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공존을 꾀하는 ‘괴바이러스’

[허구에서 바라본 전염병] (6) 배영익 ‘전염병’

“그것들은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늙지도 않는다. 파괴될지언정 죽지도 않는다.”

바이러스는 먹지도 생산하지도 성장하지도 않는 미묘한 존재다. 평소에는 밖에서 물질과 다름없는 형태로 존재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숙주를 감염시키고 숙주의 자원을 아낌없이 소진시켜 파괴한다.

배영익 작가의 소설 ‘전염병(문 펴냄)’에는 파괴될지언정 죽지도 않고 숙주와 공생을 도모하는 ‘괴바이러스’가 나온다. 고대의 시간에서부터 존재해왔을 그것들은 인간이 자연을 건드린 대가로 죽음을 선사한다.

고대의 시간 속 바이러스를 깨운 인간들

미지의 바이러스가 출몰한다는 것은 더 이상 자연을 훼손하지 말라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고대부터 잠자고 있던 빙하 속 바이러스를 끄집어내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 김은영/ ScienceTimes

북태평양 망망대해에 떠있는 원양어선 한 척. 사건은 고장이 난 냉동 창고에 명태를 보존하기 위해 얼음을 대체할 빙하를 깨뜨려 넣으면서부터다.

깨진 빙하 속에는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도사리고 있었다. 바이러스는 상처가 난 피부를 헤집고 몸에 침투했다. 원양어선의 선원들은 순식간에 전염이 됐다.

바이러스를 가지고 서울로 온 선원 어기영. 그는 최초 바이러스가 생긴 원양어선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였다. 어기영과 처음으로 만나 술을 같이 마신 그의 선배 최정원은 국내에서 괴바이러스에 감염된 첫 번째 환자로 기록됐다.

그는 38.5도의 고열에 폐 주변 혈관에 집중적으로 혈종이 생겼다. 홍반과 부종, 눈과 코 등 점막 조직에서는 출혈이 심했다. 복부와 대퇴부, 허벅지 등의 근육조직에는 궤양 도는 함몰이 진행되고 있었다.

빙하 속에서 잠자고 있던 미지의 바이러스가 한 원양어선 냉동창고로 확산된다. ⓒ wikimedia.org

최정원의 상태는 이제껏 보지 못한 유형의 바이러스로 보였다. 의료진들은 이러한 병원체가 누군가의 몸속에서 활성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해했다. 이 생명체는 ‘신원 불상의 마지막, 정체불명, 족보 없는 괴 존재’였다.

최정원을 필두로 감염자는 여기저기서 속출했다. 하필이면 명절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확진자가 발견된 시기도 설 명절 때였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전국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수도권으로 몰리는 시기였다.

소설 속 차례를 지낸 성묘객들이 도로 위로 쏟아져 나왔다. 예년보다 2배 이상의 사고 신고가 접수됐다. 흔해빠진 사고 패턴은 한 건도 없었다. 충분한 거리를 두고도 차들은 충돌했고 커브를 틀지 못해 엉뚱한 곳에 처박히는 차량이 많았다. 모두 감염자들의 이상행동 탓이었다.

더 큰 문제는 감염자들의 공격적인 행동이었다. 감염자들은 타인을 감염시키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인해 재채기를 하거나 침을 뱉으며 감염을 확산시켰다. 감염자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겨냥해 고층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떨어진 감염자의 몸에서 튀긴 피가 사람들에게 흩뿌려졌다.

인류를 구할 항체는 어디에 있을까

의료진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사람은 같이 백신 연구를 하던 김희상 교수였다. 카이스트 교수면서 질병관리본부 자문 위원인 그는 인터넷 실시간 개인 방송에 나와 괴바이러스가 공기 감염으로 퍼지고 있으며 이를 빨리 막는 방법은 바이러스를 빨리 퍼뜨려 항체 보유자를 찾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바이러스가 많이 퍼져나가면 치사율이 줄어들고 전염성이 약화되면서 국민들이 항체를 보유하게 된다는 ‘집단면역(herd immunity)’ 이론이다.

2013년도에 출간한 이 소설 속 전염병 상황은 현재와 흡사하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설 속 인물과 같은 이론을 제기해 실시한 국가가 존재한다. 집단면역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시한 나라는 영국이다.

하지만 영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완치율 최저’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를 주장했던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영국 총리조차 코로나19 확진자가 되어 생사를 넘나들어야 했다.

의료진들은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이들은 필사적으로 백신 개발에 몰두했다. ⓒ 게티이미지뱅크

스웨덴도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해왔다. 하지만 집단면역이 되려면 전 국민의 60%가 자연스럽게 항체를 보유해야 하는데 스웨덴의 국민 항체율은 7.3%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치명률은 23일 현재 이웃 나라 덴마크의 5.0%, 노르웨이의 2.8% 보다 최대 4배 이상 높은 12.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실패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소설 속 의료진들은 집단면역 대신 필사적으로 백신 개발에 매달린다. 바이러스에 감염되고도 이겨낸 이들의 항체를 채취해 백신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백신은 성공한다. 마법과 같은 일이 소설 속에서는 이루어졌다. 이들은 감염일로부터 열흘이나 지난 환자에게서 골수를 채취해 백신을 제조했다. 233개의 백신이 유통된 후 하루 5000여 개의 백신이 제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백신이 제조된 후에도 문제는 남았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환자들 누구에게 먼저 배분하느냐는 문제였다.

소설 속 상황은 현실에서도 반복된다. 지난 15일 프랑스 제약회사 사노피는 코로나19 백신을 미국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발표해 전 세계적인 논란이 일었다. 가장 많이 투자를 한 국가에 우선권을 주겠다는 논리였다.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는 현재 전 세계에서 연구개발 중이다. 약물재조합으로 만들어진 치료제들이 속속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하지만 백신 및 치료제는 당장 만들 수 없다. 보통 백신은 안전성 때문에 3차 임상시험이 끝나도 정식 유통이 될 때까지 적어도 5~10년이 걸린다.

다행히 코로나19는 병의 특수성으로 인해 더 빨리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 수년의 기간이 걸릴 전망이다.

현재 상황을 소름 끼치게 그려내는 소설 속 결말은 희망적이다. 백신과 백신 부작용 환자에게 투여하는 박테리아로 환자들의 생존율은 96% 수준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완전하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백신을 만든 윤규진 교수는 무증상 감염이 보름째 이어지고 있다. 그는 바이러스를 영원히 몸에 지닌 채 살게 될 확률이 높았다.

원인불명의 코로나19 재확진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을 보며 다시 한번 코로나19의 잔인함에 두려움을 느낀다. 사스, 에볼라, 메르스,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바이러스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이제 인류는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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