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기계의 간극을 묻다

국립현대미술관 ‘로봇 에세이’전(展)

 비르길 비트리히 (Virgil Widrich)의 ‘메이크/리얼(make/real)’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비르길 비트리히 (Virgil Widrich)의 ‘메이크/리얼(make/real)’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로봇’이라고 하면 무엇을 연상하는가. 보통은 인간의 모습을 한 기계를 떠올린다. 그러나  로봇은 ‘디지털, 센서’ 등 로보틱스라고 부르는 기술이다. 로봇기술이 발전하면서 ‘로보틱 아트’도 주목을 받고 있다. 7월 1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융․복합 국제미술기획전 ‘로봇 에세이’전(展)에서 이런 로보틱 아트의 최근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로봇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시선을 담다

전시관을 들어서면 천장 위에 하나의 비디오가 눈에 띈다. 비르길 비트리히 (Virgil Widrich)의 ‘메이크/리얼(make/real)’이다. 약 5분간의 영화로 로봇과 인간의 삶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한 번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이 영화가 지난 100년간 SF영화 중 로봇이 나오는 영화만을 선정해 편집한 ‘포토 몽타주’ 기법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첫 장면 역시 최초 SF물인 1927년 독일 ‘메트로폴리스’다. 영화는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로봇을 진화시키고 실현시켜 왔는지와 발전하는 로봇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다루고 있다.

인간이 되는 로봇, 기계가 되는 로봇

입구 왼쪽에는 노재운의 ‘임포스터’이다. 작품 제목은 ‘마이너리포트, 토탈리콜’ 등으로 유명한 ‘필립 K. 딕’의 동명 SF 소설에서 따 왔다. 소설 속 주인공 로봇은 자신이 인간인 줄 알다가 로봇이라는 것을 자각하자 뇌가 폭발하고 지구도 사라진다. 노재운은 바로 이 로봇이 자각 직전이 순간 뇌를 상상하여 회화로 그렸다. 이 그림에서는 육각형 도형이 많이 보인다.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 공간을 안정적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육각형인데, 효율적 로봇의 뇌를 상징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는 로봇이 폭발하는 순간을 로봇이 해탈했다고 표현했다는 점이다. 현대 과학기술을 불교철학으로 비유한 셈이다.

패트릭 트레셋 (Patrick Tresset)의 ‘폴이라는 이름의 다섯 로봇’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패트릭 트레셋 (Patrick Tresset)의 ‘폴이라는 이름의 다섯 로봇’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다시 왼쪽으로 움직이면, 패트릭 트레셋 (Patrick Tresset)의 ‘폴이라는 이름의 다섯 로봇’이 나온다. 인간의 행동과 관련된 로보틱스의 대표적 작품이다. 그림을 그리는 다섯 로봇이 설치되어 있다. 몸통은 책상이고 그 위에 도화지가 고정되어 있다. 오른쪽에 ‘화상카메라, 디지털카메라, 구형카메라’ 등 여러 종류의 카메라가 달려있다. 몸통 왼쪽에는 관절처럼 구부렸다 움직일 수 있는 팔이 달려있고 그 끝에 볼펜이 달려있다. 모델을 살펴보고 그림을 그리는데, 가끔 자신이 그림이 맞는지 눈을 들어 확인한다. 완성된 그림에는 자신이 싸인을 남기기도 한다. 각각의 그림은 조금씩 다르다. 카메라 인식하는 값을 조금씩 달리했기 때문이다.

‘피터 윌리엄 홀든 (Peter William Holden)’의 ‘아라베스크’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피터 윌리엄 홀든 (Peter William Holden)’의 ‘아라베스크’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번 전시회에서는 8개의 다리와 팔이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의 선율에 맞춰 추는 현란한 춤사위를 구경할 수도 있다. ‘피터 윌리엄 홀든 (Peter William Holden)’의 ‘아라베스크’이다.  메리 쉘리의 ‘프랑켄 슈타인’과 연금술사의 실험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팔․다리를 본 뜬 그로테스크한 인공인체를 가지고 마치 꽃의 모습을 하고 있는 역설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반투명한 재질과 어지러운 선들이 이 군무의 주체가 기계임을 알려준다. 특히 어지러운 선은 공기 주입장치인 호수이다. 로봇의 절제 있는 동작들과 묘한 대비가 느껴진다. 이 작품은 2차 작품이 있다. 군무를 추는 로봇을 위에서 찍어 벽에 영상으로 투사했는데, 이슬람사원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아름답고 우아한 아라베스크 문양이 그것이다.

‘레베카 혼(Rebecca Horn)’의 공기는 홍학깃털이 연결된 기계 장치이다. 센서에 의해 움직인다. 서로 가까이 가서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고 다시 고개를 들고 멀어져 가는 동작을 반복한다. 작가는  작품의 반복적인 움직임을 통해 심리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주체로서의 ‘기계’의 모습을 나타낸다. 신체의 기계화를 추구한 작가는 신체에 기계를 장치하고 인간을 기계처럼 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 스스로의 감정을 지닌 주체로서 심리적인 반응을 보여주기도 하고 스스로 꿈을 꿀 수도 있는 존재로 본 셈이다. 그래서 여행 가방이라든가 낡은 피아노 소품을 이용해 기계의 생명력을 부여하여 점점 기계가 인간이 되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기계와 인간의 경계, 환영과 현실의 간극을 묻다

‘캡차 투윗(CAPTCHA Tweet)’은 인간 삶에 개입하는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디어아트 그룹인 ‘신승백․김용훈’의 작품이다. 우리가 어떤 사이트에 가입할 때 신상정보를 입력하고 ‘확인’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컴퓨터는 ‘정말 가입하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면서 어떤 글자나 숫자를 가입하라고 한다. ‘캡차’이다. 자동가입방지를 막기 위한 캡차는 악성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가입해서 스팸 메일 등을 날릴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컴퓨터는 못 읽는 글자이자 숫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소프트웨어가 이 캡차를 읽는 수준까지 갔다. 글자를 읽고 생각하는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캡차를 읽어내는 컴퓨터는 인간과 어떻게 다른지를 묻고 있다. 그리고 이는 컴퓨터가 고유의 인간 영역을 침범하는 전초전일 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미디어아트 그룹인 ‘신승백․김용훈’의  ‘캡차 투윗(CAPTCHA Tweet)’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미디어아트 그룹인 ‘신승백․김용훈’의 ‘캡차 투윗(CAPTCHA Tweet)’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한편의 극을 보는 듯한 느낌의 작품도 있다. ‘김상진’의 ‘화성영가’이다. 스피커에서 음악이 나오고 앉는 널빤지 부분이 없는 빈 의자가 놓여있다. 그 위로는 조명이 아련히 작품을 비춘다. 이 기묘한 로봇극은 표현과 경험에 대한 인간의 열망이 언제나 기술과 환영의 경계에 머무르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텍스트를  ‘보컬로이드’라는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기계가 노래를 부르는데, 이번 작품 역시 이 방법이 이용됐다. 한마디로 이 작품에서 나오는 노래를 기계가 부르고 있는 셈이다. 현실보다도 더 현실처럼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어 있는 최신의 디지털 기술들은 끊임없이 원음 이상의 재현이나 망막의 한계 등에 도전하며 인간의 인지영역을 정복하고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미래부터 미래주의까지, 2015년부터 거슬러 올라간 타임라인

‘화성영가’ 작품 옆으로 틈새 방이 존재한다. 이 전시회의 마지막 작품인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의 ‘이에스피 랩(EXP(Experience) Lab)’의 ‘미래부터 미래주의까지’이다. 2015년 현재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라인을 제시하며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여기서는 로봇아트와 과학기술, 그리고 문화 간의 연관성과 인과성을 관찰할 수 있다. 다양한 로봇 관련 책들과 만날 수 있다. 그냥 책이 아니다. 바코드를 찍으면 영상으로 재생되는 책이다. ‘우리가 어느 정도 기계화됐는가, 더 발전을 이루고 싶은 부분’에 대한 설문도 이루어지는데, 관객이 대답이 마무리되면 정보가 이동하여 하나의 빅데이터 모형 다시 보여준다.

‘이에스피 랩(EXP(Experience) Lab)’의 ‘미래부터 미래주의까지’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에스피 랩(EXP(Experience) Lab)’의 ‘미래부터 미래주의까지’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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