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입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뇌과학은 처음이라] 맛과 무관하게 음식이 끌릴 수 있는 이유

평양냉면은 참 이상한 음식이다. 처음 먹은 이들에게 평양냉면은 ‘걸레 빤 물’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맛이 없는 음식이다. 그러나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처음엔 맛이 없지만 점점 생각나는 음식이라고 한다. 맛은 없는데 점점 끌리는 맛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뇌과학적 지식을 통해 바라보면 과연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평양냉면 © 나무위키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입으로만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뉴욕대의 서성배 교수(현재는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진은 맛과 무관하게 음식이 끌릴 수 있는 아이러니가 말이 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은 초파리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초파리가 맛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오랜 시간 굶긴 후, 영양가가 있는 먹이인 수크루스(sucrose)과 그렇지 않은 먹이인 한천(agar)를 놓고 초파리가 두 먹이 중 어떤 먹이를 더 먹는지 관찰했다. 만약 ‘맛’만이 초파리의 선호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었다면 맛을 느끼지 못하는 초파리들은 두 음식을 고르게 먹어야 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맛을 느끼지 못하는 초파리들은 처음에는 예상과 비슷하게 두 먹이를 가리지 않고 먹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영양가가 있는 먹이를 더 많이 먹었다.

이들은 정상 초파리에게도 비슷한 실험을 해보았다. 정상 초파리들에게 L-글루코스(L-glucose)와 D-글루코스(D-glucose)를 주고 이 두 먹이 사이의 선호도를 관찰하였다. L-글루코스와 D-글루코스는 맛은 비슷하지만, D-글루코스에만 열량이 있고, L-글루코스는 몸속에서 소화되지 못하여 L-글루코스에는 열량이 없다. 실험 결과 정상 초파리들 또한 처음에는 두 먹이 사이의 선호도를 보이지 않다가 점점 열량이 있는 D-글루코스를 더 많이 먹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 연구 결과는 먹이의 맛과 무관하게 그 열량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초파리에게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초파리는 맛과 부관하게 열량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  신치홍

인간과 같은 포유류에 속하는 쥐도 비슷한 실험 결과를 보인 바 있다. 쥐를 이용한 실험은 조금 독특하지만 확실한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한 연구에서 굶주린 쥐에게 2가지 맛이 나는 물을 주었다(포도맛과 체리맛). 과학자들은 쥐가 포도맛 물을 마실 때는 위장에 열량이 있는 글루코스(glucose)를 섞은 물을 넣어주었고, 체리맛 물을 마실 때는 그냥 물을 넣어주었다. 얼마간의 기간이 흐른 후, 쥐는 열량이 위장에 함께 공급되었던 포도맛 물을 체리맛 물에 비해 약 91퍼센트 확률로 선호했다. 이로써 쥐의 몸이 열량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졌다.

위 실험을 간략히 나타낸 그림이다. © Anthony Sclafani et al.

이후 과학자들은 우리 몸이 영양분을 인지하고 그 영양분이 있는 음식을 선호하게 되는 현상의 메커니즘을 알아냈다.

이전에 알고 있던 사실은, 맛있는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뇌의 도파민이라는 물질을 분비하는 뉴런에 의한 보상 회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연구진은 우리가 맛있는 것을 선호하는 것처럼, 영양분이 있는 것을 선호하게 되는 현상 또한 도파민 뉴런의 보상 회로를 통해 나타나는 것인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들은 단맛을 느끼지 못하게 유전자 조작이 가해진 쥐를 이용하여 실험하였다. 정상 쥐들은 열량은 없지만 단맛은 있는 수크랄로스(sucralose)가 섞인 물을 그냥 물보다 선호하였지만, 유전자 조작이 가해진 쥐들은 단맛을 느끼지 못하여 이 두 선택지 사이의 선호도를 보이지 않았고, 이를 통해 쥐들이 실제로 단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단맛을 느끼지 못하는 쥐(왼쪽)는 선호도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정상 쥐(오른쪽)는 단맛이 있는 Sucralose를 선호한다. © Ivan E. de Araujo et al.

그렇지만 열량이 있는 수크로스(sucrose)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상 쥐와 비슷한 선호도를 보였고, 이를 통해 단맛을 느끼지 못하는 쥐가 열량이 있는 물을 선호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단맛을 느끼지 못하는 쥐(왼쪽) 또한 정상 쥐(오른쪽)와 같이 수크로스를 선호한다. © Ivan E. de Araujo et al.

그리고 단맛을 느끼지 못하는 쥐가 열량이 있는 물을 섭취할 때 도파민 뉴런이 반응하는지 확인하였다. 그랬더니 열량이 없는 수크랄로스를 먹을 때는 반응하지 않던 도파민 뉴런이 열량이 있는 수크로스를 먹을 때에만 반응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맛있는 음식을 선호하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영양분이 있는 음식을 선호하는 것 또한 도파민 뉴런의 보상 회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즉, 우리가 맛과 무관하게 열량이 있는 음식을 선호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선호하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에 의한 것이었다.

위의 연구 결과들을 보면, 평양냉면처럼 맛은 없지만 이상하게 점점 끌리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이 크게 이상하지도 않다. 오히려 음식을 온몸으로 느끼는 우리이기 때문에, 맛이 없음에도 끌리는 것은,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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