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인공 미세지문…위조 가능성 차단

[과학자의 연구실] [인터뷰] 박욱 경희대 전자전파공학과 교수

철저한 보안, 그것을 뚫으려는 위조. 전 세계가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만큼 이를 더욱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보안 시장의 규모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위조 기술까지 날로 발전하는 게 사실이다.

사람 지문, 먼지크기로 모사… 복제를 막다

박욱 경희대 교수 ⓒ 박욱

박욱 경희대 교수 ⓒ 박욱

더욱 철저한 위조 방지 기술이 요구되는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복제가 불가능한 인공 미세지문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박욱 경희대 전자전파공학과 교수와 권성훈 서울대 교수팀이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 사람 지문을 먼지만한 크기로 모사해 복제 불가능한 위조 방지 신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한 단계 진화된 위조방지 기술로 평가되는 해당 연구는 재료과학 분야의 권위지인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 지 3월 25일자 표지논문으로 게재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위조방지를 위해 사용된 방법은 마이크로식별자(microtaggant)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이크로식별자란 어떤 물건을 추적하거나 위조를 막기 위해 사용되는, 마이크로크기의 매우 작은 입자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상품 표면에 붙이거나 상품 속 내용물과 섞어서 사용하는 거죠. 특정 정보가 특정 코드 형태로 새겨진 마이크로식별자를 상품 표면에 부착하면 마치 바코드와 같은 기능을 했습니다. 원재료나 제품에 첨가 돼 위조 방지 기능을 수행했던 거죠. 이를 ‘코드 부여 방식’ 이라고 해요. 하지만 코드 부여 방식의 기존에 개발된 마이크로식별자들은 복제 가능성에 쉽게 노출돼 있었습니다. 이 방식 자체가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같은 코드를 갖고 있는 마이크로식별자를 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았던 거죠.”

이에 따라 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위조방지용 보안 식별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고, 이러한 보안 식별자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같은 코드를 만들어 낼 수 없게 해 마이크로식별자 자체의 복제가 불가능하도록 해야 했다.

“이러한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물체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특성, 예를 들어 종이표면에 있는 섬유구조 등을 코드로 활용하는 위조방지 기술들이 개발됐어요. 하지만 코드해독방식이 까다롭거나 혹은 다양한 상품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죠. 또한 이러한 방식들은 원하는 대로 코드를 조절할 수 없었기에 사용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식별자를 개발할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차원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박욱 교수팀도 바로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복제가 불가능하면서도 코드를 조절할 수 있는 마이크로식별자를 개발할 수 있었다. 이는 다양한 제품에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존보다 한 단계 발전된 위조방지 기술이었다.

“‘인공 미세지문’을 만들었어요. 복제할 수 없는 사람의 지문 인식 방법을 적용한 거죠. 사람의 지문은 각각 모두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지문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결정 되고, 평생 동안 변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죠. 이러한 지문을 인식하려면 지문 내에 존재하는 특징점(minutia)의 위치나 방향성을 이용해야 해요. 대표적으로 융선의 단점과 분기점이 그것이죠. 주름패턴을 형성하는 과정은 예측 불가능한 융선들의 분포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사람마다 고유한 지문이 생성되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즉, 저희 연구팀은 마이크로입자에 주름패턴을 형성해 복제가 불가능하고 고유한 식별자로 활용할 수 있는 인공지문을 개발하고자 한 것이죠.”

박욱 교수가 설명한 대로 개발한 인공지문은 마이크로 크기의 식별자에 자연 주름을 넣고 그 안에 랜덤하게 존재하는 특징점들의 분포를 기존의 지문인식방법을 그대로 적용해 읽어낸다. 마이크로식별자 자체가 복제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위조품 생산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

“주름 패턴은 지문인식 알고리즘을 그대로 적용해 분석이 가능합니다. 또한 각 마이크로식별자로부터 추출되는 특징점들의 개수가 사람의 지문에서 추출할 수 있는 개수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충분한 수의 코드 생성이 가능해요. 따라서 이 주름 패턴을 가지는 마이크로식별자를 인공지문이라고 명명했어요.”

사람 지문을 모사한 인공 지문 마이크로식별자. 제작된 마이크로식별자를 물체 표면에 코팅한 후 레이저 스캐닝을 통해 얻은 형광 이미지에 지문 인식 방법을 적용하여 식별자의 코드를 분석하고 제품을 인증한다 (눈금자: 25 ㎛). ⓒ 한국연구재단

사람 지문을 모사한 인공 지문 마이크로식별자. 제작된 마이크로식별자를 물체 표면에 코팅한 후 레이저 스캐닝을 통해 얻은 형광 이미지에 지문 인식 방법을 적용하여 식별자의 코드를 분석하고 제품을 인증한다 (눈금자: 25 ㎛). ⓒ 한국연구재단

고민하면 ‘우연’이 결과를 돕는다

연구팀이 개발한 미세 인공지문은 코드의 랜덤성은 유지하면서도 보안 등급을 조절할 수 있어 더욱 다양한 곳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설정할 수 있다. 이 때 보안 등급은 단위면적당 특징점의 개수에 따라 구별할 수 있는데, 박운 교수팀은 특징점의 밀도가 주름 패턴의 간격에 반비례한다는 것도 확인했다.

“주름 패턴의 간격은 인공지문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실리카 두께와 폴리머 입자의 경화된 정도에 따라 쉽게 조절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필요에 따라 다른 수준의 보안 등급을 갖는 인공지문 제작이 가능하죠. 또한 광미세유체 마스크리스 리쏘그래피를 이용해 마이크로입자의 모양을 원하는 대로 디자인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공지문을 위조방지를 위해 제품에 적용시킬 때 그 외형에 따라 분류해서 효율적인 사용이 가능합니다.”

연구팀은 개발한 인공지문이 상호상관(cross-correlation) 값을 분석해 실제로 고유한 패턴을 제공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사람의 지문과 인공지문 각각에 대해 융선 단점들의 방향성을 분석해 비교한 결과 인공지문이 훨씬 랜덤한 분포를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인공지문이 실제 지문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개별성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개발한 인공지문을 여권과 반지, 시계 등 제품에 부착한 후 인증 과정을 시연해 봤습니다. 먼저 주름이 패턴된 마이크로식별자를 제품 표면에 올린 후 현미경으로 인공지문을 관찰하고 이로부터 특징점들을 추출해 식별했어요. 인공지문의 보안 등급에 따라 공초점현미경 같은 고사양의 장비를 이용해야만 식별이 가능할 수도 있고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휴대용 현미경을 휴대폰에 부착해서 식별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인공지문을 이용한 위조방지기술은 기존의 물리적 복제방지 기능에 기반을 둔 마이크로식별자에서는 제공할 수 없었던 다양한 코드해독 방식을 지원합니다. 또한 인공지문이 반복적인 수축․팽창 또는 고온에서도 손상되지 않고 코드를 잘 보존하죠.”

다양하고 뛰어난 성능을 가진 인공 미세지문. 박욱 교수가 이번 연구를 진행한 것은 우연한 기회에 마이크로입자에 주름이 형성되는 것을 발견하면서다. 박 교수는 “사실 그 당시에는 진행하고 있던 연구가 지금의 연구로 발전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며 연구를 시작한 당시를 회고했다.

“정보를 가진 입자라는 큰 연구테마 아래에서 그 정보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혹은 어떠한 정보를 포함해야할까라는 고민을 항상 하고 있었어요. 그때 마침 휴대폰에 지문을 인식하는 기술이 나왔고 이걸 이용하면 어떨까 싶었죠. 이러한 개념을 보안 연구에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마침 함께 연구하던 연구원들도 그러한 아이디어를 생각했고 그렇다면 다 같이 한뜻으로 연구를 해보면 좋겠다 싶어 바로 연구에 착수하게 됐어요.”

물론 어려운 점도 존재했다. 2년의 연구기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인공지문을 만드는 공정 조건을 잡는데 소요했다. 또한 지문 분석에 대한 지식을 공부하는 데도 연구원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에 대해 박욱 교수는 “어려운 점은 많았지만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에 이러한 연구 결과도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연구원들이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면서 자발적으로 이뤄졌습니다. 특히 연구팀이 연구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그 의견들에 의해 가설이 세워지고 검증돼 기술이 완성되는 과정, 그 자체가 좋았던 것 같아요. 이러한 연구를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평소 박욱 교수는 마이크로 크기의 3차원 구조물 프린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 만든 입자, 구조물 등도 3차원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만들었다. 박 교수는 “이러한 기술을 이용해 보안과 약물전달 같은 분야에 응용하고 있다”며 “연구를 통해 앞으로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 그 밑거름이 되는 기술, 혹은 그 세상을 조금 더 나이지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며 앞으로의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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