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장사꾼의 힘을 대변하는 ‘피보나치’

[TePRI Report] 세계사 속 과학기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9월 ‘TePRI Report’

과학과 기술, 그리고 상업의 융합은 당연한 현실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9월 ‘TePRI Report’

‘과학기술’이라는 익숙한 합성어가 웅변하듯이, 과학과 기술의 융합은 오늘날 더없이 당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역사의 오랜 기간 동안 과학과 기술은 어떤 의미에서 별개의 분야였다.

학문으로서의 과학을 담당하는 사람들과 생계로서의 기술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신분이 달랐다. 과학은 만물을 포괄하는 우주의 근본원리를 탐구하는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이었던 반면, 기술은 생활의 편리와 안락을 추구하는 세속적 활동이었다. 한마디로 과학은 학자의 영역, 기술은 장인(匠人)의 영역이었다.

이런 영역 구분의 흔적은 증기기관과 열역학에 관한 다음과 같은 민족주의적 속설에서도 확인된다.

알다시피 증기기관을 획기적으로 개량한 인물은 영국의 제임스 와트였다. 그가 이뤄낸 증기기관의 실용화는 본격적인 산업혁명에 불을 댕겼다. 그러나 와트는 증기기관의 작동원리에 대해서는 깊이 아는 바가 없었고 그다지 관심도 없었다.

즉, 어떻게 열에너지가 역학적에너지로 변환되는지에 대해서는 와트의 관심 밖이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열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학 분야를 개척한 인물은 프랑스의 니콜라 카르노였다.

중세 말기에 벌어진 백년전쟁에서 보듯이 영국과 프랑스는 오랜 앙숙이다. 지금도 서로를 깎아내리는 농담을 종종 즐기는 양쪽 민족이 와트와 카르노의 차이를 간과할 리 없다. 영국인은 실용을 추구한 와트를 추켜세우는 반면, 프랑스인은 현상의 바탕에 깔린 원리를 탐구한 카르노를 찬양한다. 프랑스인이 보기에 와트는 그저 행운으로 성공한 무식쟁이, 영국인이 보기에 카르노는 아무 쓸모도 없는 연구에 매달린 딸깍발이다.

여기에 민족주의적 감정이 더해져 영국인과 프랑스인의 차이에 관한 일반론이 제기되기도 하는데, 그런 속설은 그들끼리의 농담거리로 남겨두기로 하자.

과학과 기술의 구별을 전제하면, 와트는 기술자, 카르노는 과학자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대로 과학과 기술의 융합을 전제하면, 와트와 카르노는 둘 다 위대한 과학기술자다.

필자는 둘째 전제를 옹호하는 편이다. 첫째 전제도 나름대로 정당하지만, 과학이 삶의 다른 분야들과 상호작용한다는 점, 과학과 기술이 삶이라는 더 큰 틀 안에서 활발히 교류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면 과학과 기술의 융합을 전제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학을 순수하게 고립된 고차원적 정신 활동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버리고 폭넓은 과학기술의 스펙트럼을 받아들이면, 한걸음 더 나아가 과학기술과 상업의 동맹까지도 열린 마음으로 고려할 수 있게 된다.

과학을 존경하는 일부 독자들은 이렇게 과학과 기술, 상업을 뒤섞는 접근법을 상당히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접근법은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학 곧 살아있는 과학을 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틀림없이 유익하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 그리고 상업의 융합이 엄연한 현실이라면, 혹시 과거 역사에서도 그런 융합의 사례를 찾을 수 있을까? 대표적인 사례로 ‘피보나치’라는 중세의 인물을 지목할 수 있다.

피보나치는 흔히 ‘피보나치수열’과 관련해서 거론되지만, 이 인물의 업적은 피보나치수열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다. 원래 이름이 ‘피사의 레오나르도’인 피보나치는 1202년에 ‘계산 책(Liber abbaci)’을 써서 유럽에 인도아라비아숫자와 그 숫자를 이용한 계산법이 보급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공용되는 인도아라비아숫자는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도에서 발생하고 이슬람 세계에서 발전했다. 1202년까지도 유럽에서는 로마숫자가 쓰였는데, 이 숫자는 계산에서 사용하기에 엄청나게 불편하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덧셈과 뺄셈은 그런대로 가능했지만, 로마숫자를 가지고 곱셈을, 심지어 나눗셈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CXXXV(135) 곱하기 XXVI(26)을, 지금 우리가 135×26을 계산할 때처럼 간단한 기호 조작을 통해서 해낼 방법은 없다. 그러나 삶에서는 이런 계산이 숱하게 필요했고, 사람들은 손가락, 작대기, 조약돌, 주판 등을 이용하여 계산한 다음에 그 결과를 다시 로마숫자로 적었다.

그 시절에 계산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당연히 장사꾼이었다. 실제로 피보나치의 ‘계산 책’은 장사꾼 독자를 겨냥한 작품임을 거기에 등장하는 연습문제들에서 알 수 있다. 주로 매매, 환전, 금액 계산에 관한 문제들이 다뤄진다.

피보나치는 청소년기에 당시 이슬람 세계의 일부였던 북아프리카에서 살면서 인도아라비아숫자 시스템을 접했는데, 그 역사적 경험을 가능케 한 그의 아버지가 무역과 세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었다는 사실도 짚어둘 만하다. 당시에 피사는 제노바, 베네치아와 함께 이탈리아의 무역을 주도하면서 북아프리카의 여러 곳에 진출했는데, 피보나치의 아버지는 그런 피사의 공무원으로서 현재의 리비아에 파견되어 현지 피사 시민들의 상업 활동을 지원하면서 아들을 그곳으로 불렀던 것이다.

요컨대 피보나치는 전통적인 수도원들과 막 생겨난 대학들에서 성서를 해석하고 그리스 문헌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에 몰두하던 당대의 학자들과는 결이 사뭇 다른 인물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학문적 전통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인물이었기에 낯선 인도아라비아숫자를 흔쾌히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계산 책’을 환영하고 새로운 숫자를 신속하게 채택한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과학자라고 부를 수는 없다. 과학기술자라는 명칭도 부적절한 듯하다. 이들은 단지 생업을 위해 계산이 필요했기에 낯설지만 편리한 숫자와 계산법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 장사꾼일 따름이다.

하지만 그들은 유럽 과학기술의 발전에 엄청나게 기여했다.

‘수학자 피보나치’의 저자 키스 데블린은 피보나치를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에 빗댄다. 이 역사적 인물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장사꾼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장사꾼의 힘을 되새기자는 뜻에서, 언급한 책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레오나르도(책에서는 피보나치를 뜻한다)의 업적은 어느 모로 보나 1980년대에 개인용 컴퓨터 기술의 개척자들이 소수 전문가들만 사용하던 컴퓨터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것에 못지않게 혁명적이었다. 그 개척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레오나르도가 ‘계산 책’에서 서술한 기법들을 발명하고 발전시킨 공로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 특히 인도와 아랍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활동한 학자들의 몫이다. 레오나르도가 맡은 역할은 그 새로운 기법들을 포장해서 세상에 파는 것이었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서 발간하는  ‘TePRI Report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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