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웃음거리가 될 용기가 필요하다

[TePRI Report] 슈뢰딩거와 크릭의 울타리 넘기

‘에르빈 슈뢰딩거 상(Erwin-Schrödinger-Preis)’이라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두개의 상이 있다. 하나는 오스트리아 과학아카데미가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면서 수학 및 자연과학 분야의 뛰어난 업적을 남긴 원로에게 수여하는 상금 1만 5000 유로짜리 상으로, 초대 수상자는 에르빈 슈뢰딩거 본인이었다. 또 하나는 ‘독일 학문을 위한 기부자 연합(Stifterverband für die Deutsche Wissenschaft)’이라는 단체가 1999년에 제정한 5만 유로짜리 상이다. 이 상은 뛰어난 ‘학제간(interdisciplinary)’ 연구에 수여된다.

전자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국내용 공로상의 성격을 띠었다면, 후자는 학문 분야들의 경계를 뛰어넘는 연구를 장려한다는 참신한 취지를 지녔다는 점에서 꽤 특별하다. 이 글에서 주목하려는 것은 그 두 번째 에르빈 슈뢰딩거 상, 그리고 이른바 ‘학제간’ 연구다. ‘학제간’이라는 어색한 용어는 어느새 우리 언어에 꽤 정착한 ‘통섭’과 맥이 통한다.

에르빈 슈뢰딩거 ⓒ 위키피디아

5만 유로짜리 에르빈 슈뢰딩거 상에 슈뢰딩거의 이름이 붙어있는 것은 그의 저서 ‘생명이란 무엇인가?’ 덕분이다. 양자물리학을 수학적으로 정식화한 공로로 1933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슈뢰딩거는 1887년 생이다. 노벨상을 받을 때의 나이가 46세. 이론물리학자로서는 사실상 수명이 다한 때였다. 그러나 얼마 후 나치의 집권과 무관하지 않은 이유로 고향 빈을 떠나 더블린에 정착한 슈뢰딩거는 1943년에 그곳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살아있는 세포의 물리적 측면을 다루는 강연을 하고 이듬해에 그 강연문을 기초로 삼아 ‘생명이란 무엇인가?: 살아 있는 세포의 물리적 측면’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출판 당시에 그의 나이는 57세.

우연의 일치지만, 철학자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출판함으로써 그저 그런 철학 교수에서 불멸의 철학자로 단번에 뛰어오른 것도 57세 때였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만약에 칸트가 56세에 삶을 마감했다면, 오늘날 그는 철학자로서는 흔적도 없고 천문학책의 각주에서나 ‘성운이 별들의 집단이라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들 중 하나로’ 언급됐을 것이다. 평균적인 수명과 건강이 대폭 향상된 오늘날에도 57세에 획기적인 업적을 이루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중년이나 노년의 초입에 이른 숱한 학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고마운 인물이기도 하다.

에르빈 슈뢰딩거 상에 슈뢰딩거의 이름이 붙어있는 것은 그의 저서 ‘생명이란 무엇인가?’ 덕분이다. ⓒ 한울

‘순수이성비판’이 칸트의 최고 업적인 것과 달리, ‘생명이란 무엇인 가?’를 슈뢰딩거의 최대 성취로 평가할 수는 없다. 뭐니 뭐니 해도 슈뢰딩거는 이론물리학자이며, 노벨상 위원회가 인정했듯이, 양자물리학을 수학적으로 서술할 때 사용하는 주요 도구인 파동함수를 고안해 낸 것이 그의 최고 업적이다. 그러나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익숙한 전문분야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낯선 분야를 탐험하는 과감함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슈뢰딩거가 남긴 또 하나의 귀중한 유산이다. ‘독일 학문을 위한 기부자 연합’이 에르빈 슈뢰딩거 상을 통해 장려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 과감함이다.

57세면 경력을 정리하고 서서히 은퇴를 준비할 나이다. 우리 주변의 학자들은 그 나이쯤 되면 대개 연구보다 교육과 사회 활동과 대중 접촉에 더 집중한다. 그러나 슈뢰딩거는 여전히 생생한 과학자로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것은 그의 전문 분야인 물리학을 훌쩍 벗어난 질문이었다. 학자가 자기 분야를 벗어나 낯선 영역을 기웃거리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경솔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행동이다. 웃음거리가 되기 딱 좋기 때문이다.

대개 학자들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아마도 자신의 전문성과 품위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때문일 텐데, 가만히 보면 특히 우리 사회의 학자들이 더 그런 것 같다.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책임감이 강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웃음거리가 될 용기가 없는 것이다. 이 용기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학자보다 예술가가 한 수 위일 듯싶다. 그러나 57세쯤 된 예술가가 웃음거리가 될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도 우리 사회에서는 드문 일일 것이다.

슈뢰딩거의 위대함은 물리학자로서 이미 확보한 권위 따위에 아랑곳 없이 웃음거리가 될 용기를 발휘했다는 점에 있다. 그는 과감하게 물리학자의 눈으로 생물학을 바라보는 것을 시도했다. 유전자가 만드는 질서를 열역학의 법칙들과 대조했다. 그것은 진정한 ‘학제적’ 발상이었고, 그 발상이 생물학에 가한 엄청난 충격의 여파로 곧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탄생했다.

프랜시스 크릭 ⓒ 위키피디아

전문분야의 울타리를 뛰어넘은 멋진 과학자의 또 다른 예로 프랜시스 크릭을 언급할 만하다. 다들 알다시피 크릭은 왓슨과 함께 DNA의 구조가 이중나선임을 밝혀낸 분자생물학자다. 그러나 그는 원래 물리학자였으며, 이 위대한 분자생물학적 업적을 이뤄낸 뒤에는 뇌와 의식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그의 ‘놀라운 가설(astonishing hypothesis)’에 따르면, 의식은 분자들의 구조와 상호작용으로부터 산출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다. 크릭은 이미 분자생물학이 발생한 것처럼 미래에 분자심리학 심지어 분자신경철학이 발생하리라고 예상했으며, 오직 그 새로운 과학들을 통해서만 우리의 뇌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물론 이 확신이 옳은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크릭의 이 같은 학문적 편력은 우연에 휩쓸린 방황이 전혀 아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리학 학사 학위를 받은 후 2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학자로서의 경력이 단절된 크릭은 1945년경에 막연히 과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품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그때 그는 자신이 평생 매달 리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내야 한다고 느껴 스스로 ‘수다 검사(gossip test)’를 고안했다. 이 자가 검사법은 자신이 어떤 주제에 대하여 수다 떨기를 가장 좋아하는지 유심히 살피는 것이다. 그 주제를 선택해야 평생 즐겁게 연구할 수 있다고 크릭은 판단했다. 그리하여 그가 발견한 두 가지 주제 중 첫째는 살아있는 물질과 죽어있는 물질 사이의 경계구역(곧 분자생물학의 영역), 둘째는 뇌였다. 요컨대 크릭의 편력은 애당초 예정된 바였다.

슈뢰딩거가 뒤늦게 생명에 관심을 기울인 것도 우발적인 충동에서 비롯된 일이 전혀 아니었다. 원래부터 그는 인간의 삶과 앎 전체에 관심이 많은, 철학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가 ‘통섭’을 실천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더 적합한 말은 그가 그냥 그 자신답게 행동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크릭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원래부터 원하던 바를 실행했을 따름이다.

통섭, 곧 전문분야의 울타리 넘기는 굳이 애써 수행해야 할 대단한 과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연스러운 본능에 가깝다고 본다. 다만, 그 본능에 충실하려면 웃음거리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며 과감한 연구를 주저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철학자 헤겔은 오류에 대한 두려움은 실은 진실에 대한 두려움일 수 있다고 일갈했다. 우리가 무오류의 신화와 고상한 품위와 준엄한 권위에 매달리지 않는다면, 통섭은 자연스럽고 유쾌하게 실현될 것이다. 웃음거리가 될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서 발간하는  ‘TePRI Report’ 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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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박한얼 2020년 8월 26일1:55 오후

    에르빈수뢰딩거가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명현상을 탐구한 내용의 책인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기점으로 여러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어 DNA의 발견과 분자생물학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선구자임이 분명하고 생명현상에 대한 탐구가 없었을 당시 물리적인 관점에서의 샘명에 대한 탐구가 과학이 발달한 이 시기에 우습게 들릴지라도 그런 시초로 생명과학분야가 지금에 와서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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