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인간과 함께 한 물의 신비 (9)

[과학기술 넘나들기] (239) 빙하 코어라는 차가운 타임 캡슐

과거의 지구 환경에 관련된 많은 정보를 보존하고 있어서 타임캡슐과 같은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빙하 코어(Glacier core) 또는 얼음 코어(Ice core)이다. 이는 극지방이나 고산지대의 빙하나 얼음을 시추하여 채취한 원통 모양의 얼음 기둥인데,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눈이 쌓이고 얼어붙어서 나무의 나이테와 같은 층을 이루기도 한다.

나무의 나이테를 살펴보면 과거 나무가 자라던 당시의 환경 등을 유추해낼 수 있듯이 빙하 코어 역시 이와 비슷한 셈인데, 빙하 코어를 통해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훨씬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즉 눈과 공기가 함께 뒤섞여 쌓이면서 형성되는 빙하 코어에는 과거의 공기층도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분석하면 당시 대기 성분의 조성 비율과 대기 환경 등을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 또한 공기 방울과 아울러 먼지와 화산재, 꽃가루 등 동식물의 흔적들도 포함되어있는 경우가 많아서, 과거의 화산 활동 등 지각변동, 당시에 번성했던 동식물에 관한 정보 등도 파악할 수 있다.

국제연구팀이 남극에서 채취한 얼음 코어들 ⓒ 위키미디어

빙하 코어는 시추장치를 이용하여 원통형의 파이프를 빙하에 박은 후에 뽑아 올리는 방식으로 추출하는데, 1966년에 그린란드에서 미국 연구팀에 의해 최초로 빙하 코어가 채취되었다.이후 ‘빙하 코어의 과학’은 과거 지구의 역사와 환경을 연구하는 이들의 대단히 유용한 방법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빙하 코어의 연구를 통하여 확인된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지구 온난화에 대한 실증적 증거이다. 지금이야 인간의 산업 활동 결과로 인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의 증가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과 10, 20년 전만 해도 상당수 저명 과학자들조차 온실가스에 의한 지구온난화라는 사실에 대해 의문과 반론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지속되었다. 즉 이산화탄소의 농도와 지구온난화는 실상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변하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구의 온도 등 과거 기후 변화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빙하 코어와 공기 방울을 분석한 실증적 연구결과, 이러한 주장은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즉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 등의 농도가 높았던 시기에는 지구 기온도 상승하였고,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의 농도가 감소했던 시기에는 지구 기온 역시 낮아졌음이 명백히 확인된 것이다.

빙하코어에 간직된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 관련 기록 ⓒ Csrode

그런데 최근 지구온난화의 가속화로 인하여 지구의 역사를 알려 주는 소중한 자료인 빙하 코어조차도 상당수가 위험에 처하고 있다고 한다. 즉 기온의 상승으로 인하여 빙하가 급격하게 녹아내리는 곳이 적지 않아서, 이대로 가면 빙하 코어를 채취하기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2015년부터 전지구적으로 해마다 평균적으로 무려 298기가톤의 빙하가 녹아서 사라지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최근에는 북극과 남극조차도 해마다 녹고 있는 빙하의 규모가 너무 커서 크게 우려된다는 언론 보도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 극지방이 아닌 고산 지대의 빙하는 더욱 심각한 편이다. 즉 국제연구팀은 알프스 산맥에 속하는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빙하에서 2018년에 빙하 코어 샘플을 채취한 적이 있는데, 2년 후에 더 많은 빙하 코어를 본격적으로 채취하려고 갔더니 그 사이에 빙하가 다 녹아서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어떤 과학자는 앞으로 50년이 지나면 지금까지 빙하 코어를 채취해왔던 곳의 빙하들이 대부분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빙하 코어를 채취하여 연구해 온 과학자 중 일부는, 이제 빙하가 급격히 녹으면서 사라져가는 과정의 연구를 시작하기도 하였다. 즉 빙하에 생기는 구멍을 빙하구혈(Moulin)이라고 하는데, 극지 등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분리되는 과정이 빙하 구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알래스카의 빙하에 생긴 빙하구혈(2006년) ⓒ Rich Engelbrecht

어떤 과학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빙하 구혈로 생긴 입구 아래 수십미터 이상을 탐험하면서, 곳곳의 얼음에 센서를 부착해가면서 빙하가 붕괴하는 상세한 메커니즘을 추적, 연구하고 있다. 빙하 안에 있는 작은 구멍과 통로에 녹은 물이 흘러 내리면서 더 큰 터널을 뚫어 빙하 구혈이 형성되고, 여름철에 기온이 높아지면 더 많은 물이 빙하 구혈로 쏟아져 유입되면서 빙하의 밑바닥으로 흘러서, 이 물이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빙하를 떠받치는 기반암과 빙하를 분리시켜서 거대한 빙하 덩어리가 바다로 미끄러져 나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과정을 잘 밝혀낸다고 해서 빙하가 사라져가는 것 자체를 막기는 쉽지 않겠지만, 빙하가 얼마나 빨리 녹으면서 극지방 등의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리 예측하여 대책을 강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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