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명저 읽기] 과학명저 읽기 50
인간의 본성에 대한 언급은 위험하다. 자칫 인간의 사악한 행동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본성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변명할 수 있게 해 줄 ‘위험’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유대인 학살과 그 이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끔찍한 인종청소가 실은 인간의 타고난 잔인함이나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게 가혹한 인간 본성에 결과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듣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개인의 선택에 근거하여 인간의 본성 중 ‘나쁜’ 부분만을 골라내 미리 제거하려는 소위 자유주의적 우생학이 대중적 설득력을 얻게 되지 않을까? 이러다보면 결국 사회적으로 ‘부적합’하다고 결정된 사람들에 대한 강제불임시술 등을 국가적 수준에서 정책적으로 시행하던 과거 우생학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이런 걱정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 전체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중요한 이유인 것 같다.
이런 반응은 교육과 제도를 통해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에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자주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그들에게 인간의 본성은 (설사 존재하더라도) 충분히 유연한 것이어서, 적절한 환경과 교육만 주어진다면 모든 개인은 어떤 사람으로든 변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인간이 오감을 통해 세계를 감각한다는 사실처럼 육체적인 인간 조건이야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규정하는 분명한 특징이지만, 그것을 넘어선 정신적인 인간 본성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현대 사회에서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담론이 왜 필요 이상으로 논쟁적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언급이 인간의 행동이나 성품이 환경이나 교육에 의해 상당한 정도로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과 모순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누군가 인간 본성을 언급하는 순간 그 사람은 우리가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조종당하며 물질세계를 어슬렁거리면서 그저 생존하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것이라 간주된다. 인간의 자발성을 부인하는 이런 생각은 누구에게나 불편함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단순한 오해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가 인간 본성이 고정되어 있어 교육이나 제도적 환경을 통해 바뀔 수 없다고 처음부터 가정하고 있지도 않으며, 현재까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런 생각이 사실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유전학적으로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라고 주장했다고 알려진 도킨스조차 이 점을 매우 분명하게 부인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지적인 능력과 도덕적 판단 능력을 활용하여 유전자의 ‘독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율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킨스와 그의 뒤를 잇는 진화심리학자들은 그럼에도 우리가 어떤 ‘본성’을 갖고 있는 지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의 본성은 교육과 제도를 우리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방식으로 설계하고 실행하는 데 일종의 ‘제한 조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인간상과 사회상을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조심해고 하고 어떤 정책이 보다 효율적일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소개할 책 <내 안의 유인원>도 인간 본성을 탐색하고 있다. 이 책을 쓴 프란스 드 발은 세계적 비교영장류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이다. 그 역시 인간 본성에 대한 탐색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더 잘 이해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하지만 드 발은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다른 분야의 학자, 에를 들면 진화생물학자나 진화심리학자들에 비해 자신의 연구 결과의 해석에 있어 훨씬 더 조심스럽다.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의 생물학적 본성이 그들의 행동과 집단 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보다 복잡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적인 폭력성을 부각시키곤 한다. 특히 자신이 속하지 않는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공격성으로 주로 규정되는 ‘부족주의(tribalism)’가 험난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했던 인류에게는 거의 필연적인 성향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에 대한 증거로 고고학적 연구나 역사상의 기록에서 관찰되는 대량학살의 사례들을 제시하며 자신과 다른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폭력성이 인간 본성에 내재한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일상적이었음을 보이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들은 인상적으로 참혹한 개별 사례 연구를 넘어서 고고학적 증거를 메타 분석하면 이런 ‘일상적 폭력성’을 지지하는 근거가 약하다는 점을 애써 무시한다. 특히 배타적 폭력성의 발현으로서의 부족주의가 진정으로 인간 본성의 특징으로 볼 수 있는지는 매우 논쟁적이다. 대체적으로 에드워드 윌슨과 같은 진화생물학자나 진화심리학자들은 이 생각의 진리성을 강력하게 옹호하지만 미센과 같은 대표적인 진화고고학자들은 인류 진화에 대한 교과서적 서술과도 어긋나는 무리한 주장이라고 평가한다.
드 발은 인류와 최근연 관계에 있는 영장류, 특히 침팬지와 보노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 주제에 접근한다. 그 역시 동물원 침팬지의 정치적 암투를 분석한 자신의 연구, <침팬지 폴리틱스>를 통해, 침팬지가 위계적 질서 하에서 이기적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에게도 극적으로 폭력적이라는 점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침팬지가 폭력적이라고 해서 우리가 폭력적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침팬지가 우리의 직계 조상이 아니라 친척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침팬지의 폭력성에서 우리의 폭력성을 추론하기 위해서는 침팬지와 우리의 공통 조상이었던 과거의 유인원이 폭력적이었다는 점을 보일 필요가 있다. 물론 그에 더해 그 유인원의 폭력성이 인간까지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도록 ‘적절한’ 생태적 환경이 유지되었다는 점 역시 보여야 한다.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보노보는 침팬지만큼이나 우리 인류와 가까운 근연종인데 침팬지에게서 볼 수 있는 위계적 질서와 폭력성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보노보라고 해서 서로 전혀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노보는 개체들 사이의 긴장 관계가 우발적 폭력으로 치닫지 않도록 이를 적절하게 해소할 수 있는 여러 사회적 메커니즘을 활용한다. 드 발이 ‘카마수트라 영장류’라고 칭할 정도로 잦은 집단 내 구성원 사이의 섹스도 그러한 사회적 메커니즘의 하나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보노보보다 훨씬 더 폭력적인 침팬지들도 보노보의 사회적 메커니즘 중 일부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침팬지도 서로 동맹 관계에 있는 개체끼리, 혹은 서로 긴장 관계가 조성될 가능성이 있는 개체 사이에 ‘털 고르기’를 통해 유대감을 강화하거나 긴장을 줄이려는 행동을 보여준다.
드 발은 이로부터 인간의 본성에 대해 훨씬 더 균형 잡힌 분석을 제시한다. 드 발의 생각은 우리의 친척 중에 폭력적이고 위계적인 침팬지만이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고 평등주의적인 보노보도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로부터 나오는 그의 생각은 인간의 본성에는 침팬지와 공유하는 ‘이기적 악마’와 보노보와 공유하는 ‘이타적적 천사’가 모두 존재한다는 식의 단순한 결론이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의 본성은 자신에게 무엇이 이익이 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음과 동시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복합적 능력에 기반을 둔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능력을 활용하여 인간은 자신의 이해관계와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를 상황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유연하게 고려하여 행동할 수 있다.
침팬지와 보노보는 인간보다 훨씬 제한된 방식으로 이런 능력이 활용되는 서로 다른 사례에 해당된다. 침팬지의 본성과 보노보의 본성이 결코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그들 사이의 차이가 오로지 본성에 의거해서만 완전히 결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진화의 역사에서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의 ‘본성’은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수없이 다른 방식으로 활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드 발은 우리 안에 침팬지, 보노보와 공유하는 공통 조상의 유인원적 본성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을 고정불변한 특정한 것으로 물화하는 것이 왜 과학적으로도 의심스러운 지를 이 책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소개도서: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내 안의 유인원>, 김영사 2005
(6509)
로그인후 이용 가능합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서울대 연구진이 포함된 국제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지능형 '전자피부' 개발에 성공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KAIST 조성호 전산학부 교수와 서울대 고승환 기계공학부 교수, 미국 스탠퍼드대 제난 바오(Zhenan Bao) 교수 공동 연구팀이 이 같은 성과를 전기·전자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Nature Electronics)에 29일 게재했다고 밝혔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는 '올해의 10대 과학기술 뉴스'에 국내 개발 우주발사체 '누리호' 발사 성공과 수학자 허준이의 필즈상 수상 등을 선정했다고 28일 밝혔다. 과총은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한 해의 주요 연구개발 성과와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과학기술 등을 매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오태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은 우리나라 첫 달 궤도선 다누리의 달 궤도 진입 성공을 발표하면서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이 지구를 넘어 달에 닿았다"고 28일 밝혔다. 오 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지난 8월 5일 지구를 출발한 다누리는 145일간의 항행 끝에 달에 도착했다"며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일곱 번째 달 탐사 국가로서 우주탐사 역사에 첫발을 내디뎠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년에 우주항공청을 설립하고 우주산업 육성에 나선다. 또 민관이 협력해 국가전략 기술을 본격 육성하고, 양자나 첨단 바이오 등 신기술 분야의 생태계 조성에 힘쓴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28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러한 내용의 2023년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한국재료연구원(이하 재료연)은 국민투표를 거쳐 올해의 우수 연구성과 '탑3'를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재료연은 기관의 대표 연구성과를 조명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높이기 위해 국민투표 방식을 통해 우수 연구성과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미역, 다시마 등과 같은 갈조류(brown algae)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CO₂)는 숲처럼 많이 흡수하고 주변 생물이 분해하기 까다로운 점액 형태로 방출해 온실가스를 장기 격리하는 지구온난화 시대의 '원더 식물'로 제시됐다. 독일 막스플랑크협회에 따르면 산하 '해양미생물학연구소' 연구팀은 갈조류의 배설물을 분석해 탄소 순환 과정에서 많은 양의 CO₂를 장기간 제거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발표했다.
내년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 러시아 패배부터 현재와 같은 전황 지속까지 전문가들의 전망이 엇갈렸다. BBC는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영국, 미국, 이스라엘의 전문가 5명의 전망을 전했다. 마이클 클라크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전 소장 겸 엑시터대 전략연구소(SSI) 부소장은 이번 봄 러시아의 공격이 관건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