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원형을 보다

‘신화와 전설’ 전(展), 고양 아람미술관에서 전시

고양 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는 ‘신화와 전설’ 전(展)이 열리고 있다. 3월 2일까지 진행될 이번 전시회는 이야기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다. 전체적으로 마치 동화책을 펼치듯 이미지와 함께 상당수의 텍스트들이 전시공간에 함께하고 있어 서양과 동양의 ‘신화와 전설’을 비교할 수 있다.

잃어버린 신화의 세계

전시는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섹션은 ‘잃어버린 세계로의 여행’이라는 제목의 공간이다. 혼돈 속 세상, 신화와 전설의 탄생 등을 주제로 작가 4명의 작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김현수의 ‘영 드라이어드(Young Dryad)’ 작품이 먼저 보인다.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인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나무 요정은 슬픈 눈으로 어디론가 응시하고 있다. 게다가 실핏줄이 하나하나 보일 정도로 연한 살갗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쉬이 상처 입는 생명의 순수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윤정희, Becoming ⓒ아람미술관


윤정희의 ‘비커밍(Becoming)’은 마치 씨앗 같기고 하고, 개구리알과도 비슷한 물체가 여러 다발의 줄에 의지해 매달려 있는 모습을 가진 작품이다. 가느다란 이 줄은 구리선으로 겉으로 보면 연약해 보이지만 오히려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하고 있다. 세포분열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작품은 창조의 이미지를 구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롱 핫 블랫 로드 투 프리덤(The Long Hot Black Road To Freedom)’은 윤곽을 검게 칠해 그림자를 보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하는 실루엣 기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카라 워커는 인종차별이라는 집단의식이 만들어낸 정체성을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예해방이라는 여정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놓인 인간 군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피나리 산피탁의 ‘템포러리 인스네티(Temporary Insanity)’는 여성의 가슴을 닮은 설치물을 한 공간에 담아놓았다. 주변의 소리와 움직임에 반응하면서 관람객들과 소통을 시도하는 작품으로, 여성의 가슴을 통해 신화 속 카오스적 혼란을 겪고 평화를 찾은 자연과 신화 속 세상을 그리고 있다.

영웅의 귀환

2섹션인 ‘신화의 재해석’에서는 신화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귀환한 영웅들이 우리 곁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박생광의 목어는 한국적인 채색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민화가 주는 정감과 색채가 갖는 강렬함이 어우러져 있다. 민화 속 동물들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익살스러운 모습에 미소가 띠어지는데, 작가는 한민족의 정신과 신화가 다르지 않음을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서용선의 ‘제강’은 우리가 잃어버린 모계중심의 신화를 담아내고 있다. 지리산 노고단 할미나 제주도 설문대할망, 마고와 같이 거대한 몸을 지닌 할미들은 생명을 품고 돌보는 창조의 지모신이다. 특히 마고 하노미 → 마고 할미 → 마귀 할멈으로 비화되는 불운의 여신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입모양을 크게 그려 태고는 소리에서부터 시작됐음을 알려주고 있다.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10년에 걸쳐 그려진 작품이다. 보통 신화 속 영웅이 남자인데 반해 이 작품 속에서는 황녀인 아르미안의 네 딸을 여성 영웅으로 부각시시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시각예술의 이미지만 전시하고 만화 속 대화는 다른 벽면에 모니터를 통해 나오도록 해 분리시켜 놨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여성 영웅들의 이미지와 대화가 남성 영웅들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볼 수 있다.

▲ 권여현, 비너스와 마르스 ⓒ아람미술관


‘비너스와 마르스’는 보는 순간 작가의 넘치는 위트와 재치에 저절로 웃음을 짓게 만든다. 권여현 작가가 신화라는 소재를 가지고 개인적 서사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드로 보첼리티’의 작품을 그대로 가져왔다. 다른 점이라면 얼굴이다. 작품 속의 얼굴이 작가와 작가 제자들의 얼굴로 바뀌었다. 신화 속 삶과 현재 인간들의 삶의 구조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데렐라(Cinderella)’는 요정 이야기를 통해 나타나는 여성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여자를 구분할 때 소녀와 나이든 여자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붉은 망토 이야기 등 세계문학 속 요정의 이미지를 통해 순수한 소녀와 늙고 추악한 노인을 극명하게 대비하고 있다. 미와 야나기는 이 작품을 통해 신화도 결국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편견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고양의 전설, 예술의 옷을 입다

3섹션은 ‘고양의 전설’이다. 고양의 주요 전설을 이용하여 예술적 상상력이 펼쳐진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미리 고양 전설의 스토리를 작가에게 알려주고 이에 맞는 작품을 의뢰하여 전설을 시각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작가들의 창의적 시선을 통해 고양의 전설이 다채롭게 표현됐다.

원로만화가인 백성민의 ‘효자 박태성과 인왕산 호랑이’는 붓을 이용해 그린 만화이지만 한국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백미와 동시에 담백함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림을 하나하나 보다보면 굳이 이야기를 몰라도 내용을 전부 이해할 수 있도록 스토리에 충실하게 그려졌다. 볼로냐 국제그림동화전에서 주목받은 이란 작가 알리레자는 ‘베라산마을의 아기장사 이야기’를 화폭에 담았다. 아기장수의 비극적 모습을 15세기의 헤라트파의 기법으로 그려냈다. 헤라트파의 화풍은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의 대비를 통해 인물과 배경의 조화를 특색으로 한다.

▲ 엠마 반리스트, ‘고봉산과 한씨미녀 이야기’ ⓒ아람미술관


종이를 이용한 두 작가의 작품도 눈에 띄는데, 미국 작가 미아 펄먼의 ‘용구재 이무기 이야기’는 종이의 자유로움이 주는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검은 물을 들이고 난 뒤, 가위로 잘라낸 벽과 천장을 이용해 작품을 설치했는데, 이무기가 하늘로 승천하는 느낌을 준다. 반면 호주 출신 페이퍼커팅 작가 엠마 반리스트는 ‘고봉산과 한씨미녀 이야기’를 종이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커팅의 섬세함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그림자와 꼭 대비하면서 봐야 하는 이 작품은 페이퍼커팅 예술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박미라는 ‘공양왕의 삽살개 이야기’를 역사와 개인, 그리고 사회와 관련된 서사를 거대한 벽면드로잉으로 풀어놓았다. 이 작품은 이번 전시회가 끝나면 철거되기 때문에 이때밖에 볼 수 없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북한산 여장군, 밥할머니 이야기’는 류준화에 의해 복원됐다. 전쟁을 돕기보다 고통을 종식시키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여인의 모습과 그림을 팬시상품에서 볼 듯한 색채와 이미지를 이용해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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