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유전자치료, 꿈이 현실이 되다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43

운이 없어 부모로부터 각각 비정상유전자를 받아 희귀한 유전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다. 멀쩡한 자신들이(정상 유전자를 하나 갖고 있으므로) 그런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걸 상상하지 못한 부모들로서도 가슴 아픈 일이다. 이런 유전병들은 마땅한 약이 없는 경우가 많아 아이는 얼마 살지 못하고 죽거나 힘겹게 살아야 한다.

1972년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인간 유전병을 위한 유전자치료?’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프리드먼과 로블린이란 과학자가 기고한 글로 미래에는 마치 자동차의 고장난 부품을 고치듯 작동하지 않는 유전자를 대신하는 외부 유전자를 넣어줘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는 장밋빛 전망을 그렸다.

그런데 불과 18년 뒤인 1990년 미 국립보건원(NIH)은 ADA결핍 중증복합성면역결핍증(ADA-SCID)라는 유전병을 앓고 있는 아샨티 데실바라는 4살짜리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첫 유전자치료를 실시했다. ADA라는 유전자가 고장나 면역세포인 T세포를 만들지 못해 면역력이 취약해지는 이 병은 평생 무균실에서 지내는 게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치료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고 데실바라는 그 뒤로도 인공 ADA를 공급받기는 하지만 아직 생존해 있다.

▲ 유전자치료 과정. 대중매체에서는 보통 DNA(정상유전자)가 캡슐 안에 들어있는 모습으로 그리기도 하나 이는 오해를 줄 수 있다. DNA는 아스피린처럼 소화관에서 흡수돼 작동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유전자치료는 바이러스 같은 운반체에 실린 정상유전자 DNA가 고장난 유전자를 갖고 있는 환자의 세포 내 인간 게놈에 끼어들어가 발현되면서 병을 치료한다. 최근 임상시험 성공이 잇따르면서 올해 안에 최초의 유전자치료제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강석기


1999년 환자 사망으로 주춤

유전자치료(gene therapy)는 말 그대로 유전자, 즉 DNA가닥이 약물인 치료법이다. 다만 DNA가 아스피린처럼 타깃에 직접 작용해 약효를 내는 건 아니고 환자의 게놈 속에 끼어들어간 뒤 여기에 실린 유전자가 발현되면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이 작용을 하는 것이다. 유전자치료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유전자를 담은 DNA를 환자의 세포 안 게놈으로 넣어주는 방법을 찾은 것이었는데 바로 바이러스를 운반체로 이용하는 전략이다.

바이러스 가운데는 감기바이러스나 인플루엔자바이러스처럼 사람에 감염한 뒤 세포 안에서 그냥 증식하는 녀석도 있는 반면 헤르페스바이러스처럼 일단 바이러스 게놈이 인간 게놈 안으로 끼어들어 간 뒤 기회를 봐서(즉 인체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활동하는 종류도 있다. 실제로 인간 게놈의 약 8%는 이렇게 들어온 바이러스 게놈의 ‘화석’이라고 한다. 유전자치료는 후자의 패턴을 보이는 바이러스를 운반체로 이용한다.

첫 임상의 성공으로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유전자치료는 그러나 1999년 유전자 결함으로 암모니아를 제대로 대사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제시 겔싱어라는 18살 소년이 유전자치료를 받은 뒤 급격한 면역반응으로 4일만에 죽는 사고가 나면서 제동이 걸린다. 유전자 운반체로 쓰인 아데노바이러스가 강력한 항원으로 작용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데, 문제가 생기면 늘 그렇듯이 연구 과정을 조사하자 절차상 문제가 발견됐고 그 결과 유전자치료 연구는 크게 위축됐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와 유전자치료는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2000년 중증복합성면역결핍증 환자에 대한 임상을 기점으로 꾸준히 임상시도가 행해졌다. 특히 2008년에는 레베르선천흑암시라는 유전성 시각장애인들이 유전자치료로 시력을 회복하면서 큰 화제가 됐다. 그 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유전자치료 임상이 늘면서 현재 1700여명이 임상을 받았거나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 2009년 미국 워싱턴대 연구자들은 유전자 결함으로 색맹인 원숭이에게 원추세포유전자를 넣어줘 컬러를 정상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남성 12명에 한 명꼴로 색맹인 걸 감안하면 대단한 희소식이다. ⓒ제공 ‘Neitz Laboratory’


올해 안에 상용화 될 듯

학술지 ‘사이언스’ 8월 23일자에는 역시 심각한 두 가지 유전병에 대한 유전자치료 임상결과를 다룬 논문 두 편이 나란히 실렸다. 하나는 이염성백질이영양증(MLD)라는 병으로 아릴설파타제A라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가 고장나 신경세포에 독소가 쌓이면서 신경계가 파괴된다. 태어날 땐 멀쩡하지만 7~21개월이 지나면 증상이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비스코트-알드리히증후군(WAS)이라는 병으로 세포골격을 조절하는 단백질의 유전자가 작동을 안 해 면역계에 문제가 생긴다.

연구자들은 이런 유전 결함을 안고 태어난 아기들의 몸에서 골수를 채취한 뒤 줄기세포인 조혈모세포를 분리해 여기에 정상 유전자 DNA를 담고 있는 렌티바이러스를 감염시켰다. 그리고 이 조혈모세포를 다시 아기들에게 넣어줬다. MLD환자 세 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결과 유전자치료를 한지 18~24개월이 지난 아직까지 병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WAS환자 세 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도 습진 같은 만성 피부염증 증상이 사라졌고 다른 면역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다행히 렌티바이러스는 특별한 면역반응을 유도하지 않았고, 유전자도 사람 게놈에 끼어들어갈 때 특정 자리를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간유두종바이러스처럼 원암유전자(proto-oncogene) 옆에 끼어들어가는 걸 좋아하면 암유발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

사실 유전자치료가 임상을 넘어 정식 치료법으로 자리잡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단백질지방분해효소 유전자가 고장나 췌장염 등 심각한 질환이 생기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유전자치료 ‘글리베라(Glybera)’에 대한 상업화를 허용했다. 현재로서는 저지방 다이어트 같은 식이요법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다. 이 치료법은 환자의 근육에 정상 유전자를 넣은 바이러스를 감염시켜 세포가 효소를 만들게 하는데, 개발자인 유니큐어(UniQure)는 올해 안에 제품이 출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람들은 잊고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줄기세포치료 얘기가 나오기 전부터 유전자치료는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였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사이 혜성처럼 등장한 줄기세포의 화려한 비전에 가려져 대중에게는 잊힌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보면 유전자치료는 줄기세포치료보다 훨씬 더 간단한 건 물론 안전성도 나은 측면이 있다. 그리고 제품화도 먼저 될 것으로 보인다(물론 줄기세포치료제 몇 가지 나왔지만 단순한 유형이다). 유전자치료야말로 생의학분야의 히든챔피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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