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자폐인, 그들이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

언어 아닌 이미지로 신호체계 전달

최근 국내 과학계로부터 대중과 전문가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자폐증의 원인이 밝혀져 치료 가능성의 문이 열렸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국내 연구진이 자폐증의 유전적 요인과 발병 원인을 규명하여 자폐증 치료시 사용되는 약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것으로 전해졌다.

자폐(自閉)증이란 일반적으로 3세 이전부터 언어능력이 타 아동들에 비해 저조하거나 사람과의 접촉에 예민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며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거듭하는 증세를 말한다. 오늘날에는 이를 초기 아동기 장애라고 정의하기도 하는데 그만큼 영아기 때부터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알려진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의 1~2%에 해당하는 약 1억 명이 이러한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폐증상을 앓는 사람들 특유의 행동패턴으로 인해 과거 자폐증은 행동발달 장애로 인지된 반면 최근의 자폐증은 뇌 질환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정보를 이미지로 번역하다

자폐증이 심각한 질병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암과 같은 타 질병처럼 신체에 직접적인 해가 미치지는 않지만 사회성에 심각한 결여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워싱턴 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폐성 질환을 앓는 젊은 성인 3명 중 1명은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영화에 이어 연극으로도 제작된 <레인맨>은 자폐질환을 앓고 있는 레이먼드와 그의 동생 찰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진은 연극 <레인맨>의 한 장면. ⓒ쇼팩


자폐인들의 사회성이 결여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일반 사람들과 사고·행동방식에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일반 사람들과 다른 사고·행동방식을 갖는 것일까.

오랫동안 자폐를 앓았지만 이를 극복한 템플 그랜딘 박사는 자신의 저서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를 통해 자폐인들이 정보와 감각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방식이 비자폐인들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그랜딘 박사에 따르면 이들은 주로 시각적 사고로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림과 시각 체계로 모든 정보들을 번역해 머릿속에 입력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처리방식은 ‘연상적’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되는데, 이미지가 연상적으로 떠오르고 지나가는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일반적인 사람의 경우 언어로 정보를 ‘논리적으로’ 습득하는 반면 자폐인들의 경우에는 그림이나 이미지로 정보를 ‘연상적으로’ 습득하는 것이다.

이는 자폐인들이 수많은 수(數)를 단 몇 초만 응시한 후 어느 위치에 어떤 수가 놓여있는지를 정확히 맞추는 능력의 이유가 되며 많은 양의 정보를 빠르게 암기하거나 기억해내는 능력을 보이는 원인이기도 한다.

영화에 ‘레인맨’에서도 주인공 레이먼드는 숫자를 모조리 외울 수 있는 비상한 능력을 가진 자폐인으로 등장한다. 매순간마다 무엇인가를 암기하고 연상하고 기억하는 레이먼드라는 캐릭터는 이미지로 정보를 습득하는 자폐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자폐인들이 자폐인들의 증상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들이 정보를 이미지화하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으나 그랜딘 박사는 자신의 경우 “오늘날 사람들이 특수 안경을 쓰고 비디오게임 속으로 들어가 완전히 몰입해 액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가상현실 컴퓨터 시스템도 나에게는 조야(粗野)한 만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일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시각화 작업이 진행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녀에 따르면 상상력은 영화 ‘쥐라기 공원’의 공룡을 만들어낸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처럼 작동한다. 일반 사람들이 컴퓨터를 통해 시뮬레이터를 하고 3차원의 이미지를 회전시키는 작업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모두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다른 사람에 비해 매우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일반 사람들은 언어로 정보를 습득하고 연상한 후 이를 다시 언어로 풀어내지만, 자폐인들은 많은 경우 그림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만큼 그림으로 그 정보를 풀어내는 것이 더욱 생생한 것이다.

당신이 아는 예술가도 혹시?

자폐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혼자 있기, 언어 능력의 저조현상, 정보의 시각화 처리 등의 증상은 때론 비범한 인물을 탄생시키는 기저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미 많이 알려진 예로 아인슈타인과 빌 게이츠의 경우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았다는 주장들이 있으며 일부 학자들은 반 고흐도 자폐성 질환을 앓았다고 언급한다.

▲ 많은 경우 자폐성 질환을 앓는 아동은 그림으로 정보를 습득한다. ⓒsciencetimes

아인슈타인의 경우 세 살이 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했으며 어린 시절에는 학교의 학업을 따라가지 못해 성적이 엉망이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자폐성 질환을 앓는 사람의 경우 사람 사이의 유대관계보다는 자신만의 특정한 사물이나 장소 혹은 물질에 애착과 흥미를 갖는 경우가 많은데, 아인슈타인도 사람과의 관계보다 사물과의 관계에 더 흥미를 느꼈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한다. 때문에 그가 우주와 과학에 전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능력이 상대성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며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엉뚱한 상상으로 주위 사람을 당황케 하곤 했다. 예를 들면 ‘빛의 속도가 나와 같아진 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세상은 내 눈에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가’와 같은 방식이다.

아인슈타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나는 지적 성장이 늦었기 때문에 커서도 계속 시간과 공간에 의문을 품었다. 남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조차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새로운 것을 찾아내게 됐다”고 언급했다. 브랜딘 박사는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은 계산능력보다 시각적 사고와 수학적 사고를 연관시킬 수 있었던 것에 있다고 보고 있다.

고흐 역시 아동기와 청년기에 자폐증상을 보였다는 주장이 있다. 그의 작품은 고흐가 정신병원에 들어간 뒤 더욱 화려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 화려함 이면에는 고뇌도 느낄 수 있다. 특히 그림에서는 사물의 가장자리들이 모두 흔들리는 듯한 형상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그랜딘 박사는 발작으로 인해 고흐 자신의 지각체계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전에는 칙칙한 색채로 그림을 그렸지만, 병원 입원과 함께 화려한 색채의 그림으로 전환하게 된 것은 간질 증상이 시작된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며 그 발작이 고흐의 지각도 바꿨다는 것이다.

특히 그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가 고갱과 다툰 후 자신의 귀를 자른 뒤 그린 것으로 유명한데, 브랜딘 박사는 이 그림의 소용돌이치는 하늘의 모습이 일부 자폐인들이 겪는 감각 왜곡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심한 감각 처리 장애를 겪는 자폐인에게는 감각자극이 서로 뒤섞여 사물의 가장자리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즉, 감각의 왜곡으로 인해 지각도 달라지면서 이와 같은 그림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폐(自閉)’란 단어는 스스로 문을 닫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자폐증을 겪는 사람들이 사회와의 소통을 닫고 스스로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이 보여주듯이 자폐성 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사람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소유하기보다는 자신이 이뤄놓은 세계, 자신이 상상하는 세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구축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자폐아동을 치료하는 교사들에게는 아이들이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지 않고 현실로 나올 수 있도록 부드러움과 단호함이 조화된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곤 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 자폐증이 갖고 있는 특징은 창의적 사고에도 도움을 주는 만큼 이들을 사회 부적응자로 규정하기보다는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되고 이해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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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박한얼 2020년 7월 16일3:19 오후

    자페증을 뇌의 질환으로 본다면 어떤 약물을 사용하게 될지 궁금해지네요. 상상력, 창의력을 키우거나 할때 이미지트레이닝을 하기도 해요 창의력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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