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연구환경 열악해진다”

카지타(작년 노벨상 수상자) 고등과학원 강연

“1980년대 일본 경제 호황과 당시 상대적으로 풍족했던 연구시간 등이 10~20년 장기 연구를 가능하게 했으며 이것이 (일본이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한) 토대가 됐다고 본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최근 연구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노벨상 수상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18일 고등과학원(KIAS) 주최 초청 강연을 위해 방한한 201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카지타 타카아키 일본 도쿄대 우주선연구소(ICRR) 소장은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일본 과학계의 연구 환경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카지타 교수는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인 중성미자의 진동을 발견해 이때까지만 해도 질량이 없다고 알려진 중성미자가 질량이 있음을 밝혀낸 공로로 2015년 캐나다 아서 맥도날드 교수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카지타 타카아키 교수가 18일 고등과학원 초청 강연에 앞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다양한 과학 현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제시했다.  ⓒ 조인혜/ ScienceTimes

카지타 타카아키 교수가 18일 고등과학원 초청 강연에 앞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다양한 과학 현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제시했다. ⓒ 조인혜/ ScienceTimes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명예교수도 최근 인터뷰에서 “일본 연구 환경이 점점 악화돼 10년, 20년 후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2014년 이후 3년 연속 수상자가 나오면서 일본 과학의 전성기가 열렸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정작 노벨상 수상 주역들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셈이다.

일본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 이후 총 22명의 과학분야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이 가운데 3분의 2가 2000년 이후에 집중됐다. 한국이 마냥 부러워하는 일본 과학계 내부의 이런 목소리는 일본에 비해 기초과학 연구 기반이 취약하고 장기 연구는 훨씬 더 열악한 한국 과학계에 오히려 더 아픈 지적으로 다가온다. 기자간담회와 초청 강연에서 만난 카지타 교수로부터 현재 진행 중인 연구와 일본 과학계의 현황, 노벨상에 관한 몇 가지 생각을 들어봤다.

노벨상 수상 이후 개인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 수많은 고등학생, 대학 학부생과 대화할 기회를 많이 가졌다. 이들 학생들이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다른 특별한 것은 없다. (이날 KIAS 행사에서도 400여명의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진동하는 중성미자(Oscillating neutrinos)’를 주제로 1시간 동안 강연했으며 쏟아지는 청중들의 질문에 일일이 친절하게 답변해주었다.)

중성미자로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지금은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나.

= 도쿄대 우주선(Cosmic Ray)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실험 연구를 관장한다. 요즘은 일차적으로 중력파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가미오카 광산 지하에 건설된 초대형 설비에서 중력파를 관측하고 있는데 블랙홀 두개가 하나로 합쳐질 때 발생하는 중력파를 확인했다. 중성미자 연구도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

이날 고등과학원 강연에서 카지타 교수는 201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자신의 중성미자의 진동 연구에 대해 상세히 소개했다.  ⓒ 고등과학원

이날 고등과학원 강연에서 카지타 교수는 201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자신의 중성미자의 진동 연구에 대해 상세히 소개했다. ⓒ 고등과학원

일본이 3년 연속 과학분야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그 힘이 뭐라고 보나.

= 일본이 노벨상을 집중적으로 ‘수상’하고 있는 것은 21세기 들어서이지만 (토대는) 1980년대 연구에서 시작됐다. 당시 일본 경제는 매우 좋았고 당시 대학과 연구소 등은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다. 그런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본은 스승의 연구를 제자가 이어가는 경우가 많고 이것이 노벨상에서 연결되기도 하는데.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고시바 교수는 카지타 교수의 지도교수이다. 또 카지타 교수가 노벨상을 수상한 중성미자 진동의 발견 역시 선배이자 스승인 도쓰카 요지를 중심으로 이뤄진 연구에서 비롯됐다. 카지타 교수는 2015년 당시 인터뷰에서 2008년 암으로 사망한 스승이 만약 살아있었다면 공동 수상을 했을 것이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 나 역시 후배들이 중성미자 실험과 양성자 연구를 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물려준다는 개념보다는 워낙 광범위하고 선도적인 연구 분야이기 때문에 참여하는 후배와 제자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다보니 그런 것 같다. 고시바 교수님은 후배, 제자들에게 늘 이런 얘기를 하셨다. 연구자는 자신만의 달걀(연구주제)을 갖고 있으면서 닭이 알을 품듯이 이것이 병아리가 될 것인지 아닌지, 언제 부화할지에 대해 늘 신경쓰고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가수 밥딜런이 선정돼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최근 노벨 물리학상의 수상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물리학은 문학에 비해 자유도가 높지 않다. 문학은 경계가 넓고 불분명하다. 물리학은 매우 잘 정의된 분야이기 때문에 조금만 영역을 넘어서면 화학이 되기도 한다. 문학보다는 그런 경향이 적을 것이다.

40년동안 연구를 했는데 난관에 부딪히거나 가설이 입증되지 않는 등의 어려움이 있을 때는 어떻게 돌파하는지.

= 성격이 낙관적이라 무엇이든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2001년에 중성미자 실험 설비인 슈퍼 가미오칸데(Super Kamioka Nucleon Decay Experiment; 가미오카 지역 지하에 건설된 연구 설비)에 큰 사고가 있었다. 연구 인생에서 아주 큰 사고였다. 당시 토츠카 교수가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한 덕분에 무사히 실험시설을 재건할 수 있었다.

이날 400여명의 학생과 연구자들이 카지타 교수의 강연을 듣기 위해 행사장을 찾았다. 체험학습 신청을 하고 대전에서 올라온 고등학교 1학년 학생도 있었다. ⓒ ScienceTimes

이날 400여명의 학생과 연구자들이 카지타 교수의 강연을 듣기 위해 행사장을 찾았다. 체험학습 신청을 하고 대전에서 올라온 고등학교 1학년 학생도 있었다. ⓒ 조인혜/ ScienceTimes

요즘은 미국과 유럽에서 조차 장기 연구보다는 단기적으로 빠른 성과를 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데 일본의 연구 환경은 어떤가.

= 일본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들은 장기 연구를 하려고 애쓰고 있고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연구 성과를 요구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대학들도 예전에 비해 여유가 없다. 도쿄대만 해도 국립대에서 법인화하면서 경쟁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등수, 점수를 매기고 그에 따라 예산을 결정지으면서 과거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5~20년전만 해도 기본 연구비가 있었으나 지금은 아주 빨리 사라지고 있다. 일본의 지방대들도 정부 예산에서는 차별을 안받지만 그 외 펀딩에서는 연구비 신청 등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는 등 전반적으로 상황이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앞으로 일본의 노벨상 수상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보나.

= 계속 이런 분위기라면 그럴 수도 있다. 일본 과학기술이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 데이터로 나타나고 있다. 인용지수 상위 1% 논문 수는 정체하고 있으며 기초 과학은 물론 공학, 의학에 이르기까지 이공계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하려고 들어오는 젊은이들이 계속 줄고 있다. 인구 감소분을 감안해도 줄어드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학생들은 대부분 석사 후 회사에 들어가거나 직업을 가지려고 한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의 의견(10년, 20년후에는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에 공감한다.

과학과 기술은 무엇이 다른가.

= 과학과 기술은 딱 부러지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어떤 것은 가깝고 어떤 것은 멀다. 그러나 과학 중에 절대로 기술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있다. 중력파나 중성미자 같은 것이 그렇다. 순수과학을 하기 위해 기술 발전이 필요하지만 기술의 발전을 위해 과학을 연구하지는 않는다.

강연이 끝나고 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카지타 교수. ⓒ 조인혜/ ScienceTimes

강연이 끝나고 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카지타 교수. ⓒ 조인혜/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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