테크니크(Ecole Polytechnique)에 입학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재연된다. 갈루아는 면접시험에서 문제의 풀이 과정을 지나치게 생략하고 답안을 제출하는 바람에 ‘0’점 처리되는 등 두 번이나 낙제하는 좌절을 겪는다.

당시 혼란스러웠던 정치 상황도 그를 불행으로 몰고 갔다. 정치적인 이유로 수감생활을 하게 된 갈루아는 감옥에서 수학 이론을 개발해 당대 유명한 수학자 시메옹 드니 푸아송(Siméon Denis Poisson)에게 논문을 제출했다.

하지만 시메옹 드니 푸아송도, 다른 수학자들도 그의 천부적인 수학 실력을 알아보지 못했다. 결국 갈루아는 자신의 수학 실력을 증명할 수 없어 분노하고 한 여성과 연루된 권총 결투에서 ‘스물하나’라는 젊은 나이에 총을 맞고 생을 달리한다.

DNA 구조 발견했지만비운의 로잘린드 프랭클린

1953년 디옥시리보핵산(DNA)의 구조를 발견한 일은 유전학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거대한 사건이었다.

X선을 통해 DNA 연구를 하다 난소암으로 37세 젊은 나이에 사망한 로잘린드 프랭클린. ⓒ wikimedia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프렌시스 헨리 크릭(Francis Harry Compton Crick)은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의 구조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이 1953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은 ‘DNA 분자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했다’는 혁신적인 사실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DNA 발견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이가 또 있었다. 바로 영국의 생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 1920~1958)이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찍은 51번 사진, ‘X선 회절 사진’. ⓒ wikimedia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노벨상 수상 선정에 핵심 요인이 되는 ‘DNA 이중나선 구조 모형 사진’을 여러 장 찍는 등 DNA 구조를 밝히는데 크게 기여했다.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프렌시스 헨리 크릭(Francis Harry Compton Crick)이 발표한 논문에는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찍은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이 가능했다.

하지만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노벨상의 영광을 함께 하지 못했다. 노벨상 수상 4년 전인 1958년에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원하는 DNA 사진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액스레이 사진을 찍으면서 방사능에 노출된 결과로 보인다.

안타깝게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며 인간 생명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쥐여주고 간 비운의 천재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 노벨상 수상 여부를 떠나 인류가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과학자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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